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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시사
정치적 언어의 주인이 된다는 것
 회원_589659
 2022-05-06 16:57:45  |   조회: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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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도단(言語道斷)은 본래 문자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최상의 진리를 가리키는 불교용어로 부처님의 깊은 깨달음은 도저히 문자로 나타낼 수 없다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의미였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 엄청나게 사리에 어긋나서 말로 표현할 수 없거나 말이 나오지 않는다, 또는 말도 안 된다는 의미로 바뀌어 활용된다.

그런 사례는 많이 있다. 수행을 많이 한 승려인 화상(和尙)은 말이 안 통하는 답답한 사람으로, 옳고 그른 시비를 가리는 야료(惹鬧)는 생트집잡고 시끄럽게 떠드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변했다. 이판사판, 야단법석도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되어 쓰이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본질이 숨어있고 전혀 엉뚱한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난 어려서 오징어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게임을 둘러싼 기류나 분위기가 어떠한지는 익히 연상이 가능하기에 외국인들이 들었을 때 느끼는 생경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 당연하다. 최근 가장 핫한 단어로 등극한 ‘짤짤이’의 사전적 의미는 ‘손 안에 있는 동전의 개수 따위를 알아맞히는 놀이’다.

하지만 동전따먹기의 일종으로 보았기에 발각되면 체벌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니 학생들로서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몰래 할 수밖에 없는 놀이다. 뭐든 금지하는 것은 짜릿한 법이다.

그리고 이면에 숨겨진 언어도단은 일종의 ‘눈속임’이라 할 수 있다. 현란한 손동작으로 상대방이 알아맞히지 못하게 해야 하므로 손을 가릴 수 있도록 숨어서 하는 행위라는 본질을 내포하고 있는, 일종의 야바위와도 같은 것이다. 경쟁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사회라면 굳이 가릴 필요가 있겠는가. 대학입시 실기시험이나 기업의 블라인드 채용법이 그 예다. 주관이 개입되지 않게 가리는 것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순진하거나 바보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자신의 몸을 가리거나 타인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경우라면 대개 옳지 못한 일이라는 내적 자각이 전제되어 있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인식조차 없는 사람들은 순수(!)하게도 감춰야 할 것과 감추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자동차 구입 업무로 잠시 주소를 이전한 것으로 안다’고 태연자약하게 자백하거나 자신은 자금 세탁하는 일을 했노라 SNS에 자랑하는 것 따위 말이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 더러 온전치 못한 부모 밑에서 제정신인 자식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경우 아이들의 사고방식이 독특하다 싶을 때 영락없이 부모님을 만나보면 모든 것이 납득되곤 했다.

자금세탁을 마치 옷 세탁인 양 말하는 아드님이나

‘온라인에서 현금 걸고 포커치는 것은 넓게 보면 게임’이라는 아버님, 로펌에서 한 일을 공공외교 운운하는 총리 후보자는 DNA 자체가 다른 사람인 것이다. 도대체 신경회로 어디에서 오류를 일으킨 것인지 나는 그들의 시냅스를 들여다보고 싶을 지경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의자가 뇌물을 받으며 월 임대소득 2천만원이라는 어려운 가계형편, 내돈은 내돈이고 네돈도 내돈인 계산법을 가진 자들을 이해하기란 화성에서 생명체 흔적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오징어게임은 오징어 낚시를 하는 게임 쯤으로, 방석집은 화려한 자수를 수놓은 고급 방석 위에 앉아 담소를 즐기는 곳으로, 어린 시절 동전 몇 개로 홀짝 놀이를 하는 짤짤이는 성희롱으로, 돈세탁은 구겨진 돈을 다림질로 반듯하게 펴는 것쯤으로 이해하라고 스피커를 가진 이들은 현란한 언어도단의 기술을 구사한다.

그 시절 문화나 말아쥔 주먹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잘 모르는 신세대는 진실을 알고자 하는 지난한 노력없이는 바보가 되기 딱 십상이다. 주는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 야단법석을 떨고 야료를 부리게 만드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에 의해서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알고나면 소위 이불킥 할 각 아닌가.

정치적 글쓰기를 강조한 조지 오웰은 그의 산문 「정치와 영어」에서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키면 언어 또한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며 당대의 정치혼란은 언어의 타락과 결부되어 있으며, 언어 문제를 건드리는 것만으로 상황을 개선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정치적 언어는 거짓을 사실처럼 만들고 살인을 존중할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순전한 헛소리를 그럴 듯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다’고 지적했다.

창작행위 중 정치현장의 독창성을 따를 것이 또 있을까. 박지현 위원장이 이 엄중한 정치적 시간을 엉뚱한 방향으로 화살을 날린 것은 젊어서 짤짤이를 몰라서가 아니라 민감한 정치적 시기에 항의나 문제제기 한마디 없이 사건 발생 직후 언론으로 직보한 고발정신과 ‘짤짤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빼고 누구나 성적 행위를 연상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첫 기사를 쓴 소위 ‘외람이’들의 콜라보 덕분이다. 이렇게 사람은 한 순간에 바보가 되는 것이다.

야당의 젊은 당대표는 성상납 파일에 의총추인까지 받은 일을 한순간에 뒤집고 여당의 젊은 당대표는 외람이들에 휘둘려 정국을 수렁으로 끌고가는 이 상황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박지현 위원장은 청년정치의 대표주자로서 오디션을 보는 중임을 망각해서는 안될 일이다.

윤가 정부의 첫 관문인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검찰청법 통과 이후 중수청법과 형사소송법 등의 후속작업을 논의해야 하는 정치적 언어의 시기에 누구보다 개혁에 앞장서온 최강욱 의원을 사실 확인 과정도 없이 징계검토를 지시하는 것이야말로 위계에 의한 폭력이며 젊은 꼰대의 전형이라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그러나 어쩌랴. 정치적 지위는 어리다고 봐주지도, 경험부족이라고 우쭈쭈 해주지도 않는다. 다들 구렁이 열 마리쯤은 흉중에 품은 정글에 들어갈 때는 그 정도는 각오하고 갔어야 했고 정치적 언어가 사람을 일순간에 죽일 수도 있음을 알고 갔어야 했다. 작금의 최강욱 의원의 설화는 구설에 오를 하등의 이유가 없는 사안이다. 저들이 조국에게 그랬듯, 정봉주에게 그랬듯 표적으로 삼아 토끼몰이를 하며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때로 너무 성급한 판단은 자기 발등을 찍고 전후좌우 맥락을 살피지 않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깨닫는 비싼 수업료라 여긴다면 속히 자신의 업무지시를 철회하고 최강욱 의원에게 사과하고 적정한 수준에서 경고조치로 매듭짓길 바란다.

결자해지, 사단을 일으킨 장본인은 당선자에게는 외람되어 묻지도 못하는 자들이지만 중요한 정치적 시간에 꼬일대로 꼬이게 만든 건 자신임을 직시해야 정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정치는 어리다고 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더 늦기 전에 깨닫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칡과 등나무가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진 갈등은 고르디우스의 지혜로 쳐내지 않으면 당신뿐만 아니라 진영 전체를 수렁으로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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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6 16: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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