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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의 95개조 의제/반박문(The 95 Theses by Martin Lu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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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의 95개조 의제/반박문(The 95 Theses by Martin Luther)
  • 딴지 USA
  • 승인 2021.11.0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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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의 95개조 의제/반박문(The 95 Theses by Martin Luther)

1. 우리의 주님이며 선생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고 말씀하셨을 때, 믿는 자들의 생애 전체가 회개하는 인생이 되어야 함을 의도하신 것이다.

2. 이 회개라는 말은 참회의 예전 곧 사제에 의하여 집행되는 고해와 사죄의식으로 이해될 수 없다.

3. 한편 회개의 내면적인 뉘우침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회개가 육욕을 죽이는 다양한 외적 행위로 드러나지 않는 한 무용지물이다.

4. 내적 참회와 자책이 계속되듯이 형벌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5. 교황의 고유 직권으로나 교회의 법규로 부여한 징벌을 제외한 어떤 벌도 교황이 사할 권세나 의지를 갖지 못한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선언하거나 확증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죄도 면제할 수 없다. 기껏해야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들만을 사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그러한 그의 사죄 권리가 무시되면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7. 하나님께서는 그의 대행자인 사제에게는 전적으로 복종하면서도 다른 일에는 겸손하지 않는 자의 죄는 결코 용서치 않으신다.

8. 고해와 참회의 법규는 산 자에게만 부여되는 것이며 임종에 처한 자에게는 어떤 법규도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9. 그러므로 교황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궁의 경우를 예외로 하고 있는 교황의 법령을 통해 우리에게 자비를 행하신다.

10. 임종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연옥문제를 내세워 종교상의 속죄를 보류하는 사제들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며 어리석은 짓이다.

11. 교회 법규에 다른 벌을 연옥의 벌로 변경시킨 '가라지'는 감독들이 자는 동안에 심어진 것이 확실하다.

12. 종전의 예로서 교회 법규상의 벌은 진실한 뉘우침의 증거로 사면 후가 아니라 사면 이전에 부과되었던 것이다.

13. 임종에 처한 자는 죽음으로써 교회 법령에 이미 죽은 바 되고 그것들에게 정당한 자유함을 얻어 해방된다.

14.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는 사람의 심령의 불완전한 건강과 사랑은 필연적으로 큰 공포를 동반한다. 그 불완전성이 크면 클수록 공포는 더 커진다.

15. 이 공포와 두려움은 다른 것과 연관짓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연옥의 고통과 아픔을 느낄 수 있다.

16. 지옥과 연옥과 천국은 절망과 두려움과 구원의 확신이 다르듯 각기 구별된다.

17. 연옥에 있는 영들은 불안과 공포의 감소와 사랑의 증가를 확실히 체험할 것이다.

18. 연옥에 있는 영들이 공적의 상태에나 사랑의 증가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은 이성의 근거로나 성서적 근거로 증명할 수 없는 것 같다.

19. 구원의 축복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는 것에 우리들은 확신하지만 연옥에 있는 영들의 대부분에게 증명할 수는 없는 듯하다.

20. 그런고로 교황이 말하는 "모든 죄의 완전한 사면"은 단순히 모든 죄의 사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부과한 죄의 사면을 의미하는 것이다.

21. 그러므로 교황의 면죄부로 사람들이 모든 형벌에서 해방되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면죄부 판매 설교자는 모두 오류에 빠져 있다.

22. 사실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해서는 어떠한 형벌도 사할 수 없다. 이 형벌은 교회의 법규에 의해 현세에서 받아야 한다.

23. 만일 누구에게든지 모든 징벌의 사면이 주어진다면, 그러한 사면은 극소수인 완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24.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징벌에서 해방된다는 무차별적이고 찬란한 약속에 기만당하는 것이다.

25. 교황이 연옥에서 장악했다는 일반적인 권위는 모든 감독과 목사도 각자의 감독구나 교구안에서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다.

26. 교황이 이런 경우에 아무 상관없는 이 열쇠의 권세로 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도(代禱)의 방법으로 영들에게 사죄를 허락한다는 것은 매우 잘하는 일이다.

27. 헌금궤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면 동시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나 올라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28. 돈이 헌금궤 안에서 울릴 때마다 이득과 탐욕이 자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성직자의 대도(代禱)의 응답여부는 하나님의 선한 뜻에 달려 있다.

29. 성 베리누스와 파스칼리스에 관한 전설에 있는 것과 같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는지 아닌지를 누가 알겠는가?

30. 누구도 자기 참회의 진실성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 하물며 타인의 죄가 완전히 사면을 받았는지는 더욱 확신할 수 없다.

