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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만에 닥친 미국發 인플레, 대공황 떠오르는 3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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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만에 닥친 미국發 인플레, 대공황 떠오르는 3가지 이유
  • 딴지 USA
  • 승인 2022.02.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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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 7% 웃돌아… 40년만에 처음 마주친 심각한 인플레

 

모든 것의 좋은 점만 취하는 것, 누구나 원하지만 세상 이치와는 맞지 않는 이례적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하겠는가의 문제입니다. 미국 경제 이야기입니다.

최근까지 미국 경제는 위기이기는커녕,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처럼 보였습니다. 팬데믹에 따른 경제침체를 막으려고 엄청난 돈을 풀면서 사상 최대 빚잔치를 벌였지만, 물가는 안정됐고, 초저금리, 완전고용에 가까운 낮은 실업률, 높은 GDP(국내총생산) 성장을 동시에 유지해 왔지요.

이뿐이 아닙니다. 중국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떼어내려는 과정에서 글로벌시장에 대혼란과 비용을 야기시켰지만, 미국 반도체·IT 기업들은 최고의 실적과 주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굳이 경제원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장점이 있으면 단점, 효과가 있으면 부작용,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게 세상 이치인데 말이죠. 장점·효과·빛만 있는 상황이 영원하겠느냐는 의문을 상식적으로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이례적 상황이 끝날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미국만은 특별하다는 예외주의, 과거의 금융파탄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 금융당국의 자신감이 단숨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위기 요인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발(發) 인플레이션입니다.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Fed·미국의 중앙은행, 이하 연준) 의장의 인플레 퇴치 이후 미국은 지난 40년간 심각한 인플레에 직면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린스펀 전 의장 때부터의 연준은 금융긴축 국면에서도 경제 데이터와 시장 반응을 살피면서, 온건한 방식으로 금리 인상을 진행할 수 있었죠.

하지만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7%를 웃돌았습니다. 높은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연초부터 쏟아집니다. 게다가 연준의 급작스러운 말 바꾸기는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죠. 작년 이맘때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심각한 인플레 발생을 우려하며 연준에 선제조치를 주문했을 때, 연준은 “물가상승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라며 그의 우려를 일축했었는데요. 작년 말까지만 해도 인플레 진압에 미온적이었던 연준이 최근 들어서는 물가를 잡기 위해 모든 정책 수단을 취하겠다는 쪽으로 표변했습니다.

과거의 고(高)인플레, 금리 급등 사례와 현재의 연관성, 미국 인플레가 빠르게 잡히기 어렵고 이에 따른 금리 인상이 예상을 뛰어넘을 가능성 등에 대해 3가지 포인트로 정리해 봤습니다

미국 고인플레가 가져올 무시무시한 리스크 중 하나가 미국 장기금리(10년 국채 이율) 상승입니다. 장기금리는 주식시장과 회사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미국 장기금리를 항상 주시하고 있죠. 게다가 장기금리는 연준의 개입보다는 시장 자체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진짜 시장의 움직임과 그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장기금리가 2%까지 오른 상태이고요. 벌써 회사채 시장에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오늘(17일) 아침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금리상승과 재무부담 증가, 미국 저(低)신용평가기업에 요구되는 상환액 160조엔, 상환 부담에 경계’라는 제목으로 당장의 인플레에 따른 회사채 금리 인상이 미국 경제에 큰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신문에 따르면, 긴축으로 국채 이율이 오르고 있는 데다, 기업 자금 조달에 역풍이 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회사채 금리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 가운데 저신용기업이 향후 5년간 변제해야 하는 채무 잔고가 160조엔(약 1650조원)으로 과거 최고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상환 부담이 증가하면, 최근까지 억제돼 온 미국 기업의 파탄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 인터컨티넨탈거래소(ICE) 지표에 따르면, 세계 회사채 이율은 15일에 2.6%로 연초부터 0.7% 포인트 상승해 1년 10개월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국채에 대한 추가금리(스프레드)는 같은 날 1.2%로, 연초부터 약 0.2% 상승해 1년 3개월만의 최고 수준으로 올랐습니다.

