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마음의소리-정치/시사] 내가 조국대전에 참전한 이유: 분노와 모욕감, 위기의식
상태바
[마음의소리-정치/시사] 내가 조국대전에 참전한 이유: 분노와 모욕감, 위기의식
  • 딴지 USA
  • 승인 2019.10.25 0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내 큰 딸은 지금 대학생이다. 그녀는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많은 스펙을 준비해야 했다. AP, SAT, GPA, 봉사는 스스로 했고, 인턴과 추천서는 내 도움을 받았다.

서울대 연구실을 빌려 쓴 것도 아니고 논문1저자로 올라간 것도 아니고 포스터로 과학경진대회에서 상을 받지도 못했다. 그냥 내가 해 줄 수 있는 수준의 도움… 딸을 잘 아는 몇몇 지인의 추천서를 받고, 내가 아는 두 회사에서 방학 때 (중국어, 영어 번역 등의) 인턴을 했다.

내 도움이 대학입시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2.
조국의 딸 조민은 충분한 재능과 노력 그리고 금수저 특유의 편법도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과 언론 그리고 정파적인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조민이 “자격이 되지 않는 학생임에도 부모의 후광과 불법과 편법을 써서 대학에 입학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부모의 후광으로 전형적인 나쁜 짓을 하는 경우는 장제원의 아들이나 홍정욱의 딸이 해당되는 것이지 조민과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조민을 누군가와 굳이 비교를 해야 하면 나경원의 아들과 비교해야 할 것이다. 사실 그 비교조차 굳이 해 본다면 조민이 얼마나 성실한 학생인지, 나경원의 아들 김현조는 얼마나 과도한 혜택을 받았는지 알게될뿐이지만 말이다.

김현조의 성실함은 내가 알 수 없으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공교롭게도 김현조가 부각되는 시점에서 조민의 이야기는 쏙 들어가더라.

3.
수험생의 부모가 되어보면 알 수 있다. 입시제도가 얼마나 복잡한지, 각 대학별로 입시요강이 얼마나 다양한지, 그리고 아이가 수험생이 되는 무렵에는 온 가족이 얼마나 함께 노력해야 하는지 말이다.

그 속에서 불법이나 편법이 아닌 그저 주어진 제도를 이용한 것조차 ‘상대적 박탈감’을 이용한 정서를 건드리는 공격을 했다는 점은 너무 치졸했다.

그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계층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되는데 온갖 특권을 누려온 계층에서 그런 비난을 하니까 어처구니가 없었고 화가 났다.

나는 서울대, 고려대에서의 '조국 반대 집회'도 비슷한 맥락에서 보았던지라 냉소적이었다. 선택적 분노는 '분노가 아닌 정파적인 행동'일 뿐이니까…

4.
반면 조민의 스펙문제로 공분을 불러 일으키는 세력들에게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지난 몇 년간 수험생 아빠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해도 되지만 너는 하면 안돼”라는 그들의 전형적인 특권의식에 분노했고, 할 수 없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마저 정파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분노했다.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젊은세대에게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니 아끼련다)

그래서 나는 조국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내가 참여하는 방식이라는 것은 그저 관련한 글을 조금 더 쓰는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을 일종의 도락이자 취미인지라 이는 내 취미의 시간을 조금 늘이는 것에 불과했을 뿐이다.

5.
그런데 어느 날 나경원 의원실에서 개인적 연락이 왔다. (나경원 계정으로 페이스북 연락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진짜였다)

내가 페이스북에 쓴 글 “조국의 나비효과”라는 글이 대단한 속도로 온라인에서 퍼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용건의 내용을 요약하면 “김현조군은 포스터를 썼지 논문을 쓴 것이 아니다. 따라서 네 말은 허위사실 유포이니 당장 내리지 않으면 고소하겠다” 이런 취지의 내용이었다.

당연히 나는 쫄았다. 거대야당의 원내대표이자 현직판사의 부인이고, 필요하면 ‘기소청탁’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권력자가 나를 고소한다고 하니 어찌 쫄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연락을 받던 당시 나는 외부에서 모 작가님들과 식사중임에도 불구하고, 황급히 글 내용을 수정했고, 사과도 했다.

