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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더러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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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더러운 전쟁
  • 딴지 USA
  • 승인 2023.10.2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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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설교를 꺼리는 성경 본문이 몇 군데 있습니다. 전쟁 담화가 집중된 구약의 율법서들과 역사서들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종말에 나타날 우주적 심판 사건으로 잘못 알고 있는 계시록의 대량학살(genocide) 장면들입니다. 전쟁 담화는 그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여 그것에 대한 지적 통찰력과 문해력이 없으면 이분법적 대립관념을 갖기 쉽습니다.

보수적인 한국 개신교회가 이념화되고 폭력성을 갖게 된 것은 목사들의 설교가 전쟁담화에 집중됐기 때문입니다.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면 사람들은 사유하지 못합니다. 이럴 때 청중은 설교자가 지시하는 대로 끌려 다니기 쉽습니다. 구약성서의 전쟁담화는 교인들을 단순화시켜 제어하기 좋은 이분법적 기재입니다. 보수 개신교 목사들이 구약의 율법서와 역사서의 전쟁담화를 본문으로 설교하기 좋아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런 부류들은 전쟁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발생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도 구약성서의 성전(聖戰) 담론으로 보며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응원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윤석열의 선제타격과 핵 공유 같은 전쟁 이념에 동조합니다. 하지만 나는 목사의 양심으로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의로운 전쟁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더러운 전쟁이고 하나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전자는 인간의 욕망을 위해 학살과 파괴를 자행하는 전쟁이고 후자는 신(神)의 이름으로 성화(聖化)된 전쟁입니다. 다시 한 번 목사의 양심을 걸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거룩한 전쟁(聖戰)은 없습니다. 거룩한 전쟁이란 자기가 믿는 신의 이름으로 타자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자신에게만 주어졌다는, 난폭한 오만함의 다른 표현입니다.

신앙은 인간의 상식과 윤리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념이 되고 교리가 되어 상식과 윤리를 초월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타자에 대한 폭력과 살해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종교적 신념이 이 경계선을 넘어설 때 타자에 대해 공감력이 힘을 잃고 생명에 대한 윤리가 붕괴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단 하나의 전쟁만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전쟁은 다 더러운 전쟁입니다. 타자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특정 민족이나 특정 종교에만 부여됐다고 믿을 때 더러운 전쟁이 일어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심판자로서의 자기 주권과 권리를 포기한 신(神)입니다. 심판자가 아니라 자기희생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달린 신입니다. 그래서 내가 몸담은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이 임재하는 성전(聖殿)이 아니라 자기희생과 용서, 화해와 교제와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이 땅의 어떤 교회든 전쟁을 긍정하거나 옹호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교의 심판자 야훼가 인간 예수를 통해 비폭력 평화주의로 전복된 사건이 기독교의 출현입니다. 예수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세계와 인류를 향해 평화를 선포했습니다.

타자를 죽여야 내가 사는 게 이 세상의 냉혹한 생존법칙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내가 죽음으로써 타자를 살리는 일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사람들이 전쟁을 옹호하는 것은 기독교의 근본도 모르는 것입니다. 진부한 선언이지만 기독교의 근본이념은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비폭력 평화주의입니다. 그것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이상입니다. 사람에 의한 폭력적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 통치되는 평등과 샬롬의 나라 말입니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와서 자기 몸을 죽음에 던져 버린 신(神), 그분의 비폭력적 자기희생이 인류를 구원할 평화의 원천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질 때, 어떠한 전쟁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더러운 전쟁을 용인하고 응원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의 어느 한 당사자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기독교의 근본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이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이념적으로 왜곡하여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고 기독교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그들 안에 종교적 허상만 있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인간이 낳은 가장 비열하고 추악한 죄악입니다. 선한 전쟁, 정의로운 전쟁, 거룩한 전쟁은 없습니다. 더러운 전쟁만 있을 뿐입니다. 더러운 전쟁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것은 신의 이름으로 하는 전쟁입니다. 내 손에 타인의 피를 묻히고 정의감과 성스러운 감정에 도취되는 것은 가장 부패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이들을 종교적 신념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은 무지의 광기입니다. 전쟁은 지지하거나 응원해야 할 스포츠가 아니라 지금 당장 멈추게 해야 하는 파멸적 범죄입니다. 범죄를 응원하는 것은 뻔뻔하고 야만스러운 일입니다.

인간에게 밥보다 더 절실한 밥은 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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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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