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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쇄신의 대상은 우리 스스로다
 회원_423651
 2022-08-24 10:27:21  |   조회: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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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다시보기는 틀렸다>

애들은 원래 어른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때때로 그것은 어른들을 싫어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린이들도 일기장은 부모가 보지 않길 바라고, 사춘기가 오면 방문을 닫고 부모 몰래 비밀을 만들기 시작한다.

70년대와 80년대의 대학생들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가권력에 대한 반항을 했고, 승리를 쟁취했다.

90년대 젊은이들은 새로운 패션과 음악, 문화로 어른들의 세상과 자신들을 구분 지었으며,

00년대 젊은이들은 디씨인사이드에서 "넌 뭔데 초면에 존댓말이냐"로 상징되는 새로운 공론장과 미디어를 만들어냈다.

2010년의 젊은이들이 헬조선과 탈조선을 부르짖은 것, 디씨인사이드에서 파생된 수많은 커뮤니티에서 나름의 이데올로기를 선택하여 성장시킨 것, 그리고 소위 'MZ세대'로 불리는 새로운 행동양태를 시작한 것도 이와 맥이 닿아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현재의 젊은이들도 어른들을 싫어한다. 어른들이란 생물학적 사람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 세대, 그 연령대, 그들의 정서와 상식, 문화, 그것에 맞추어 돌아가는 사회, 정치, 체제 모든 것을 아우른다. 386은 사람이 아니라 담론이라는 말을 한 이유가 그것이다.

김광석 다시부르기도 아니고, 갑자기 진보진영에서 이준석 되돌아보기가 유행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멀었다. 택도 없다.

이준석 말도 일리가 있다는 식으로 담론이 형성되는 것은 틀렸다. 이준석은, 그리고 3번의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담론이 없었다. 다이소처럼 아무 메세지나 막 널어놓고 팔다가 바이럴 마케팅 회사가 AB테스트하듯이 반응이 좋은 것만 주워다가 광고비를 태웠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니 애국이니 빨갱이 척결이니 하는 메세지 3번의 선거 동안 거의 나오지 않았다. 태극기부대 동원도 거의 없었다. 이준석의 이대남 선동과 문재인 정권 후려치기가 주된 마케팅이었다.

이준석의 전략은 외려 간단했다. '어른들'을 싫어하는 애들에게 너희들이 왜 짜증 날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투척했다. 사실 애들이 짜증 난 이유는 부모와의 갈등, 빈 은행 잔고, 취업난, 다이어트와 외모, 막막한 결혼계획,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인스타의 별세계, 부동산 폭등, 친구가 없어서, 코로나 방역, 날씨 등 수만 가지지만, 이준석과 국민의힘은 이 불만들을 두리뭉실 모아서 '우리나라=어른들=문재인정권=부동산폭등=코로나=내로남불', 더 간단히 줄여서 '문재인좋아하는대깨문=내로남불' 프레임으로 묶어 내었다.

마른 장작에 불꽃이 튀자 불은 순식간에 타올랐고, 깜짝 놀란 어른들은 이놈들이 보수화, 일베화 되었다고, 게임만 하고 역사공부 안 해서 쓰레기가 되었다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원래 어른들이 싫어서, 이 사회가 답답해서 시작된 불은 손가락질을 연료 삼아 더 거세게 타올랐다.

여기에서 가히 비단 주머니라고 부를 만한 이준석의 킥kick은 '이대남'이라는 호명이었다. 조중동과 경제지는 'MZ세대'를 씹어대며 기성세대에게 클릭 팔아먹는 데 집중하고 있었고, 한겨레와 경향은 페미니즘에 경도되어 한국 남성과 가부장제 비난에 열심인 언론시장에서, 'MZ'와 '한남'의 교집합인 '이대남'은 모든 언론이 매일같이 기사로 후려치기 좋은 밈이 되었다. 때리면 때릴수록 강해지는 강철처럼, '이대남'의 결집은 어른들과 언론과 사회가 손가락질할수록 강해졌다. 그 하이라이트가 바로 대선 직전 '이번남' 도식이었다.

