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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과기대가 문을 닫은 사건이 크게 다가온다
 회원_221251
 2021-11-29 12:01:15  |   조회: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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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마무리되며, 개인적으론, 연변과기대가 문을 닫은 사건이 크게 다가온다. 보수 복음주의 크리스챤들과 교회들에 의해1992년부터 시작되었던 이 시도는 거의 삼십년을 간 셈이다. 이 기간 중 중간 쯤에 해당되는 2000-2010년의 십년을 함께 했고, 삼십대 중반에 들어가서 사십대 중반에 나오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학교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새로운 돌파를 얘기하고. 어떤 이들은 은퇴한 교수들의 노후를 얘기한다. 또, 어떤 이들은 학교가 중단되었기에, 실패가 아닐까 의심한다.

물론, 왜 이 학교가 수명을 다할 수 밖에 없었는가는 곰곰히 생각하고 정리할 이슈이다. 특별히 한국 기독 공동체 가운데 만연한 약한 거버넌스와 전근대적 가부장주의가 이 학교의 운영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결국 학교를 중단하는데 한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마냥 오래 간다고 해서 원래의 정신이 이어짐은 아니다. 지금의 연세대학교나 이화여대가 일류학교 되었고 지속된다고 해서, 다른 학교들과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나? 과거의 의미들이 보편적 가치로 제시될 뿐 아니라, 졸업생들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나?

만주 지역에 있었던 다른 학교들을 기억한다. 서전서숙이 2년 남짓, 신흥무관학교가 9년, 라자구 사관학교가 1년 정도, 명동학교가 17년 정도 등등 잠시 있다가 불꽃처럼 사라졌다.그러나, 여전히 이 학교들이 재론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좌진. 이동녕. 홍범도. 윤동주. 나운규. 장준하. 문익환. 김재준. 안병무. 강원룡. 그 제자들이 살았던 삶. 그리고... 북한과 남한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독립사적 의미가 연변에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의미는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의 영화와 관계없이, 보편적인 선과 연결되어 다른 이들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공동체의 제자들이 그 후에도 그 가치를 계승하여 여러 모양으로 새로운 사건들을 만드는 연속성을 만들어야 할게다.

스토리. 그 가치를 담는 스토리. 담겨진 보편적인 선. 그로 인한 역사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의미를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제자들의 삶이다. 이런 점에선, 아직 연변과기대는 끝나지 않은게다. 어쩌면 새로운 시작이겠다.

김진경 총장에 의해서 쓰여진 책들이 있기는 하나.... 조선말부터 내려오는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의미. 그 떄부터 이어져오는 동북아의 전쟁과 갈등과 긴장 가운데 평화와 회복이라는 미래적 의미를 담는 역사적 재해석이라고 보기엔 약하다. 게다가 이런 가치를 소통하고 정리하고, 살아낼 이는 외부인이 아니라, 조선족 그 자신이어야하지 않을까?

어떤 이는 연변과기대의 의미가 평양과기대로 이어진다고 주장을 하나... 그 역시도 의미와 가치를 정리할 때에 연결성이 살아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연변과기대 졸업생들 역시 자신들이 다녔던 학교의 의미를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가치로 연결치 못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예수 믿게 된 친구들은 기독신앙을 갖게 된 것. 신앙이 없던 친구들에겐, 한중 수교와 더불어 일어난 경제교류 가운데 좋은 직장의 기반이나 한국 사회로 건너오게 된 징검다리 정도? 아니면 따뜻했던 교수님들과의 추억?

그동안 졸업생들의 숫자는 약 만명 정도. 수많은 이들이 전세계에서 단기로, 장기로 와서 이 청년들을 도왔다. 그 헌신은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족을 역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깊이 이해하지 못했고, 공부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를 주기만 했던 스승들의 한계는 한국 선교의 한계이기도 하다. 제자들에게도 개인신앙을 넘어서서 조선족 자신으로서의 가치를 깨우도록 돕지 못했던 한계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돌아볼 때 부끄러운 일이다. 많이 그렇다... 좁고 작은 틀의 신학.

연변과기대 사건이 보편적 가치를 담기 위해서는 조선말부터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 동북아의 평화라는 그림을 생각해야 한다. 그 흐름 속에서, 현재를 재해석하고, 의미를 내면화하고, 현실을 살아내는 졸업생들의 삶이 연변과기대에게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게다.

학교를 살리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그보다는 이 학교의 의미를 얘기하고 성찰하고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과연.... 이 학교를 다녀갔던 교수들이나, 크리스챤들, 졸업생들이 개인 전도와 제자 사역을 넘어선 하나님나라의 역사성과 총체성을 함께 성찰하고 정리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역사를 얘기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경계한다. 오해마시라. 역사를 쓰자는 얘기가 아니다. 연변과기대는 아직 끝난게 아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 졸업생들의 삶, 그리고 평양과기대의 흐름은 미래형이며, 여기에 바른 가치를 부여하자는 얘기다. 역사기록이라는 면에서도... 이런 성찰의 대화와 기록들과 공유가 없다면, 결국 후대에 남을 자료 역시 변변치 않은 것들만 남게 된다.

물론 이 학교를 구성하던 대부분은 내세지향적, 개인구원 차원의 복음에 갇힌 한국교회의 한계 안에 있던 사람들이었고 제자들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상황이라는 힘도 있다. 역사의 격동과 갈등을 삶에 담고 있는 조선족. 동북아의 평화라는 진보적 미래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 이런 것들이 모여서 새로운 성찰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

지금은 이 작업이 필요한 때다. 정말, 연변과기대를 소중히 여긴다면... 또다른 연변과기대 같은 사건이 다양한 모습으로 일어나길 바란다면... 그 본질을 함께 생각하고 정리하고 나눠야하지 않을까? 당연히 이 일의 주체는 이 학교 졸업생들이 되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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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9 1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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