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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과 수면제, '약사의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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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과 수면제, '약사의 잔소리'
  • 딴지 USA
  • 승인 2021.12.11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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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19

<약사의 잔소리>

수면제를 20알이나 먹었지만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두 번이나 그러니 이상했다.

그때 별안간 다락방 문이 열렸다. 매형이었다. 매형은 연탄불을 보고는 상황을 금방 눈치챘다.

“처남, 오늘 오리엔트 면접날인데 왜 이렇게 누워있어?”

매형은 짐짓 연탄가스가 가득 찬 다락방 상황을 모른체했다. 그리고는 공장까지 따라오며 괜한 우스개를 늘어놓았다.

오리엔트에 도착하니 면접 볼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수위장이 사무실로 들어가게 해주었다. 아버지가 수위장에게 건넨 3천 원이 효능을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문득 매형이 내 굽은 팔을 어루만졌다.

“내가 처남 팔 고쳐줄게. 걱정하지 마.”

누나네는 우리 집보다 더 가난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과일행상을 하는 매형에게 그럴 돈은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는 매형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자꾸 눈물이 나려 했다. 그즈음 나는 툭하면 눈물이 났다.

오리엔트에 결국 합격했다. 그건 대학진학의 완전한 포기를 의미했다. 돌아보지도 않을 생각이었던 오리엔트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들어갔다.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수면제를 먹었는데도 왜 잠들지 않았을까? 나는 이윽고 약사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20알씩이나 먹고서도 멀쩡하게 면접을 보러 갈 수는 없었다. 웬 어린놈이 수면제를 달라하니 상황을 짐작한 약사는 소화제 같은 것을 잔뜩 줬던 것이다.

동네약국의 그 약사를 생각한다. 약사는 폭풍 잔소리를 해댔지만 어쩌면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얘야. 서럽고 억울하고 앞날이 캄캄해 죽을 만큼 힘들어도, 삶이란 견디면 또 살아지고, 살다보면 그때 죽고 싶었던 마음을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편안하고 좋은 날도 올 거란다. 그러니 힘을 내렴.’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서로를 향한, 사소해 보이는 관심과 연대인지도 모른다.

약사는 처음 보는 나를, 세상 슬픔은 다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생을 끝장내려고 하는 소년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팔을 고쳐주겠다던 내 가난했던 매형의 말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홧김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세상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생이 벼랑 끝에 몰릴 때, 듬직하게 기댈 수 있는 사회이길 희망한다.

#이재명 #웹자서전 모아보기 : https://bit.ly/3mggyFy

*참고도서 <인간 이재명> (아시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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