금융 정보 회사 리피니티브에 의하면 세계 회사채 발행액은 2020년에 전년 대비 20% 증가한 5조4000억달러, 2021년에 5조2000억달러로 각각 과거 최고와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재무 건전성이 취약한 기업들이 발행해 ‘투기등급’으로 분류되는 저신용등급 채권 발행액은 2020년에 전년 대비 30% 증가한 5727억달러, 2021년에는 6706억달러로 2년 연속 사상 최대를 경신했습니다. 상환과 금리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면 저신용평가 기업부터 파산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면, 다시 미국 장기금리의 역사적 추세, 과거 실패의 재연 가능성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960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장기금리를 보면, 대체로 미국의 인플레율보다 높습니다. 즉 실질금리(장기금리-인플레율)가 플러스였다는 겁니다.

하지만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 때는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였죠. 당시 상황을 보면, 1973년 1월에 3.6%였던 인플레율은 1차 오일쇼크 영향에 따라 1974년말에는 12%대로 치솟았습니다. 그리고 물가 급등에 뒤를 이어 장기 금리도 6.5%에서 8.4%로 상승했죠,

당시 물가가 12%대까지 치솟았던 이유는 오일쇼크라는 직접적 이유뿐 아니라, 당시 연준이 “물가상승은 일시적”이라며 빨리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인플레가 잡히는 듯했습니다. 1977년 물가상승률이 5% 안팎으로 떨어졌으니까요. 하지만 2차 오일쇼크로 다시 급등, 1980년 물가상승률이 15%에 달하게 되죠. 여기서도 장기금리는 시차를 두고 인플레 상승의 궤적을 따라 계속 오르면서 10%대 중반에 도달합니다.

지금 소비자물가상승률이 7%를 상회한 가운데 장기금리는 2%에 머물러(이것도 최근에 급등한 것입니다), 실질금리는 큰 폭의 마이너스가 되고 있죠. 하지만 과거의 사례, 즉 ‘미국 장기금리는 인플레율보다 한발 늦게 대응하지만 결국은 그 뒤를 따르게 된다’는 것, 특히 1970~1980년대 사례를 보면 장기금리가 앞으로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저금리 국면에서 쌓아 올린 과잉 채무 문제가 터질 우려가 있겠죠. 1920년부터 현재까지의 미국 채무 비율(비금융 부문 즉 정부·가계·기업의 채무 총액을 명목 GDP로 나눈 것)을 살펴보면요. 최근 비율은 285%로 1933년 대공황기 정점 때(299%)와 거의 같은 수준입니다.

초저금리로 버텨낸 거액의 채무는 약간의 금리 상승으로도 지급불능 상황을 가져올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라면 금융 위기에 빠져도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구제할 수 있었죠. 하지만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지금 상황에서 같은 방식을 쓰는 게 어려울 겁니다.

1930년대 대공황은 ‘근소한’ 금리 상승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파탄을 불러온 사례입니다. 당시의 금리상승 폭이 그리 높지 않았는데도 위기가 터진 이유는 채무비율이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높아진 상황에서 금리상승을 맞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대공황 전야였던 1920년대 후반의 미국 주식은 빚을 지렛대로 매입됐습니다. 하지만 금리 상승으로 자금 유입이 줄어들면서 주가가 폭락했죠. 그런데 채무가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에, 불과 몇 년전이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완만한 금리상승조차 폭약이 되어버렸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각종 매물이 쏟아져나오면서 일거에 대부분의 자산 가격이 급락해 버렸죠.

