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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에서 온 엽서
 회원_646606
 2022-11-06 10:19:25  |   조회: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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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에서 온 엽서:

어제 우리집에 아래 사진이 담긴 A4 사이즈의 대형 우편엽서가 왔다. 아무리 지금 미국이 중간선거철이라고 해도, 이런 내용의 마케팅을 직접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측컨대, 아시아인종, 수입, 소유주택 가격 등등의 마켓 필터링을 거쳐서 보낸 선거홍보물이다. 보통은 특정 정치인을 지지해달라는 메시지이겠지만, 이번 것은 그림에 보는 그대로 "바이든과 좌파 정부때문에 백인과 아시아인이 차별받고있다!"라는 메시지일뿐이다. 뒷면을 보니 "피부색때문에 누구는 고용되고 누구는 해고된다, 백인과 아시안이 일터에서 내몰리고 있다"라는 메시지가 있고, 발송인은 DC 펜실바니아 애비뉴에 떡하니 사무실이 있는 [America First Legal]이라는 자선단체이다.

누군가가 이런 홍보물을 돈을 들여 전국적으로 발행한다는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로 실제로 상당수의 아시아계 미국인이 이 메시지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단체는 이 메시지에 불을 지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한 방편으로 쓰려하는 것이다. 지난 해에 힘겹게 대학 지원서를 여기저기 제출한 내 아들도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이런 종류의 차별을 받지는 않았나하는 걱정이 내게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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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텍사스 동네:

나는 지난 16년동안 남부 텍사스에 인구 2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에서 의료인으로서 밥벌이를 하며 살고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상당히 보수적이며, 전반적으로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

나는 동네에서 눈에 띄는 동아시아인으로서,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편이다. 나의 말과 행동이 이 동네사람들 몇몇에게는 동아시아인에 대한 첫인상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내 수입에 직결될 수 있다는 경각심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진료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아마도 일대일로 동양인과 대화하는 것이 처음이었던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떤 어린 아이가 검진 중에 나를 보고 "이민자다(Immigrant)! 아저씨는 이민자죠? 엄마, 이 아저씨 이민자야, 나 이민자를 진짜로 봤어"라며 해맑게 웃으며 엄마를 크게 당황시킨 일이 생각난다.

나는 비즈니스 전략의 한 방편으로, 처음 만나는 손님에게 내가 한 군데서 16년동안 쭉 지역 소상공인으로 있었다는 것과, 그 전에는 공군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는 사실을 어필한다. 15세에 이민와서 영어에 액센트가 약간은 있는 이 동양인 남자는, 이런 식으로 손님들의 호감을 사려고 노력한다. "... 그럼 혹시 어느 나라 공군...??"이라고 묻는 손님들도 그동안 서넛 있긴 했지만, 은근히 풍기는 계산된 점잖음과, 대화중에 혹시라도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이 은근슬쩍 드러나기라도 하면 나는 이미 그분들 가운데 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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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차별, 그리고 역차별:

'나와 대화하는 내 앞의 동양인을 자신과 같은 계층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현상이 가끔 있는데, 그것은 일부 손님들이 내 앞에서 안도감을 느끼면서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혐오의 표현이다. 주로 무슬림과 리버럴 좌파들에 대한 혐오 표현을 내 앞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하며 Black Lives Matter 시위자들도 비난하는데, 이것은 미국 내 한인교회를 포함한 복음주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런 "혐오 표현의 자유"는 오바마 집권 2기때부터 표면에 눈에 띄게 드러나면서 트럼프 집권 이후로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멀쩡하게 보였던 이웃이 숨겨왔던 자신의 인종편견을 대놓고 편하게 드러내는 시대가 온 것은, 정치 지도자 우두머리가 대놓고 타인종 혐오를 드러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최고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나와 내 가족의 삶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는 시대이다.

이러한 현재의 정치/문화적 상황에 놓인 아시안 아메리칸, 특히 미주한인들의 반응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분명히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범죄는 크게 증가했고, Pew Research 자료에 의하면 절대다수의 아시아인들이 이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1/3은 폭행의 위협을 느끼며 산다. 엘에이에 사는 나의 80대 노모는 예전보다 더 조심하며 길거리를 걷는다. 폭행의 타겟은 내 어머니같이 연약한 노약자들이다.

