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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한 목사와 안수집사의 신앙 간증, 하나님 나라 이야기
 회원_474196
 2020-11-11 04:38:38  |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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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전이었다.

담임으로 섬기던 남서울평촌교회 안수집사 한 분이 어렵게 신장이식수술을 받게 되었다.

당뇨병을 오래 앓았고, 주기적인 투석으로 고통을 당하던 중이었기에 장고 끝에 신장이식을 신청하고서도 맞는 신장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던 중 신장이식수술을 받게 된다 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으로 늘 기도하던 담임목사로서는 소위 한국 최고의 병원에서 이식수술을 하게 된 것이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기에 축하를 전할 정도였다.

수술이 잘 끝났다고 했다.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실을 가기 전 중간단계 병실까지 왔다.

그런데 갑자기 염증이 생기고 상태가 좋지 않아 의식을 잃고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갔다.

당시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의사가 가족에게 이렇게 된 경우 다시 회복된 예가 드물다며 기도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 소식을 들은 것이 금요일이었다.

금요기도회 개인기도 시간에 집사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장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두 손에 대고,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서 장의자를 있는대로 힘껏 내리쳤다.

"이게 뭐하는 겁니까, 데려가실려면 아예 처음부터 데려가시든지, 사람들이 기도응답 받았다고 있는대로 기뻐하게 만들어 놓고 지금 어쩌자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 겁니까?"

연속으로 장의자를 내리치며 또렷하게 소리를 질렀다.

늦은 시간이어서 사람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마 들은 사람이 있었다면 놀라서 눈을 뜨고 쳐다 보았을 만한 소리였고, 기도내용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주저앉아 엉엉 울며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며칠 후 신앙없다는 그 의사가 말했다고 한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도 많이 하신 모양이네요"

또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병실에서 그 집사님을 웃으며 다시 만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만에 퇴원한 집사님은 아파트 현관 계단 한 칸을 오르지 못해 한참 애썼다고 들었다.

집안에서만 걸음떼기를 한참 연습한 후, 외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외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그리고 또 얼마있지 않았을 때 집사님은 갑자기 안수집사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아무런 사역을 할 수 없으면서 직분만 갖고 있는 것이 부담이라고 하셨다.

나는

"집사님은 예배 참석하시는 것 자체가 큰 사역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집사님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우리나라 제일이라는 병원에서 가망없다고 한 사람이 살아서 예배에 참석하고 있지 않습니까?

봉사의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지금도 우리 기도에 응답하심을 몸소 보여주시는 사역도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니 집사님은 안수집사직을 잘 감당하고 계시는 겁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집사님은 잘 받으셨고 안수집사직을 계속 감당하셨다.

집사님은 새롭게 살게 된 인생을 철저히 덤으로 여기신 것 같다.

소탈하게 타인에게 다가가는 일을 하셨다.

한번은 내게 메일을 보내셨다.

담임목사인 내게 오는 메일은 대부분 교회 사역에 대한 제언이나 신앙에 대한 질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집사님의 글은 일상을 아주 개인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이야기였다.

말 그대로 경수필이었다.

마지막에 이런 글 가끔씩 보내도 되겠냐는 질문까지 담아서.

나는 흥미롭게 읽었다며 보내달라고 말씀드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러 사람에게 그렇게 새롭게 얻은 삶을 나누셨던 것 같다.

종종 교회당까지 가깝지 않은 거리를 걸어 오셔서 "목사님, 다른 약속 없으시면 저하고 식사나 하시죠. 다른 분들도 같이 갑시다"라고 하셨다.

안타깝게도 내가 선약이 많아 식사를 한 적이 몇 번 없다.

나는 주로 2주 전, 늦어도 일주일 전 일정이 거의 잡혔기 때문이다.

내가 미안해서

"집사님, 미리 약속을 잡으시면 어떨까요?"했더니

"가벼운 식사를 하자는 것인데 목사님이 중요한 약속을 잡지 못할까봐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담갖지 마세요"라고 하셨다.

한참 시간이 흘러 내가 담임목사 사임 계획을 밝히고, 먼 선교지의 예배당 헌당식에 부득이 참여하는 일정이 잡혔을 때 집사님은 그 여행에 동참하셨다.

실은 너무 조심스런 여행이었기에 다른 집사님이 동반자를 자처하여 동참할 정도였다.

어찌하다 보니 60전후의 남자들만의 여행이 되었다.

일주일이 되지 않는 짧은 기간동안 별별 인생얘기, 농담, 심지어 유행가까지 부르며 살을 부대꼈다.

그 때 집사님은 깜짝 놀랄 정도로 유행가를 잘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이런 흥이 있는 분이었구나, 귀국하면 같이 노래방이라도 가야겠다'

잠깐이지만 그런 생각도 했다.

그것이 집사님과의 마지막이었다.

오늘 그 집사님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쇼크로 심정지가 왔고 중환자실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하셨다.

그저 권사님의 전화로 집사님의 귀에 대고 기도해 드린 것이 전부이다.

영정사진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가 있었으나 나는 함께 웃지 못했다.

상주라고 서있는, 학창 시절부터 알고 있던 두 아들을 보는 것이 어색했다.

거의 2년만에 보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당뇨병이 심한 아버지를 극진히 여긴 두 아들의 손을 붙잡기도 하고, 껴안기도 했다.

같이 눈물을 흘렸다.

"수고 많았다. 집사님은 두 아들의 효도 잘 받고 가셨으니 행복한 것이고, 두 사람은 효도 잘한 것 다 안다" 말해줬다.

집사님,

천국 좋지요?

특유의 친화력으로 사람들 잘 사귀어 놓으십시오.

나중에 제가 가거들랑 소개 잘 해주십시오.

부탁이 있는데요,

하나님께 그 때 소리질러서 죄송하다고 말씀 좀 올려 주십시오.

"좋은 사람인데, 나 때문에 흥분했던 것 같다"고 얘기 좀 해주십시오.

가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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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1 04:3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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