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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회원_881630
 2022-11-06 10:55:35  |   조회: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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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이태원이라는 곳에 왔습니다. 워낙 유흥에 익숙치 않은지라 가보고 싶다는 생각 한번 안하고 살아왔는데요. 여자 치고는 워낙 발이 커서 어릴 때 친정 어머니는 이태원이라는 데 가면 외국인들이 많아서 여자신발도 큰 사이즈들이 많다더라 하셨더랬죠. 어린 마음에 내가 외국여자냐 왜 날 이렇게 낳았냐 엄마한테 투정도 많이 부렸습니다.

엄마는 네 구두는 내가 죽을 때까지 책임져 줄게, 평생 수제화 맞춰신고도 남게 해줄게 하셨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황하던 스물 중반의 어느날 교통사고로 작별인사도 안하시고 곁을 떠나셨습니다. 지금처럼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상근하던 단체에서 출장간 제게 연락이 닿지 않아 입관하는 것도 못 봤습니다. 발인 직전에 겨우 연락이 닿아 장례에는 참석할 수 있었지요. 느닷없는 엄마의 부재를 겪은 저는 질병으로 부모님과 이별하시는 분들이 지금도 제일 부럽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엄마와의 이별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부모와의 느닷없는 작별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자식을 인사 한마디 없이 보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해가 빛을 잃고 달도 창백하며 꽃과 단풍은 빛깔이 제거된 채 세상 모든 것들이 흑백으로 정지 상태일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사치겠지요. 장례를 치른 이제부터가 진짜 지옥일 테니까요.

이태원에 와서 한나절 뒷골목 골목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좁은 길에서 우리 자식들은 즐거운 일탈을 즐기고 모처럼 흥청거리는 자유의 공기를 마셨겠구나 싶어 울컥했습니다. 다섯명의 경찰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는 참사였는데 오늘은 수십 명의 정복 경찰이, 다섯대의 기동대 버스가, 온 사방에 빨간 폴리스라인이 쳐 있더군요. 뒷골목에서 올려다본 좁은 하늘은 속절없이 푸르렀습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뒷골목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좁은 골목을 오르내리며 계속 질문했습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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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6 10: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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