31. 진실된 회개를 하는 사람도 드물고 진실된 마음으로 면죄부를 사는 사람도 드물다. 말하자면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32. 그들이 산 면죄부 증서로써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르친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면죄부가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측량할 수 없는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특별히 경계하여야 한다.

34. 왜냐하면 면죄부로 얻는 은총은 인간이 정한 성례전적 속죄행위로 사하는 벌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35. 영혼을 연옥에서 구출한다거나 참회사를 마음대로 택할 수 있는 참회 증서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참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비그리스도적인 교회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36. 어떤 크리스챤이든 진심으로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부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37. 참된 크리스챤들은 죽은 자나 산 자나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의 선물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영역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다.

38. 그러나 교황이 주는 사죄나 거기에 참예하는 것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교황의 사죄는 하나님이 내리신 사면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39. 면죄부의 관대한 생각과 참된 회개를 민중 앞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며 학식이 있는 신학자도 하기 힘든 일이다.

40. 참된 회개는 징벌을 달게 받는다. 그러나 면죄부에 관대하면 징벌을 등한시하고 슬퍼하게 되며, 설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41. 교황의 사죄권을 설교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것을 선행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42. 면죄부의 구입을 자선 사업과 비교하여 생각하는 것은 교황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3.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궁핍한 자에게 꾸어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더 선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4.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을 베푸는 행위로 성장하고 그 사람은 선을 행하는 사람보다 선하게 되지만, 면죄부로는 인간이 보다 선하게 되지 못하고 다만 형벌로부터 보다 자유롭게 되는 것뿐이다.

45. 이웃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는 본체만체하면서도 면죄부를 위해서는 돈을 바치는 사람들은 교황의 사죄가 아닌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6. 그리스도인들이 넉넉한 재산을 가지지 못했다면 자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저장할 의무를 지며 결코 면죄를 사는 것으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

47. 면죄부를 사는 일은 자유로운 일이며 결코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8. 교황은 면죄부를 주면서 얻는 돈보다 사랑이 깃든 열성적이고 경건한 기도가 필요하며 그것을 더 바란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9. 사람들이 교황의 면죄부에 신뢰를 두지 않는다면 더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잃는다면 그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50. 만일 교황이 면죄부를 판매하는 설교자들의 행상행위를 안다면 자기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 베드로 성당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바랄 것이다.

51. 어떤 면죄부 판매 설교자들에게 돈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게 교황은 자비로나 베드로 성당을 팔아서라도 갚아줄 것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52. 면죄부 구입으로 구원을 받아 행복해지지라 믿는 것은 헛된 신앙이다. 판매위탁자나 교황 자신이 자기의 영혼을 걸고 그 증서를 보증한다 하더라도 그렇다.

53. 면죄부 설교를 위해 다른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못하게 금지한 자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적이다.

54. 설교에서 면죄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와 같은 시간이나 더 긴 시간동안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55. 만일 매우 적은 가치를 가진 면죄부를 하나의 방울과 단순한 행렬과 축제로써 축하한다면 가장 큰 가치를 지닌 복음은 값비싼 백 개의 방울과 백 가지 행렬과 의식으로 기리고 축제해야 한다는 것이 교황의 견해임이 틀림없다.

56. 그것으로써 교황이 면죄부를 나눠주는 교회의 '보화'(여분의 공적을 말함)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충분히 묘사할 수도, 알려질 수도 없다.

57. 왜냐하면 그것이 현세적 보화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미 많은 설교자들이 이 보화를 쉽게 나누어주지 않고 도리어 쌓아 두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58. 그 보화는 그리스도의 보화이지 성자들의 공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교황의 작업 없이도 언제나 역사하고 속사람에게는 은총을 주며 겉사람에게는 십자가의 죽음과 지옥을 주기 때문이다.

59. 성 로체스는 공동체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교회의 보화라 말했지만 그는 그 시대에서 통용되는 의미에 따라 사용했던 것이다.

60. 이 '보화'란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교회의 열쇠라고 말해도 합당할 것이다.

61. 왜냐하면 형벌과 교황이 관리하는 조건의 면죄를 위해서는 교황의 권한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62. 그러나 교회의 참된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이 가득한 거룩한 복음이다.

63. 이 보화는 처음 된 자를 나중 된 자로 하기 때문에 증오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64. 그와 반대로 면죄의 근거인 '보화'는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은 나중 된 자를 먼저 된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65. 그래서 옛날의 복음의 보화는 돈많은 사람들을 낚던 그물이다.

66. 그러나 면죄부의 보화는 오늘날에도 사람의 부를 낚는 그물이다.

