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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악인의 죽음 앞에서 과연 기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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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악인의 죽음 앞에서 과연 기뻐할 수 있는가?
  • 딴지 USA
  • 승인 2021.11.2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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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희대의 악인이 맞이한 죽음 앞에서 과연 기뻐할 수 있는가?"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전두환의 사망 소식 앞에서 과연 순수하게 기뻐만 할 수 있는 것인지 고심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과거 김정일이 죽었을 때 박수치며 기뻐하다가, "아, 나도 똑같은 죄인인데."라는 반성적 사유가 올라와 박수를 멈추고 잠시 애통해 했던 기억이 있고요.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항상 '착한 놈 컴플렉스'를 달고 사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는 다 똑같은 죄인'이라는 진리 앞에 스스로를 세워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느 정도 타당한 태도이고요. 하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라는 명제는 무슨 전가의 보도마냥 아무 상황에나 시도 때도 없이 끄집어 내 쓸 수 있는 교리적 진술이 아닙니다. 특히나 희대의 악인이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 순간에는요. 왜냐하면 '죄인'과 '악인'을 철저하게 구분하도록 우리를 가르치는 일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인 성서가 수행하거든요.

언젠가 이런 문장을 설교문에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의 공동체이지, 악인들의 공동체가 되어선 안 된다." 성서의 진술에 의하면 죄인과 악인은 엄연히 다른 부류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의 유혹과 사망의 위협을 직면하고 있으며 마지막 그 날까지 죄에 맞서 싸울 운명 아래 놓여 있기에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설령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새로운 통치 아래 속하기로 결단한 사람들이라 해도 죄인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완벽하게 소멸되지는 않습니다. 루터가 말한 것처럼, '죄인인 동시에 의인'일 뿐이죠.

그런데 이 죄인들 가운데 '악인'들이 존재합니다. 악인은 죄를 '죄'로 인식하지 않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최소한의 죄책감, 아니 죄의식조차 결여된 자들인 셈이죠. 성서에서 '죄'는 윤리적 차원에서 판단가능한 개개인의 특정 행위들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악한 세상을 구축해가도록 추동하는 모든 사상과 마음의 동인들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죠. 악인은 이러한 죄의 지배에 전혀 저항하지 않는 사람이며,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세상 가운데 죄의 영향력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도록 적극적으로 죄 가운데 머무는 존재지요.

다시 한 번,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죄인들조차 사랑하시고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인자하심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그분의 긍휼과 자비 아래 놓여 있습니다. 헌데 악한 자들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그 은혜와 사랑을 거부하지요. 형제를 살해한 가인에게까지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총을 조롱하고 비웃은, 가인의 후손 '라멕'처럼요. 이런 자들을 가리켜 성서는 '악인'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악인들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만 기다리고 있음을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전두환은 악인이었습니다. 그는 학살을 명령한 장본인이자, 광주를 둘러싼 역사적 비극에 있어서 가장 큰 책임을 진 인물이었음에도, 단 한 번도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에게 정식으로 사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것이 죄라는 사실마저 부정하였으며, 그 죄를 덮기 위해 추종자들을 동원해 거짓을 퍼뜨렸죠. 성서의 인간관에 의하면 전두환은 악인들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악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기대하시는 주님의 사랑조차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죄악을 긍정하는 이런 악인들의 멸망을 예고합니다. 특히 계시록에 의하면 이런 자들의 멸망과 심판은 하나님의 정의 아래 자신을 의탁한 '성도'들의 소원이자 기도의 향이고요.

시편에서도 빈번하게 노래하듯, 악인이 심판받고 멸망하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며 그분의 자비가 의로운 백성들에게 임하는 종말론적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악인의 파멸 앞에서 기뻐할 수 있으며, 마땅히 기뻐해야 합니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이며, 그의 사멸은 정의의 실현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고통과 절망을 맛보던 의인들은, 이 땅 위에서 압제하고 권세를 휘두르던 악인들의 횡포가 '저 땅'에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바라보며 피안의 행복을 맛봅니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가던 존재가 진짜 지옥으로 떨어지는 장면이야말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강렬하게 증명되는 순간인 셈이죠.

'죄인' 전두환의 죽음에 대해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일말의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악인' 전두환의 죽음은 그리스도인인 저를 기쁘게 만듭니다. 그가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518 희생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하고 용서를 구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그가 죽는 순간까지 '회개'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까지 회개하거나 사죄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전두환의 태도와 삶을 보니, 그가 '악인'임이 확실해보였으니까요.

희대의 악인, 전두환의 죽음 앞에 기뻐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는 세 가지 부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아직 죄인과 악인을 구분할 줄 몰라서 정확한 신앙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미숙한 신자거나, 혹은 같잖은 정치적 견해 따위에 기대어 편가르기나 하면서 자신이 속해 있는 극우 진영 외에는 모조리 악마화하기로 결심한(그래서 518을 간첩의 소행 따위로 취급하고 싶어하는) 사람이거나, 그게 아니면 그냥 전두환과 심정적으로 한 패에 속한 이거나.

전두환이 지옥에서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며 518 학살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통렬한 반성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어차피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니, 오늘 저는 그저 악인의 사멸과 심판으로 인해 기쁨의 찬양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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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가기

By David Woo-jo Jeong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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