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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이러는거 원순이가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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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이러는거 원순이가 좋아할까?"
  • 딴지 USA
  • 승인 2023.08.0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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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다큐 <첫 변론>시사회장에서 어떤 젊은 여성이 들고 있던 피켓 글귀이다. 예전 신지예가 "박원순, 더러워"라는 피켓을 들고 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대학때 배운 페미니즘은 이런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열한 조롱과 혐오는 페미니즘의 적으로 배웠는데, 소위 페미니스트들이 그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이미 한국 사회 페미니즘은 정신병리학적 현상이 되버리고 그들의 철학은 붕괴되어 스스로 길을 잃었다. 이자들이 이러는거 한두번이 아닌지라 어린이들의 미숙한 행동에 시비걸지 않듯 그냥 그런가보다 넘어가려 했으나 이런 행위가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한마디 하련다.

자유의 본질이란 "나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막아선 안된다."에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 역사의 대원칙이다. '불변상수'란 소리다. 이것이 깨지면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라 말하기 어렵다.

진보학자로 알려진 '노엄촘스키'는 아이러니 하게도 좌파로부터 더 많은 공격을 받아왔다. 이유는 그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선 안된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근데 좌파의 공격 대상이 됐을까? 그는 모든 정치범을 위한 탄원서를 써주었는데, 그중에는 극우 정치인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자유는 대원칙으로 정치적 성향에 따라 나뉘는 '변동가치'가 아니었다. 본인이 싫다고 거부한다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황당한 주장을 하던 그 주장으로 인해 정치적 압박을 받아선 안된다는게 그의 생각이고, 신념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와 적이 되는 극우정치인이라도 발언했다는 이유만으로 물리적 제약을 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했고 정치적 고초를 겪을줄 알면서도 기꺼이 탄원서를 써주었다.

지식과 종교를 나누는 기준은 여기에 있다. 지식은 반대되는 정보를 교환하고 종합함으로써 진리로 나아가지만, 종교는 지식을 제한함으로써 믿음으로 나아간다. 종교의 속성 자체가 '계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위반되는 그 어떤 지식이나 의견도 용납되지 않는다. 과학은 늘 '반증가능성'이 있어야 과학이듯 사회과학도 마찬가지다. 반증되지 않는 지식은 종교적 믿음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다양하고 복잡한 일들이 있고 인간이 이런 사안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여러 의견과 여러 각도의 견해를 따져봐야 한다. 그 어떤 주장도 자신의 믿음과 배치된다는 이유만으로 제한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이 것을 제한한다면 그 순간 종교 행위가 되는 것이다.

지금 저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반한다는 이유로 다큐 개봉을 막아서려 한다. 그래 백번 양보해, 거기 까지는 좋다고 하자. 그러나 최소한 주장을 할때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한다. 무슨 초딩들도 아니고 그런 예의 마저도 찾아볼수 없으니 그 빈약한 수준에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치 평화 운동을 한다는 자들이 총칼을 들고 상대방을 협박하는 격이다. 목적과 과정이 상충되는 모순적 상황은 결국 자신이 자신을 죽이는 자해 행위에 가깝다. 우리를 조롱하지 말라면서 상대를 조롱하고, 우리를 혐오하지 말라면서 상대를 혐오하고, 우리를 사랑해 달라면서 상대를 저주하고,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라면서 상대의 자유를 꺾으려 한다.

그것이 지금 당신들이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즉 페미니즘의 진짜 적은 현재 당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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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H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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