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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다닐 때 기억입니다.
 회원_133528
 2023-03-14 15:08:37  |   조회: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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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다닐 때 기억입니다.

공부 꽤나 하는 친구들은 변호사보다는 현직을 꿈꾸었습니다.

성적 순으로 가장 잘 나가는 친구들이 판사, 그 다음이 검사를 지망했습니다. 판검사가 되면 영감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시대 정승판서 자리에 오르면 대감이라고 불렀던 것과 비견할 수 있겠죠. 사회적 특권을 성취한 자들에게 주는 호칭같았습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했으나 노동조합을 만들어 파업을 주도하다 해고 되었습니다. 취업을 다시 하기는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늦게 사법시험을 보았고, 늦은 나이 때문에 사법연수원에서 조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연수원 다닐 때는 같은 연수생 신분이었으니 성적이나 나이 관계없이 높낮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로 같이 폭탄주도 만들어 돌려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며 형아우하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도 있었던 탓에 조원들은 제 말을 잘 따라주었습니다.

가끔 술자리에 서로 술잔을 기울이다 술기운이 오르면, 우리는 조금씩 자신의 장래에 대해 속내를 꺼내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누구는 판사를 희망하고, 누구는 검사를 지망하고... 누구는 유수한 로펌을 갈 것이라고...

그런데 2년차가 되자 조금씩 걱정이 되었습니다.

판사나 검사나 로펌의 변호사가 된다는 이야기는 있으나 왜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싶은지 이런 이야기는 거의 서로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둑놈들을 때려잡고 싶다거나, 불의를 심판하겠다거나 부패한 관료들을 징벌하겠다거나... 이런 이야기들은 낮 부끄러워서인지 이야기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시험 성적이 판사나 검사나 대형로펌의 유일한 기준일 뿐 다른 조건은 부차적인 요건으로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가끔 술자리에서 취기가 오르면 나는 동료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머리에 든 법률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고, 그 연민이 없는 친구들은 판사나 검사로 가지 말기를 바란다고... 그냥 로펌에 가서 돈을 벌라고.. 법은 눈이 없는 칼과 같아서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 따라 언제든지 흉기가 될 수 있다고... 사람에 대한 연민지수가 낮은 자는 특히 검사로 가면 안 된다고...

어느 덧 검찰총장을 지낸 검사가 대통령이 되고, 검사와 검찰 출신들이 정관계 요직에 앉아 세상을 다스리는 검사들의 시대가 왔습니다. 대통령이 학교 후배로 애지중지하던 판사가 장관으로 앉았습니다. 법을 공부한 자들이 정치를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판검사들이 정관계의 요직에 오르면 법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세상은 억울하지 않고 공평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워질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버스요금 통에서 800원을 가져간 버스기사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던 법원이 윤핵관으로 알려진 실세 국회의원의 아들에게 준 50억원은 뇌물이 아니라고 판결을 합니다.

노동자들의 위력 있는 파업은 무조건 불법이고, 파업하는 노조는 귀족노조이고, 파업을 옹호하는 행위는 공권력에 도전하는 행위로 간주되고 진압해야 하는 대상이 됩니다. 건설노조는 부패세력으로 이름을 올리고 노사간의 교섭 끝에 합의를 이룬 단체협약의 복지기금이 갈취한 돈으로 둔갑해 부패척결 1순위가 됩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언론은 비행기 탑승이 금지되고, 심기에 불편을 주면 고소고발당하기 일쑤입니다. 법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답게 뻑하면 수사하고 소환하고 압수수색하고 구속영장을 쳐댑니다. 노동자들의 상징인 장소를 국정원 직원들을 앞세워 수백 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보란 듯이 압수수색을 하고, 제1야당 대표에 대한 먼지털이 수사와 무제한의 압수수색과 수차에 걸친 소환조사, 그리고 구속영장까지....

유족들이 자식들에 대한 진정한 추모를 위해 시민들이 많이 왕래하는 공적 장소에 분향소를 설치하겠다고 하자 겹겹이 차벽을 세우고, 불법집회라며 공간에 대한 접근을 처음부터 봉쇄합니다. 어렵게 서울시청 앞에 시민분향소를 차리자 불법거치물이라며 행정대집행으로 추모 공간마저 철거하겠다고 겁박을 서슴치 않습니다. 권력에 반대하거나 부담을 주는 행위는 모두 불법으로 둔갑합니다.

그러나 예외는 있습니다. 대통령의 부인은 공범들이 유죄로 판결을 받아도 그 판결을 통해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는 증거들이 쏟아져도 수사는 커녕 조사를 하는 시늉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대통령실이 나서서 전주에 대해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주가조작에 이용당한 피해자라고 두둔하고 나섭니다.

159명의 국민이 길거리에서 압사를 당해 참혹하게 죽었어도, 권력을 장악한 영감님들은 법적 책임이 없다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고위관직으로 올라갈수록 법적으로 구체적 주의의무가 없으므로 책임을 질 이유가 없고, 하급직 공무원들에게 무한 책임이 있으니 엄단해야 한다고 위엄을 세웁니다. 경찰은 아예 수사단계에서부터 서울시장 이상으로는 수사할 필요성이 없다고 성역을 쳐 버립니다.

기본적인 안전조치 부재로 인해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수백명이 죽어나가도, 그 책임이 가장 중한 대기업 경영책임자들에 대해서는 이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어도 기소는 커녕 입건도 하지 않습니다. 권력자에게 뇌물을 주고 노조를 파괴하고 경영권 불법승계를 위해 회계조작을 서슴치 않았던 대기업총수에게는 경제적인 기여를 이유로 가석방 요건을 고쳐서라도 석방을 시켜줍니다. 수백억원의 뇌물을 받아 처먹고 중형을 선고받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사회적 통합을 운운하며 사면해줍니다.

법이 향하고 있는 대상은 권력자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정치세력과 불평등과 기득권에 저항하는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현재 법은 권력자와 그를 비호하는 정치세력, 대기업과 기득권 세력에게는 끝없이 관대합니다. 아니 권력자와 이들 세력은 아예 법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제1의 가치라며 입에 거품을 물던 권력자와 그 세력들이 야당에게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는, 비판적인 언론에게는, 노동자・농민・민중들에게는, 불법세력・범죄자・떼쓰는 사람들로 낙인찍고 자유를 억압합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자유란 민중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이란 자는 ‘국민의 자유’가 아니라 ‘법과 국민으로부터 권력의 자유’를 외치고 있습니다.

법치(법의 지배)란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법의 구속을 받으며 통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법치란 민중을 향한 것이 아니라 권력자 혹은 권력집단을 향해 있는 정치입니다. 법을 지배수단으로 삼아 권력자를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세력과 기득권에 저항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통치란 법치(법의 지배)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를 ‘법률적 불법’이라고 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국민을 자기편과 적으로 편가르고 법을 앞세워 반대편을 불법으로 몰아 탄압하는 것은 법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냥 ‘폭력’일뿐입니다. 법률적 불법의 가장 큰 특징은 권력자 자신과 가족, 그리고 그를 옹호하는 세력은 법 적용으로부터 무한히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시대가 생각납니다. 무신들이 칼로서 정치를 베고 민중을 억압한 시대입니다. 검사들이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수사하고 압수수색하고 구속영장을 치는 시대입니다. 검새정권의 시대입니다. 정의를 세우라고 칼을 주었더니 그 칼로 정의를 베어버립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도 예의도 없는 법비들이 권좌를 차지하고 활개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칼은 칼로 망합니다. 수사는 수사로 망합니다. 기억하기 바랍니다.

2023. 2. 18. 환갑을 맞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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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4 15: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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