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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베이커 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부소장이 재판부에 낸 탄원서
 회원_196689
 2022-10-22 10:15:36  |   조회: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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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전 시장 유족이 국가인권위 상대로 낸 행정소송 선고가 18일(화)로 다가왔다.

선고가 나올 때까지는 아무 얘기도 안하려고 했는데 박 시장과 생전에 인연을 맺었던 에드워드 베이커 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부소장이 재판부에 낸 탄원서를 올린다.

베이커에 대해 모르는 분들을 위해 2009년 시사인 인터뷰 링크도 첨부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57&fbclid=IwAR2j2ZKH_1pSOCBhZglyQcGRIrUEeVg2I9vfiDPeXOb-3wjjW52Ocg39p7c

탄원서에 '새로운 내용'이 담긴 것은 아니다. 나는 7개월 취재를 담은 책을 통해 이 사건이 결국 한 사람의 거짓말과 그걸 덮으려는 몇몇 사람들의 오판으로 인해 증폭됐음을 밝혔다. 책을 낸 후 몇 가지 상황 진전이 있었는데, 그것들 또한 내가 처음 생각했던 사건의 얼개가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꽤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잠겨있는 진상을 알면서도 선뜻 말을 떼지는 못하고 있다.

베이커는 1960년대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었지만, 그는 엄연히 미국말 하는 미국인이다. 그런 그도 박원순 사건 관련해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서는 마음이 복잡했었나보다.

"박 시장이 평생을 자신을 대변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데 헌신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정의를 위해 나서야 할 개인과 기관들이 침묵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가혹하다고 할 것입니다."

내가 지난 1년 6개월 동안 느꼈던 바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얘기할 날이 올 것이다.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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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서울행정법원 재판부 귀중

저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소재 하버드 대학교 소속 옌칭 연구소(HYI)의 부소장으로 퇴직한 에드워드 J. 베이커 입니다. 존경하는 박원순 시장이 사망으로 인하여 본인에 대하여 제기된 여러 가지 의혹을 변론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고인을 대신하여 재판부에 탄원을 올립니다.

저는 1980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미국 지부에서 대한민국과 관련한 업무의 조정책임자로 근무하였습니다. 제가 맡은 역할은 국제사면위원회의 양심수 후원을 위해 활동하는 다양한 그룹의 국가별 활동가들이 양심수를 위하여 대한민국 정부 및 해당 국가의 정부 관리들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의 주요 활동을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국제사면위원회 국제사무국(International Secretariat (IS))의 대한민국 관련업무 담당부서는 수시로 15 내지 20개국에 소재한 조정업무 담당자를 초청하여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선정된 양심수의 후원에 관한 전략을 세웠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의 경험과 미국 하원 의회의 프레이저 소위원회에서 '한미관계 조사’업무를 수행한 이력으로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열린 국제사무국의 회의에 정기적으로 초청되어 강연을 하거나 토론을 주재하였습니다.

1991년 국제사면위원회가 런던 경제대학교 (LSE)에서 연수하고 있던 저명한 인권 변호사 박원순을 회의에 초대하여 그의 인권관련 경험을 공유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회의에서 박 전 시장과 제가 토론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이 과정에서 서로 친해져서 앞으로도 연락을 유지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듬해 박 전 시장이 편지로 미국 로스쿨의 인권 프로그램에 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주저없이 헨리 스타이너 교수가 개설한 하버드 로스쿨의 인권 프로그램을 추천했습니다. 박 전 시장이 하버드 대학에 머무르는 1년 동안 그를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수시로 부부가 함께 만나거나 다른 한국인 친구들이나 한국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과 함께 만났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수년 동안 하버드 대학교 옌칭연구소의 업무로 한국을 수시로 방문하여박 전 시장과 한국의 상황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는 제가 한국 상황을 놓치지 않고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 한국인 친구 중 하나였습니다. 2019년 10월 20일에 그와 그의 아내 강난희, 그리고 딸 박다인과 함께 그들의 집에서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저는 박 전 시장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가장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변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했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변호사로서 그는 정치적으로 기소되는 양심수들을 대변했습니다. 그는 항상 스스로 나설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나섰을 뿐 아니라 가장 열정적인 여성 인권의 옹호자이기도 했습니다. 박 시장은 소외된 수많은 사람들을 인권 변론으로 돕거나 재정적 지원으로 도왔습니다. 그는 서울특별시장으로 재직하면서도 적극적이고 사려 깊은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서울의 역사를 보존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할 때도 늘 그렇듯이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 주었습니다.

박 전 시장에게는 학자로서의 면모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권 문제에 대한 저술을 했으며, 국가보안법에는 권위자였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국가보안법은 정부의 인권 침해나 반민주적 행위를 비판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데 사용되었던 도구였습니다. 그는 1989년부터 1991년 사이에 국가보안법에 관한 중요한 3권의 저서를 출간하였고, 1993년에는 비엔나에서 개최된 세계인권회의에서 한국의 인권 상황을 공론화하는데 사용할 국가보안법 관련 소책자를 영어로 출간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박 시장에 관한 비난과 그의 자살 소식을 듣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우리가 알던 박 시장이 그런 비리를 저지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비리는 그의 성품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놀라게 한 또 한가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사법적인 판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법을 잘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마치 사법적 판단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일생과 명예 그리고 그 가족의 삶과 명예를 크게 침해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사실조사절차에서 대부분 규명되지 아니한 주장에 기초하여 판단되었음을 알면서도 반박되지 않고 이를 그대로 유지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재판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이 결정에 대한 사법적인 검토와 철저한 사실조사를 진행해 주시기를 간곡히 탄원드립니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박 시장의 가족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 시장의 업적을 바로 잡고 그의 헌신적인 공무원으로서, 존경받는 법률가와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명성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권위 있는 사법적 판단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법원에 의하여 그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은 일생 동안 그를 지지한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박 시장과 그의 가족에게 가해지는 정의롭지 못한 많은 사정을 알고 법원이 공정하게 여러 쟁점을 심리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이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특히 박 시장이 평생을 자신을 대변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데 헌신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정의를 위해 나서야 할 개인과 기관들이 침묵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가혹하다고 할 것입니다. 정작 박시장이 자신을 위해 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할 때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일 것입니다. 저는 부당하게 기소된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정의를 수호하는 법원의 책임이라고 믿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이 편지를 읽어 주신 재판부에 감사 드리며, 위의 탄원내용을 살펴 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에드워드 J. 베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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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2 10: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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