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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과연 종교의 자유를 위해 싸우셨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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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과연 종교의 자유를 위해 싸우셨던가?
  • 딴지 USA
  • 승인 2020.08.2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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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명령에 따르는 것보다 종교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개신교 연합기구 중 하나인 한교연에서 비대면 예배만 허용한다는 정부의 행정명령에 대해 생명과 같은 예배를 멈춰서는 안 된다며 반기를 들었다고 한다.

정부의 명령에 따르는 것보다 종교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민주화를 위해 저항하는 사람들을 향해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라고 외쳤던 자들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그러고 보면 세상 참 좋아졌다.) 듣기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결연히 일어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예수님이 과연 종교의 자유를 위해 싸우셨던가?

예수님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 않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의도적으로 안식일을 어기시고 사람을 살리셨다.

종교 형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안식일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종교적 규율을 지키기 위해 강도 만난 자를 지나친 제사장과 레위인이 아니라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 준 ‘이방인보다 못한 사마리아인’을 칭찬하신 것이다.

이것이 진리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제자들이 복음 전파를 금지한 공의회의 결정에 반기를 든 것은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성전 체제를 무너뜨린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저항이었던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일 예배를 한 자리에 모여서 드리는 종교형식을 지키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다.

어떤 장소와 시간, 어떤 형식을 통해서든 영과 진리로 예배하면 된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복음의 본질이요 상처입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웃이 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이웃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종교가 기독교다.

교회는 예수님처럼 타자의 고통과 죄를 인수하여 대신 고통당하기까지 하는 "타자를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비대면 예배는 이웃 사랑의 한 방법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복음적 실천이다.

이것을 외면하는 현 한국 기독교의 모습은 그동안 한국교회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맘몬을 섬기는 우상숭배 종교였음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종교형식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판 바리새인의 모습일 뿐이다.

자신의 자아가 만들어 낸 ‘작은 하나님’ ‘가짜 하나님’을 섬기며 거짓 경건으로 무장한 ‘경건한 자아’를 우상화하는 모습일 뿐이다.

자유케 하는 진리의 능력을 상실해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게 만든 ‘이가봇’의 모습일 뿐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우리 교회는 요즘 “1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고 있다.

함께 모이는 공예배와 온라인 예배를 병행해서 드렸다.

그런데 이를 또 온전히 온라인 예배로 전환해야 한다.

앞선 예배를 통해 큰 은혜를 누리고 있던 우리의 마음은 참담하다.

하지만 이 또한 복음의 공공성을 실천하는 길이기에 온라인 예배로 전환할 것이다.

한국 교회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시민들과 의료진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온라인 예배로 전환할 것이다.

전광훈을 낳고 기르고 지지하고 키워 준, 결국은 전광훈과 다를 바 없는 한국 교회 주류들의 죄를 사죄하는 마음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릴 것이다.

 

 

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출처: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4102273979843289&id=100001821823476

By 이도영 목사
By 이도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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