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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하나, 임기 내 종전선언도 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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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하나, 임기 내 종전선언도 가능해 보인다
  • 딴지 USA
  • 승인 2021.12.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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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이 3박4일 호주 국빈방문을 하고 돌아왔다. 팬데믹으로 20년 3월 이후 자국민 귀국도 막는 강력한 국경봉쇄 이후 첫 번째로 초대한 외국정상이었다. 문대통령은 호주 육군에 1조원대 K-9 자주포 수출계약을 맺었으며 핵심광물과 희토류 공급망 협력, 방산협력 등 4건의 업무협정을 체결하고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로 격상시켰다.

특히 방산협력과 광물공급선 협의는 이후 경제협력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보동맹을 짐작하게 한다. 얼마 전 요소수 사태에서도 보듯이 핵심품목 공급선 다변화는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처럼 사전준비하지 않으면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매우 중차대한 일이다. 희토류와 같은 재생에너지 및 첨단 제조분야에 필수적인 핵심광물 공급의 확실성을 제고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성과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외교안보분야에 공을 들여왔다. 지난 5월에는 덴마크와 포괄적 녹색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하고 해운분야의 협력을, 6월과 9월에는 오스트리아, 몽골과 전략적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몽골은 신북방정책과 연계할 수 있는 토대를, 오스트리아는 기후환경과 미래 첨단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영국에서 열린 G7 회의에서도 각국과 정상회담을 통해 기후변화 환경협력, 반도체, 양자간 교역과 반도체, 전기배터리 등 국내 그린산업의 해외진출기회 확대와 경쟁력 제고를 위한 각종 파트너십을 확인했다.

실로 올 한해 문대통령의 외교성과는 동맹, 동반자관계를 재확인하고 경제협력이라는 미래 먹거리 산업의 활로를 넓히는 부단한 노력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언론에서는 문대통령의 외교관계에 기울이는 노력에 대한 보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빈껍데기를 넘어 국고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이명박의 자원외교 부풀리기 보도를 떠올리면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국민들은 방역으로 고통받는데 대통령은 해외여행이나 가느냐는 극우커뮤니티의 더러운 입을 빌어 국가원수의 외교활동을 해외여행으로 폄훼는 짓을 나서서 하고 있으니 개탄할 노릇이다.

그럼에도 임기 말 대선정국으로 요동침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40%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언론이 정부의 방역과 외교성과를 폄하한다 해도 국민들은 부동산 문제에 대한 불만은 있을지언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큰 점수를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개혁진영에서 그동안의 인사 참사와 검찰의 준동에 기민하게 혹은 적절하게 권한을 사용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과 원망을 쏟아내는 것이 더 큰 것 같다. 나또한 조국 장관에 대한 도를 넘는 저인망수사에 촛불시민들의 분노가 서초동을 뒤덮었음에도 끝내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임면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점,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 징계에 들어갔을 때 힘을 실어주지 않고 사임으로 이어지게 한 점 등에 실망을 많이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문재인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정치할 생각이 없는 그를 2012년 촛불이 소환했고 2016년도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 하는 문재인을 또다시 소환한 것도 촛불시민이었다.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받은 소명은 무당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비정상을 정상국가로 만드는 것이었다. 인수위도 없이 개문발차했음에도 안전한 기차로 갈아타게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평가받을 만하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사사건건 국힘당이 발목잡아 국가 예산안조차 통과되지 못할 정도였다.

국민들은 강력한 개혁을 원했고 문대통령도 이에 부응했다. 오랫동안 재벌개혁, 경제개혁 분야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던 장하준, 김상조, 김동연 등 전문가그룹을 기용했고 검찰에는 박근혜 국정농단을 수사하며 검찰 내 따돌림을 받아 한직으로 좌천된 윤석열을 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하고 끝내 검찰총장으로 기용한 것도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당시엔 이명박근혜 정부의 검찰 내부정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개혁을 이끌고 갈 적임자로 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고 당시 많은 국민들이 환호했다. 이제와서 윤석열을 추천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결과적인 얘기일 뿐이다. 여기까지가 민주개혁진영의 실력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윤석열은 검찰의 내부개혁을 추동해낼 만한 인물이 아니었을 뿐더러 인간적인 면모로서도 수준이하임이 드러났다. 그뿐인가 주목받았던 숱한 인사들과 특히 국토교통부 장관, 교육부장관은 국민의 원성이 자자한데도 경질하지 않고 끌고 갔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눈치보지 않고 일할 수 있게 각부처 장관을 지켜주겠다는 그의 태도에 국민들은 고구마를 싫어하게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문재인이고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인 것을. 국가의 기강과 질서를 바로 잡고 법치의 기본을 다지는 정부, 어떤 경우에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부가 스스로 정한 목표이자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만약 문대통령이 임면권을 행사하여 윤석열을 해임한다고 조국을 살릴 수 있었을까. 이미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과 조작된 뉴스, 개혁적인 이미지를 공격하는 언론카르텔의 마타도어 총공세로 전 국민을 호도하던 상황에서 윤석열을 쳐낸다 해도 조국을 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역풍이 불어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어차피 조국은 죽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미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야 할 단계에 이르렀을 때였다.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사 김경록 PB는 그의 책, <누구나 피의자가 된다>에서 언론이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내고 편법을 넘어 위법행위까지 하는데 세무조사 같은 걸로 어떻게 안 되냐고 조국 장관에게 물었을 때 조국 장관은 “아무리 좋은 목적이 있다 해도 과정상에 위법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내가 우병우 같은 사람하고 다를 바가 뭐냐. 내 권한도 아니고 절차상 문제가 있는 행동을 절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고 썼다.