담론 없는 이준석이 바이럴 마케팅으로 3번의 선거를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문재인과,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너무나 강력해서였다. 아직도 야당 젊은 민주 투사 마인드 가지고 계신 분들은 동의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지난 5년간 이 사회는 여길 가도 민주당, 저길 가도 대깨문, 세상 모든 곳에서 문재인 용비어천가가 울려 퍼졌다. 인쇄되자마자 계란판이 되는 조중동과 가세연같은 보수유튜버들의 발악에만 돋보기를 들이대던 민주당 지지자들은 체감되지 않겠지만, 정치 저관여자들 눈에 대한민국 사회는 여기도 국뽕 저기도 국뽕이었고, 젊은이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이 사회에 대한 불만'이 민주당과 문재인에게 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에 진보진영 고유의 약점이 하나 더 있는데, 도덕군자 선생질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이 50이 넘어서 아직 젊은 진보의 마음을 가진 기성세대 아저씨들이 젊은 투사의 마음으로 사회 곳곳에 지적질 투쟁을 해댔다. 상대방의 상식과 교양, 도덕과 인간됨을 아주 쉽게 비판하고 비난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착함을 지키며 산다. 나름 나쁜 일 안 하고 성실하게 살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손가락질당한 사람은 억울하다.

여기에 페미니즘이 문제가 된다. 여자 가족 구성원이 있고, 여자 욕 안 하고, 여자 때린 적 없고, 학교나 회사에서 여직원이 무거운 거 들고 있으면 도와주고, 나름 여자 배려하고 산다고 생각하던 남학생과 군인과 남자 사원과 남자 매니저들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무해함을 입증해야 하는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받고, 배려랍시고 하는 행동들이 여성 혐오로 매도당하고, 이해가 안 되면 그것도 여혐이며 '빻은'거라는 비난 앞에 직면한다. 무슨 일인가 찾아보니, 저 거대한 민주당과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예산 써가며 밀어주는 페미니즘이란다. 화가 과연 날까 안 날까? 국힘 성향 이대남이나 부동층 이대남은 물론이고, 민주당 지지하던 이대남도 화나지 않을까?

이준석이 이대남을 호명하며 주 타겟을 페미니즘으로 잡은 이유가 그것이다. 이것은 이준석의 담론이나 이준석의 철학이 아니다. 이준석은 스타트업 마케팅하는 방식으로 '반응 좋은 상품'을 선별하는 데에 탁월했을 뿐이다. 기업으로 치면, 샤오미가 기술력이 좋은 게 아니라 샤오미가 출시한 수천, 수만 가지 제품 중에 아주 잘 팔린 제품이 샤오미 히트작으로 인정받는 거다.

이준석 재평가는 처음부터 틀렸다. 샤오미 기술력 분석해봐야, 없다. 분석해야 하는 것은 샤오미가 어떻게 시장을 분석하고 그 시장에서 지명도를 높였느냐이다.

그전에 민주진보 진영이 해야 하는 일은 이것이다.

첫째, 사람들이 거대하고 강력한 민주진보진영을 싫어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민주진보진영을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민주진보진영이 '올바르다'라고 믿어온 가치와, 그 '올바른' 가치관을 구현하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자위했던 투쟁방법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40-60대 민주진보진영은 젊은 세대에게 더 이상 '멋지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주진보의 '멋'은 탁현민씨가 보여준 5년간의 국뽕 퍼레이드가 최정점이었다. 비장한 연설문과 광장을 꽉 메운 촛불, 울분에 찬 결의, 시위 현장에 흐르는 노동가요와 투쟁가는 트럭 짐칸에 확성기 달고 생선장수 목소리로 예수님 믿고 빨갱이 때려잡자는 소리 방송하는 것처럼 멋지지 않다. 새롭고 신기하고 멋진 건 젊은이의 특권이고, 50대는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다. 저관여층과 젊은 세대에게 호감을 사지 못한다면, 그건 그들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트렌드에 뒤쳐진 것이다.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지 않고 이준석을 '좋게' 보려는 노력만 하다가는, 정말 파멸로 간다. 분석의 대상은 이준석이 아니라 민주진보진영 자신이다. 설마 이건 아니겠지 하는 바로 그것이 문제의 원인이며,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바로 변화의 대상이다.

말로만 개혁, 말로만 쇄신하지 말자. 개혁과 쇄신의 대상은 우리 스스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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