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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망하고 있나? '부조리에 침묵·순응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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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망하고 있나? '부조리에 침묵·순응한 사람들'
  • 딴지 USA
  • 승인 2021.05.11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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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왜 망하고 있나 >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에 갖는 시선과 감정은 묵시적이다. 일본 멸망설, 일본열도 침몰설 같은 것들은 오래전부터 가벼운 농담처럼 회자되는 묵시였다. 사실 묵시는 미래 사건에 대한 예언으로서보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기원의 의미가 더 크다. 우리는 일본이 망하기를 오래전부터 기원하고 있었다. 식민지 시대의 원한이 이런 묵시적 기원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정말 망하고 있는 것 같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본다. 일본이 망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1990년대일 것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아있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내수가 위축되고 기업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금융이 부실화되고 일본 전체의 경기가 침체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거기다 2011년에 규모 9.0의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이 무너졌다.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베 정권은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였다. 해결이 아니라 사건을 더 키우는 쪽으로 갔다.

일본의 수산물들이 국제시장에서 의심받기 시작했고 금수조치를 당하게 된다. 도쿄올림픽을 통해 원전 사고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경제를 도약해보려 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게 무산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거기다 올림픽을 강행하려고 코로나 확진자 수치를 낮추기 위해 기만적인 방역을 한다. 아예 방역을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올림픽은 물 건너간 것 같다. 그리고 방역 실패와 의료시스템 붕괴로 인해 일본 열도는 아비규환의 지경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올림픽은 차치하고라도 몇 단계씩 변이가 일어난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 국민이 그대로 노출되어 대책 없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시민들이 벌써 길거리에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무능한 정부는 탄핵을 당하고 각료들은 실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정책에 항의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의 정신구조는 한국인들과 반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간혹 모자란 사람들이 이러한 일본인의 특성을 세련된 합리주의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것은 합리적인 것도 아니고 세련된 시민의식도 아니다.

일본인들의 이러한 정신 구조에 대해 제일 먼저 분석한 것은 미국이다. 2차대전을 거치면서 일본인들을 직접 경험한 미국은 매우 당황하게 된다. 천황을 위해 자기 몸을 불태우는 카미카제나 사무라이식 할복 문화, 완전히 궁지에 몰린 군대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 들을 보면서 매우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미 국방성은 적국 일본의 정신구조를 심층 연구해 달라는 프로젝트를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요청한다. 그 결과로 나온 보고서가 ‘일본문화의 패턴’이다. 이후 이 보고서는 수정을 거쳐 <국화와 칼>이라는 책으로 출간된다. 일본의 정신 구조에 대해 가장 정확한 분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직까지도 인정받고 있는 고전이다.

베네딕트는 이 책에서 일본인의 정신구조 안에 카스트가 있다고 말한다. 막부시대를 끝내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메이지유신이 카스트가 시작된 시점으로 본다. 메이지 정부는 백성들에게 각각의 자기 계급에 맞는 위치를 설정하고 그 계급적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했다. 그 계급의 최고 정점에 천황이 있다. 그러므로 일본인들은 자기 계급의 경계선을 지키는 것을 ‘분수’를 안다,고 말한다. 일본인들에게 분수를 모른다는 말은 배은망덕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분수를 알라’는 말이 있는데, 식민지 시절 일제의 문화적 관습에서 온 것이다.

이 계급 경계선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온(恩)이다. 온은 상층 카스트에 대한 복종을 위해 내면화된 윤리다. 상부 계층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으니 그 은혜를 갚는 것은 마땅한 도리라는 것이다. 그 도리를 기무(義務)라 하는데, 이 기무를 행하는 것을 채무관계로까지 확대시킨다. 기독교의 원죄 같은 것이다. 채무를 변제하지 않는 자는 배신자, 부도덕한 자로 낙인찍힌다. 그러므로 그것을 지키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이들에게는 최대의 과제다. 인정받기 위해 노예적 굴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온(恩)’ 문화다.

일본에 세습 정치인들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중의원 중 26%가, 집권 자민당 의원 중 40%가 세습 정치인이다. 그리고 일본 정부 각료의 50% 정도가 세습 관료라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본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진다. 인도의 카스트가 표면화되고 제도화된 것이라면 일본의 카스트는 사람들의 의식에 각인되고 내면화된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정치인들이 무능과 부패로 얼룩지더라도 비판받거나 탄핵당하는 일이 없다. 지금까지 자민당 정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의 독특한 선거문화도 일본의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후보자의 이름과 기호에 기표하는 방식이 아닌, 직접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 넣어야 하는 게 일본의 투표 방식이다. 투표자가 후보자 이름을 가나(かな)로 직접 써 넣어야 하는데 한 획이라도 틀리면 무효 처리한다. 이렇게 해서 무효 처리된 투표지가 비상식적으로 많이 발생한다. 그러니 무효화되지 않게 하려면 이미 익숙하게 알려진 기존 정치인 가문의 이름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후 70여 년 동안 이 투표 방식이 바뀌지 않고 유지된 게 일본의 후진 정치를 지속시킬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일본은 지금 망하고 있다. 부조리에 저항하지 않으면 부조리가 상식이 되고 그것은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각각의 계급적 경계선 안에서 분수를 지키며 침묵하고 순응하는 사람들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회 안에도 '온(恩)'이 있다. '은혜'라는 말, 말이다. 은혜로 하자, 라는 말처럼 부도덕한 말도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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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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