조국과 문재인은 같은 과의 사람들이다. 두 사람 모두 초인적인 인내심을 가졌고 역사에서 자신의 쓰임이 무엇이고 어디까지인지를 적확하게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심전심이었을 테고 단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해줄 게 없는 주군이었어도 조국은 추호도 문대통령을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당시 거짓과 음모의 프로파간다를 자임한 언론 환경에서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묘수란 존재하지 않았음을 두 사람 모두 너무 잘 알았을 것이다.

국민들이 촛불정부를 만들어내면서 요구한 것은 강력한 개혁드라이브였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나라다운 나라, 상식이 통하는 나라였고 촛불시민의 광장민주주의는 일상민주주의로까지 굳건하게 확산되지 못했다는 것은 조국 정국이 바로미터로 보여주었다. 문대통령에게 뭔가 특단의, 무엇이든 마지막 한 쾌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마치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알며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민주주의 지도자를 말하면서도 어쩌면 속으로는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상을 요구한 것의 방증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가 바둑 고수라는 점에서 심한 착시현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 아니 국정운영에 ‘묘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둔한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사실 문대통령의 실정이라는 게 인사참사와 부동산 말고 또 무엇이 있는가. 그럼에도 그의 실정인 것처럼 불만이 높아지는 것은 입법부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탓이 크다. 개혁을 속도감있게 해나가야 할 주체는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국회이고 그래서 국민들이 의회독재. 개혁독재를 하라고 180석을 몰아준 것이다. 그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문재인대통령에게 투사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문재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우리는 문재인에게 그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인 지사적 선비적 면모에 노무현의 승부사같은 정치력과 김대중의 흡입력 있는 리더십 모든 것을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그가 현란한 정치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의 정치인이 아니라는 것을 다 안다. 그가 인재영입을 위해 각계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닐 때 한결같이 했던 얘기들은 ‘눈만 꿈벅꿈벅하고 앉아있더라’는 것이었다. 그게 문재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다. 미련하리만치 원칙을 고수하는 그의 덕목이 국정운영에 한계인지 튼튼한 주춧돌을 놓은 것인지는 향후 역사가 평가해줄 거라고 믿는다.

문대통령이 사교적이지 못한 스타일이라고 알고 있지만 외국 정상들과의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국내정치에서처럼 눈만 꿈벅꿈벅하는데도 호감을 사다니 외국 정상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경제협력, 방산협력을 이끌어낸 성과는 김대중, 노무현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정치력이 있다. 이게 나랴냐 하고 분노했던 시기의 국가지도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원칙을 지키고 국가기관을 필요에 따라 동원하지 않는 덕목을 가진 사람이 옳았다.

지난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그가 선택된 것도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었음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국가는 정상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애당초 광장의 촛불시민들이 그에게 권력을 위임할 때 현란한 정치력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끝에 불도저같은 추진력과 배짱을 가진 실용적인 이재명을 후보로 선출하게 된 것이니 이 모든 것은 역사의 기나긴 선에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잔여 임기 6개월을 앞두고 국민들은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게 나라냐를 외친다. 국민 앞에 얼굴 내비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후보부인, 무식해도 너무 무식해서 동네 통장도 못할 것 같은 후보, 대학생의 표창장은 범죄이고 대학강사의 이력서에 경력부풀리기 및 날조는 실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라는 점이 국민들을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하며 이게 나라냐 라고 묻는다. 어쩌면 우리는 수구기득권카르텔이 거대한 균열을 낼 때까지 쉼없이 이게 나라냐 외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이래봬도 무혈혁명으로, 평화적으로, 단한번의 불미스러운 일도 없이 무능한 정권을 끌어내린 위대한 촛불시민이 아닌가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의 기강과 질서를 공고히 하고 외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끊임없이 격상시키며 미래 먹거리 시장의 토대를 닦는 것이 그가 임기 말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이며 그 토대 위에서 다음 민주정부는 틀림없이 더 큰 날개를 펴게 될 것이다. 문재인은 국민이 조국을 넘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조국을 넘고 문재인을 넘어 저 멀리 목표지점까지 가는 것, 지난한 오래달리기 경주가 될 것이고 문재인은 그 토대를 탄탄하게 닦았다. 이제는 우리의 몫이고 지금 그렇게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과 5년 전 도망가느라 미처 없애지 못하는 바람에 박근혜 정부의 치부를 담은 문서들이 캐비닛에서 쏟아져 나올 정도였으니 넘겨받은 나라꼴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는 5년만에 전세계 호모 사피엔스를 강타한 유례없는 팬데믹 혼란 속에서도 세계각국의 러브콜을 받고 단군이래 최고의 국격을 국민들에게 선사했다. 이는 문재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그가 공들이고 있는 마지막 하나, 임기 내 종전선언도 가능해 보인다. 국가지도자로서 다음 세대에 경제 먹거리를 준비해주고 전쟁위험 없는 평화를 물려주는 것 이상의 선물은 없다. 대선 국면이 되면 야당 뿐만아니라 여당에서도 대통령을 밟고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만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고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짚고, 넘을 것은 넘고 인정할 것은 우리끼리라도 자축하며 그렇게 갔으면 좋겠다. 나는 마지막까지도 문재인이 나의 대통령이어서 참 좋다고 여기게 되어 참 기쁘다.

사진은 박노해의 <걷는 독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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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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