67. 면죄부 설교자들이 '가장 큰 은총'이라 외치며 파는 면죄부는 큰 이익과 향락을 갖다주기 때문에 큰 은총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68.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축복과 면죄부를 비교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은총이 아닐 수도 있다.

69. 감독들과 교구 목사들은 교황의 사죄권을 위임받은 자들을 큰 경의를 가지고 맞아들여야 한다.

70. 그러나 한층 더 큰 책임은 눈을 활짝 뜨고 귀를 바짝 기울여 이 위임받은 자들이 교황이 위임한 일이 아닌 자신들의 희망을 설교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71. 사도계승의 면죄권을 반대하는 사람은 저주받고 추방당할 것이다.

72. 그러나 면죄부 판매 설교자들의 해롭게 뻔뻔스런 말에 대항하고 슬퍼하는 자는 복을 받을지어다.

73. 어떤 방법으로든 면죄부 판매를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교황이 분노하며 추방으로 보응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74. 교황은 면죄부를 구실삼아 거룩한 사랑과 진리를 방해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더 심하게 분노하며 추방을 내릴 것이다.

75. 교황의 면죄부에는 굉장한 힘이 있어서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성모를 능욕한 사람도 죄에서 해방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은 헛된 것이다.

76. 그와 반대로 가장 적은 죄일지라도 교황의 면죄부가 필요하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77. 만일 성 베드로가 지금 교황이었더라면 면죄 이상의 큰 은총을 내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와 교황을 모독하는 것이다.

78. 그와 반대로 우리는 현 교황이나 다른 어떤 교황도 면죄부보다 더 큰 은총, 즉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말하는 복음(福音)과 병 고치는 은사 등의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79. 교황의 문장으로 장식된 화려한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능력이 같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80. 이같은 가르침이 민중들에게 선포되는 것을 보고도 묵인하는 감독과 교구 목사와 신학자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81. 면죄부에 대한 그같은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설교로 비방과 또는 일반 세인의 날카로운 반대에서 교황의 명예와 품위를 수호하기란 아무리 박식한 사람일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82. 예를 들면 교황은 베드로 성당의 건축에 소비될 썩어질 금전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한다는 구실같지 않은 구실을 대면서도 어찌하여 가장 정당한 이유인 거룩한 사랑과 영혼의 필요를 위해 연옥을 비우지 않는가?

83. 또한 이미 구속받은 사람을 위한 기도는 부당한데 무엇 때문에 죽은 사람의 장례식이나 기년제(忌年祭)를 계속하는가? 또한 왜 교황은 고인을 위해 교회에 바친 기부금을 돌려주지 않고 혹은 기부금의 취소를 허락지도 않는가?

84. 또한 돈으로 인해 불경건하거나 하나님의 원수가 된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경건한 영혼을 연옥에서 구하는 것은 허락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경건한 영혼이 자신이 필요하여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구해내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교황의 어떤 새로운 신성함인가?

85. 또한 참회에 관한 교회의 법규는 사실상 사용되지 않아서 오래 전에 폐지되고 죽은 글이 되었는데 왜 마치 그것이 아직 효력을 발생하는 듯 여전히 돈으로 인한 면죄증 부여를 통하여 구속해 내는 것 같이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86. 또한 오늘날 왜 최고 부자의 재산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지금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에 불쌍한 그리스도인의 돈을 받는가? 자신의 돈으로 성 베드로 성당쯤은 당장 세울 수 있지 않은가?

87. 또한 교황은 참회로 완전한 용서와 속죄에 대한 편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무엇을 사하려 하고 어떤 영적 은혜에 참여시키려 하는가?

88. 또한 지금 하루에 한 번 주는 사면과 은총의 참여를 하루에 백 번, 모든 믿는 자들에게 준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 되겠는가?

89. 만일 교황이 면죄부를 승인함으로 돈보다 구원에 관심을 두었다고 본다면, 무엇 때문에 그는 오래 전부터 주어오던 증서나 면죄부를 정지하는가? 동일한 효력을 지닌 것은 틀림없지 않은가?

90. 평신도의 예리한 반론을 명백한 근거제시가 아닌 권력으로 억압하는 것은 교회와 교황을 원수의 조소거리로 전락시키는 일이요, 그리스도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91. 따라서 만일 면죄부가 교황의 정신과 의견에 따라 설교로 권유된다면, 이 모든 의문은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아니,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92. 고로 평화가 없는데도 그리스도의 백성에게 "평화", "평화" 하고 부르짖는 예언자들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

93. 그러나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십자가", "십자가" 하고 부르짖는 모든 예언자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94. 그리스도인은 형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머리되신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기 위해 훈계받아야 한다.

95. 따라서 평화의 보장이 아니라 많은 고난과 시험을 통하여 천국에 이르도록 권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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