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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과 자유와 복음, 그리고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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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과 자유와 복음, 그리고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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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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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뭘 알어!

노인들의 가장 꼰대스러운 말이다. 특히 7,80대 이상의 노인들에게서 이런 인식과 태도가 매우 강하다. ‘나는 세상을 많이 경험하여 알고 있으니 내 생각과 견해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경험한 세계가 가짜일 수 있다는 하나의 반증 사례를 황교익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7,80대 노인들이 오리지널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평양냉면의 맛은 다 가짜다. 그들이 어릴 때 북한에서 먹었던 평양냉면은 일본에서 개발된 미원이 조선반도에 이미 편만했던 시절이기 때문에 그것은 미원 맛일 수 있다”는 것이다.

평양냉면 맛의 오리지널리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일제 강점기 이전으로 거슬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원 맛에 길들여진 노인들이 자기가 기억하는 것을 오리지널 평양냉면 맛이라고 우기는 것은 귀여운 꼰대 짓일 수 있다. 지난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과정에 북한이 제공한 평양냉면을 맛본 남쪽 인사들은 그것의 오리지널을 경험했다. 무엇이 진짜인지 그 때 알게 된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유월이 되면 많은 반공 이벤트가 있었다. 반공 웅변대회, 반공 포스터 그리기대회, 반공 글짓기대회, 반공 마라톤대회 같은 것들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그 많은 반공 이벤트에 지루할 정도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자유’였다. 북한 공산주의를 비난하고 폄훼하기 위해 내세워 자랑해야 할 만한 우리 것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자유’였다. 우리에겐 자유가 있는데 북한은 자유 없다는 것을 모든 폭력적인 언어를 동원하여 공산주의 혐오를 선동했던 것이다. ‘자유’라는 말은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는 항생제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신정권의 체제 선전을 위한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구호였다.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선거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같은 것들은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범위 안에서 허용되는 자유였다. 자유는 그야말로 체제 선전을 위한 구호였을 뿐 민주사회가 요구하는 실질적 자유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미원 맛 같은 것이었다. 자유의 원본성이 제거되고 폭력적으로 길들여진 합성조미료 같은 이념의 맛을 노인들은 자유라고 떠들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씨가 대통령 취임식에서부터 시작하여 유엔총회 연설에서까지, 그리고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연단에서 ‘자유’라는 말을 맥락 없이 반복하고 있다. 그의 연설을 들으면서 내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런 반응이 나왔다. ‘니가 자유의 맛을 알아?’ 그는 자유의 맛을 모른다. 한 번도 억압당하는 자의 자리에 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를 갈망하는 절박함을 모른다. 다만 그가 그렇게 떠드는 자유는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시장의 자유다. 그는 시장경제 신봉자가 써준 원고를 아무 생각 없이 읽어나간 것뿐이다.

박정희가 정치적 자유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이명박 이후의 보수 정권은 시장의 자유를 내세웠다. 특히 이명박은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와 함께 전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모든 국민이 곧바로 부자가 될 것 같은 착시를 일으켰다.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 더 많은 자유를 주면 기업이 더 성장하고 국가가 부강해지며 국민이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을 믿으라 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아예 없거나 기대만큼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증명됐다. 지금은 완전한 시장주의도 없고 완전한 자본주의도 없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이 자유를 떠드는 것은 조미료가 감미된 평양냉면 맛을 오리지널로 기억하는 노인들에게 가짜 평양냉면을 비싸게 파는 것과 같은 일이다.

시장주의, 산업혁명, 계몽주의, 그리고 개신교의 역사는 같은 근대에 태어난 형제들이다. 개신교회가 자유라는 말과 자유주의를 좋아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 때문이 아니다. 윤석열 류가 말하는 시장주의의 이념이 교회 안에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신교회가 말하는 복음은 시장주의의 경쟁논리와 기계적 합리성, 생산과 효율성 같은 합성감미료가 가미된 맛이다. 복음의 순수성을 잃은 그 맛을 복음이라고 떠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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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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