6.
그런데 바로 다음 날 하버드, 콜롬비아, 서울대 등의 의대교수, 바이오쪽 교수들이 “포스터와 논문이 같은 것인데 나경원은 이번에도 특유의 말장난을 한다”는 취지의 글들이 쭉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경원의 포스터와 논문 관련한 각종 고소드립은 사라졌다.

하지만 도리어 나는 이 순간 대단한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꼈다.

“포스터와 논문의 차이점을 조금만 더 확인하고 사과를 해도 충분한데 난 왜 즉각 사과 했을까?”

“글 쓰는 나는 정의감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실제 내 그릇은 이렇게 작은 협박에도 금방 굴복하는 소인배에 불과하구나”

7.
이는 나경원에 대한 분노라기 보다는 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자 자괴감이었다. 이 기분은 정말 뭐라 형용하기 힘든 묘하면서 더러운 기분이었다. 그 순간 나에게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마음 한 구석에서 숨겨져 있던 어떤 기운(?)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일종의 ‘자존심’ 혹은 ‘오기’ 같은 것으로 기억된다.

“이 부끄러운 순간을 잊지는 않겠다. 대신 또 다시 이런 식으로 굴복하지도 않겠다”

이후 내가 쓰는 글의 어조는 좀 더 강해졌고, 주장은 더 확실해 졌다.

8.
어제 밤에는 정경심 교수가 구속되었다. 잠을 이루기 힘든 밤이었다.

아무리 검찰과 법원이 한통속이어도 “설마 구속까지야 되겠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고, 그래서 딱히 긴장감이 크지는 않았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구속이 되었는데 구속의 사유가 ‘증거인멸의 우려’라는 것에 분노를 넘어 절망감마저 들었다.

70번이 넘는 압수수색과 7번의 출석조사 그리고 집 앞에 기자들이 상시 진을 치면서 감시하고 있는데 무슨 증거인멸인가? 증거가 있어야 인멸을 하는데 더 나올 증거는 과연 있나?

“사법부도 공수처의 대상이니 검사보다 많은 숫자의 판사들도 공수처에 대해 부정적이겠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아울러 지금은 검찰이 칼춤을 추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들이 조용했을 뿐이지 이해관계를 위해 나서야 할 때는 그들도 확실하게 나선다는 것도....

9.
정경심 교수의 구속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본보기다.

“보아라, 우리 사법 카르텔을 건드리는 자는 죽는다. 우리는 법 위에 있다”

또한 그들의 본보기는 정경심 교수에서 끝나지 않고, 조국으로 이어질 것 같다. 조국이 교수 시절,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번이라도 휴강 했다면,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도 조국을 감옥에 보낼 수도 있겠구나.

그들 관점에서는 국민 모두가 범죄자에 해당된다. 단지 그들이 언제 수사를 하고, 언제 기소를 할지를 결정할 뿐이다.

10.
만약 사법개혁이 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가고, 3년 후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를 상상하니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제2의 논두렁 시계로 문재인 대통령을 괴롭히거나 혹은 김정숙 여사나 아들 문준용씨를 감옥에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이 정도로 거리낌없이 행동하는데 퇴임 후에는 얼마나 안하무인이 될까? 그때가 되면 아마 일반 시민이라고 생각하고 충분히 함부로 대할 것이다. 노무현에게 그렇게 했듯이 말이다.

"노무현에 이어 문재인도 그런 식으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들었다.

세월호의 비극을 겪고,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다가 박근혜 탁핵선고일에 가슴 졸이던 순간 이후 모처럼 느끼는 위기의식이다.

11.
나는 사법개혁(검찰개혁)을 지지하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개혁방향을 지지하며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한 명의 평범한 시민이다. 그래서 조국대전에 참가했다. 하지만 현 상황이 녹록한 것 같지는 않다.

분노, 모욕감, 위기의식 등이 교차 중이다. 현 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한번 더 생각해 보는 밤이었다.

우선은 무시무시한 MB 시절 ‘나는꼼수다’에서 김어준이 방송 말미에 늘 외쳤던 말을 나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내어 보았다.
“쫄지마, 씨x”

마지막으로 정경심 교수가 부디 무탈하기를 바란다. '구속적부심'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정교수의 건강은 심히 우려스럽다.

 

게시판 토론 참여

마음의소리: 내가 조국대전에 참전한 이유: 분노와 모욕감, 위기의식 <-- 클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0 /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