여기서부터 무대는 유럽으로 넘어갑니다. 1931년 5월 오스트리아·독일의 대형 은행이 파산하면서 중부 유럽에 금융위기가 일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저신용 회사채가 매물로 쏟아지면서 가격이 폭락하고 금리가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그런 중부유럽에 고액의 자금을 빌려 줬던 영국에 위기가 미칩니다. 금본위제하의 당시 해외 투자가들은 영국 파운드와 금을 교환하려 했고, 4개월 후인 1931년 9월 영국이 보유한 금이 바닥나 버립니다.

이에 영국은 파운드화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실시했습니다. 기축통화국의 금리 인상은 순식간에 외국으로 파급, 금리가 가장 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불황기에 전 세계 금리가 동반 상승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 결과 경제활동은 한층 더 침체하고, 1933년이 되면 미국 GDP는 1929년의 절반으로 줄어 버리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1930년대 대공황이 어느 한순간에 터진 것이 아니라, 처음엔 ‘약간의’ 금리 상승이 과도한 채무 상황에 방아쇠를 당기면서, 위기가 서서히 증폭됐고, 이것이 유럽과 세계로 퍼지면서, 다시 미국을 때리는 악순환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2022년의 세계에서 일어날 것이라 보는 것은 아직 무리이지만, 대공황 때와의 유사점이 분명히 있기는 합니다. 현재의 미국 채무비율(정부·가계·기업의 채무 총액을 명목 GDP로 나눈 것)이 대공황 전야의 미국 채무비율과 비슷한 역대 최고라는 것,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인 금리상승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금리상승이 세계경제를 대공황 이후의 위기로 빠뜨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죠.

물론 지금 상황을 1930년대 대공황 전야와 연결짓는 것은 지나친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는 많은 부분에서 1907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 공황(1930년대 아니고 1907년의 위기입니다)과 비슷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월가 천재들이 고안해낸 첨단 금융공학으로 돌아가는 현대 미국에서 1907년의 금융공황이 재연될 것이라 예측했던 전문가는 거의 없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까지 생각하는 게 너무 무리라고 한다면, 1970년대 말의 볼커 연준 의장 시절을 참고해 볼 수도 있습니다. 1979년 의장에 취임해 적극적이고 과감하며 끈질긴 금융긴축으로 인플레이션 퇴치에 성공한 볼커 전 연준 의장의 길을 파월 현 연준 의장이 따르게 될 가능성에 대한 것입니다.

볼커 의장 시절, 즉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의 연준은 금융정책의 조작 대상을 단기 금리에서 금융기관이 가지는 자금량(준비예금의 일부)으로 전환해 시중에 나도는 돈을 줄여 악성 인플레를 잡으려 했습니다. 시중에 돈 푸는 것을 과감히 줄인 결과, 단기금리 목표를 올리는 통상적인 방식으로는 실현될 수 없는 금리 급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주요 단기금리인 페더럴펀드(FF) 금리의 거래수준은 1979년 9월 12% 수준에서 1981년 7월 한때 22%대로 상승했습니다. 당시 10%가 훌쩍 넘는 악성 인플레이션에 시달렸고 경기 침체와 시장 혼란이 있긴 했지만, 인플레이션 퇴치를 위한 저돌적이고 과감한 대응이 결국 성공을 거뒀고요. 찬반 논란은 있지만 일정한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볼커 전 연준 의장의 대응을 떠올리는 것도 아직 무리라고 한다면, 1994년의 긴축 국면 사례를 참고해 보면 어떨까요?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은 3%이던 정책금리를 1994년 2월부터 1년 만에 갑절인 6%까지 올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번에 0.5%나 0.75%라는 대폭의 금리 인상을 반복했습니다. 소비자 물가로 본 인플레이션율은 대체로 2%대 후반이었지만, 클린턴 정권 시대의 호황, 공장의 높은 가동률과 실업률 저하 등의 인플레 우려가 다가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인플레 예방형’ 긴축은 성공하면서, 대폭의 금리 인상에도 경기는 꺾이지 않고 장기적인 경기 확대로 연결됐습니다. 하지만 시장에 큰 혼란을 줬죠. 미국 장기금리는 5%대에서 한때 8%대 초반으로 뛰어올랐고, 1994년의 연간 상승폭은 1980년 이후 가장 컸습니다. 주가는 곧바로 9% 하락한 뒤 반등했지만 금리 인상이 끝날 때까지 3% 하락했습니다. 시장의 혼란은 멕시코의 통화 위기로 파급되기도 했습니다.