그와 동시에, 아래 엽서의 메시지처럼 일부 아시아인들은 자신들과 자녀들이 "역차별"의 대상이 되어서 손해를 입고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여기에서부터가 아시아인들이 다른 인종들을 실질적으로 혐오하는 출발점이 되며, 아래 엽서처럼 정치적 포섭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미국내 아시안들은 스스로를 '차별도 받고 역차별도 받는' 이중적 징벌대상의 그룹으로 바라보게 되는 관점을 갖게된다. 그리고 America First Legal같은 단체들은 이런 심리를 파고들면서 "너희도 우리처럼 차별 받는다. 백인과 아시안이 힘을 합쳐 함께 싸워야 한다"라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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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혜자:

Affirmative Action은 1960년대를 걸쳐 생겨난, 차별금지법 비슷한 것이다. 성별, 젠더, 인종, 출생지등이 취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취지의 행정령이다. 미국의 Affirmative Action에 관해 길게 쓸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것이 아시아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논란거리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현실이다. Racism이 요즘은 옛날보다 좋아졌으니 이제는 이 법안을 폐지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번지고 있다. 흑인이 대통령 한 번 했으니, 이제 미국에는 소수민족 인종차별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소수인종 배려(우대)가 사회적 문제라는 것이다. 마치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항의했더니, "옛날 전화선 인터넷 접속 시절보다는 낫잖아, 안 그래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 같다.

나는 1980년대 중반 레이건 행정부시절에 이민을 와서, 로스엔젤레스 통합 교육구의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의 수혜를 입었다. 나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주고, 나를 영어 못하는 뒤떨어진 학생이 아니라 단지 영어가 나의 제 2의 언어임을 인정하고 공부에 도움을 주는 좋은 선생님들을 여럿 만났다. 덕분에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안정적인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ESL 프로그램이 법적인 효력으로 나에게까지 도움을 주게 된 데에는, 1971년 Lau vs Nichols라는 대법원 판결사례가 큰 역할을 한다. 영어가 익숙하지 못한 샌프란시스코 인근 중국계 학생들의 정당한 교육권리를 위한 소송이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례였는데, 이 판결은 오늘날까지 미국 내의 이중언어/이중문화 교육의 뼈대에 큰 작용을 했다. 그리고 이 판결이 나도록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주도한 주요 단체중 하나는, "Chinese for Affirmative Action"이었다. 미국내 아시안들은 이렇게 Affirmative Action의 실현을 위해 오랜 기간 다른 민족들과 연대해서 싸워왔다. 이처럼 우리 세대와 자녀 세대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역사와 다문화/이중언어 교육운동 역사의 직접적 수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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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ffalo Soldier:

성인이 되어서 미국에 이민 온 이민세대는, 대체로 사회적 차별에 익숙하고, 그것을 당연한 숙명으로 여긴다. 영어가 서툴수록 그렇다. 남의 나라에 빌붙어 먹고 살고 있으니, 그정도 차별은 당연하다라는, 겸손과 비굴과 체념 어디쯤의 경계선에 있는 자세이다.

미국에서 공교육을 받은 나의 세대와 내 자녀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내 세대와 내 자녀들의 세대는, 보기에는 당연한 듯한 나의 권리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그 권리가 다른 인종과 다른 언어와 다른 사회적 계층의 이웃들을 지금 짓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았으면 한다. 선동당하고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조사해보고 점검해보고 스스로의 철학을 세우고 나서 행동에 나섰으면 한다.

이 엽서를 보낸 단체에 대한 나의 답장은, 밥 말리의 노래 가사로 대신하고싶다.

"If you know your history, then you would know where you coming from, then you wouldn't have to ask me, who the heck do I think I am." (Buffalo Soldier, 1978)

 

https://www.facebook.com/justin.kim.967/posts/pfbid0cc6fPRYSBgpZ5LHLbZar8HENjJCM5nqEoS3ruHex6NJtcw4FNGyCCxqMxmKM6fzgl

2022-11-06 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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