파월 의장 시대, 연준의 금리 인상은 어떻게 될까요. 2022년에 첫회인 3월에 0.25%를 뛰어넘어 곧바로 0.5%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을 포함, 최대 7회 총 1.75% 포인트 인상이라는 강경 시나리오까지 나옵니다. 이와 함께 연준은 양적 긴축(QT·Quantitative Tightening)을 병행해 적극적인 인플레 퇴치에 매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QT는 당연히 미국 장기금리 상승의 요인입니다. 과거 연준은 양적 완화(QE·Quantitative Easing) 정책에 따라 매입 채권이 상환될 때까지 수중에 돌아온 현금으로 국채를 재구매했지만, 매수세가 줄어드는 이상 장기금리 상승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기후변화 대책에 따른 물가 상승인 ‘그린 인플레이션’도 미국발 인플레와 금리 인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리스크 등과 관련한 금융당국 네트워크(NGFS)에 따르면, 2050년 탈탄소를 달성하려면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율이 최대 약 2%포인트 상승합니다. 그린 인플레의 발생 요인은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탈탄소 대응을 급격하게 진행하면서 생기는 수급의 핍박입니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제품의 생산을 억제하면서 아직은 불안정한 탈탄소 기술에 의존하게 되면, 공급 부족이 발생하고 자원·제품 가격이 상승하게 되겠죠.

두 번째는 탈탄소 기술개발이나 설비투자의 비용이 가격으로 전가되는 것입니다. 탈탄소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투자가 반드시 생산능력·매출향상에 기여하지는 않으니까요.

세 번째는 탄소가격의 도입·인상입니다.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과세 등으로 기업·소비자를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생산 방법·제품으로 유도하는 구조인데요. 탈탄소를 위한 중요한 도구이지만, 부과되는 배출비용만큼 가격은 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중국에서 그동안 낮은 환경비용을 기반으로 대량 수출되던 철강·기타금속 등의 가격도 지속적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은 ‘2060년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실질 제로’를 목표로 내걸었는데, 달성하려면 환경규제 강화와 감산이 요구됩니다. 중국 철강공업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14차 5개년 계획 기간(2021~2025년)에 2억3600만t 분량의 철강 생산능력을 단계적으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또 2억2100만t에 대해선 환경 부담이 적은 생산 공정으로 변경할 계획입니다.

중국은 석탄 화력으로 발전한 값싼 전력을 통해 구리에서 철강에 이르는 다양한 금속을 생산·수출해 왔죠. 국제 시장 가격을 중국이 지배하면서 세계 물가 억제에도 일조해 왔습니다. 이런 역할에 제약을 받는다면, 세계적으로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게 되겠죠.

게다가 친환경정책 전환은 관련 자원에 대한 쟁탈전과 자원 가격 상승을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 전환이 빨라지면서, 배터리·모터에 사용되는 광물자원 조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죠. 전기차 등에 쓰이는 광물자원은 산지(産地)가 석유 등의 기존 자원보다도 집중돼 있고, 배터리 핵심 재료인 리튬·코발트는 상위 3개국에서 전체 물량의 80%가 생산될 만큼 집중도가 심각하죠. 2020년 기준으로 리튬은 호주·칠레·중국 등 상위 3개국이 생산의 88%, 코발트는 콩고민주공화국 등 3개국이 7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희소자원 사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술 발전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환경친화정책 전환에 필요한 자원의 가격 급등이 제한적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기는 하죠. 하지만 세계적 인플레의 큰 위험요소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전기차뿐이 아닙니다. 태양광·풍력 발전 등의 재생 가능 에너지, 송·배전 설비 수요가 성장하면, 배터리·모터·전선 등에 사용하는 광물 자원의 수요도 함께 높아지게 될 겁니다. 영국 조사회사 우드맥킨지는 2040년의 리튬 수요가 2020년의 12.5배인 375만톤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는데요. 증가분 중 전기차 배터리용이 200만톤, 전력저장용이 130만톤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한편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5월, 지구기온 상승을 2도 미만으로 억제하는 시나리오의 경우, 2040년 리튬이온 배터리의 주요 희귀 금속인 리튬의 총수요는 2020년 대비 42배, 코발트는 21배, 니켈은 19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자원뿐 아니라 부품 공급난에 따른 가격 인상 문제도 반도체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EV) 등의 모터에 사용하는 전기강판 공급이 2025년 이후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전기차용 모터 1개당 60~150달러(약 7만~18만원) 어치의 전기강판이 사용된다고 하는데요. 공급 부족은 당연히 최종제품은 물론 각종 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질 겁니다.

인플레가 쉽게 진압되기 어려운 다른 이유는 미국이 일정 부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는 ‘중국발(發) 인플레’ 때문입니다. 이게 특히 위험한 이유는 ‘세계의 공장’이라 불렸던 중국의 생산비 상승, 공급물가 상승이 구조적이고 장기적으로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죠.

유명한 필립스 곡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실업률이 오르면 물가가 떨어지고, 물가가 오르면 실업률이 떨어진다는 것. ‘물가를 안정시키면서 실업률도 낮춘다는 두 가지 목표의 양립이 모순일 수 있다’는게 본질이지만, 선진국 중심으로 물가·실업률이 동시에 잡히면서 그 가치가 퇴색되기도 했습니다.

미 연준은 금리를 조정해 시장 안정화를 도모하는데, 이때 연준이 보는 지표 두 가지도 물가와 실업률입니다. 최근까지 연준이 초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1990년대 이후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기술혁신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역시 근본적인 이유, 미국이 물가와 실업률을 동시에 잡을 수 있었던 핵심 이유는 산업의 글로벌화에 따라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싼값에 공산품과 노동력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1980년대 이후 풍부한 노동력을 지렛대로 싼값에 대량의 공산품을 수출했던 중국은 ‘디플레이션의 원흉’으로도 불렸습니다. 세계적으로 공산품 가격 파괴가 진행됐고, 한 때 두 자리 수에 달했던 선진국 인플레이션율은 1990년대 중반 2%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저가 생산과 물가 유지의 톱니바퀴가 역회전하기 시작한 겁니다.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정권에서도 가속하고 있는 중국을 뺀 공급망 재구축, 특히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심각한 보틀넥 뿐 아니라 구조적 비용 상승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달러 살포와 그동안 미국이 누려왔던 중국의 저가 공산품·서비스 혜택이 줄어드는 ‘이중 부담’이 세계적으로 인플레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에서 이제 시작된 고물가가 쉽게 잡히기 어려울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대만·한국 입장에서는 반도체 생산을 늘리려 할 때, 자국 내의 제조 클러스터를 확장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죠. 반도체 생산만큼 시설 집약과 규모의 경제가 빛을 발하는 산업도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압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시설·자본의 집약체를 미국에 또 하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전략적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효율 면에서는 심각하고도 전방위적인 고비용을 유발하게 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미 작년 4월 “미국이 반도체를 자급자족하려면 향후 10년간 1조4000억 달러 이상의 투자와 정부 혜택이 필요하다”고 썼습니다. 미국의 안보를 위해 필수적인 일이라고 미국은 주장하지만, 그 논리에 전 세계가 엄청난 고통을 치르는 셈입니다. 이 모든 것이 비용 상승으로 연결됩니다. 그렇게 상승된 비용은 미국의 인플레 진압 노력에 큰 장애요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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