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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쌓는 방식 <합격시켜주세용>
 회원_943969
 2022-03-23 13:48:41  |   조회: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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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쌓는 방식, <합격시켜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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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그림체와 디테일한 소품, 일상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촘촘한 설정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온 작가님의 <합격시켜주세용>. 전작<슈퍼 시크릿>에서 동·서양 판타지를 현대로 잘 녹여냈던 작가님답게, 이번에는 동양 판타지의 대표주자인 용과 이무기가 등장한다. 전래동화 안에서 종종 등장하는 이무기 설화. 흔히 알고 있는 설화 속 이무기는 용이 되기 위해 길고 긴 수련을 하며, 수련 후 밖으로 나와 처음 만난 인간이 "용이다" 라고 하면 용이 되어 승천하지만, "뱀이다"라고 하면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가 되어 다시 수련해야 한다. 동양풍 판타지를 다루는 작품에서 여러 바리에이션으로 등장하는 이무기가 <합격시켜주세용>의 주인공이다. 시험을 위해 고행하지만 운에 따라 당락이 갈린다는 것이 참 한국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 사회에 각종 신화와 설화를 잘 녹여내는 이온 작가님답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설화와 구전들을 21세기 현대에 자연스레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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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시켜주세용>의 주인공인 '유찬영'. 어떤 학생이던 성적을 올려주는 족집게 과외로 동네 아이돌이나 다름없는 그는 다른 주인공인 이무기 '바리'의 조력자이다. 명문대 출신에 성적도 좋고 성격도 꼼꼼, 그야말로 학업운과 재물운이 모두 넉넉한 '유찬영'의 목표는 안정적인 직장과 금전. 그러나 오래 전, '바리'의 승천을 방해하여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업보를 받은 조상님(김 서방) 덕분에 능력과 노력에 비해 번번이 좋지 못한 결과만을 얻는 불우한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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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 소개된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천 년째 용이 되려는 수험생 바리와 전설의 과외선생 찬영이의 낙동강 용 합격 수기>

승천에 실패하고 세월아 네월아 술이나 푸던 '바리'와 이무기 친구들에게 엄청난 소식이 전해진다. 환경 오염으로 인해 낙동강을 다스리던 용이 병을 얻어 죽었고, 그 뒤를 이을 후계도, 공석을 메울 용도 없던지라 이례적으로 승천에 실패했던 이무기 중 시험을 통해 낙동강 용의 자리를 주겠다는 것. 시험을 위해 '바리'와 친구들은 자신의 승천을 방해해 업보를 받은 인간들의 후손을 찾아 나선다. 과연 이들은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시험을 치러낼 것인가? 낙동강 용의 자리를 차지하는 건 어떤 이무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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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보면 이 웹툰은 한국의 입시제도, 혹은 경쟁사회를 꼬집는 작품처럼 보인다. 물론 이러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전작 <슈퍼 시크릿>이 그랬듯 이 작품 역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의 '관계'를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전작 <슈퍼 시크릿>의 '견우'와 '은호'를 볼까.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고,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 공유해온 사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인간과 비인간, 가장 친한 친구이자 소중한 사람이지만 그렇기에 자신의 존재와 속내를 숨겨야 하는 '견우'. 가장 친한 친구지만 그런 친구의 중요한 비밀을 모른 채 챙김 받는 '은호'. 여기에 각자 서로의 가족과 친구들, 종족에 대한 이야기가 곁들여지며 두 사람의 관계는 때론 엉키고, 더 멀어지고, 위험해지다가도 이내 다시 단단해진다. <슈퍼 시크릿>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재미난 작품이다. 그렇다면 <합격시켜주세용>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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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용의 자리에 합격하기 위해 승천을 방해했던 증오스러운 인간의 후손과 함께하기로 한 이무기들. 모두 같은 입장임에도 이무기마다 서로 조력자를 만나고 도움받는 과정은 전혀 다르다. 인간은 증오스럽지만 시험을 위해 인간을 이용해야 한다는 첫 단추는 모두 같다. 그러나 '바리'의 경우, 자신의 정체와 시험, 업보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며 '유찬영'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물론 '유찬영'의 입장에서는 도움 요청보다는 협박에 가깝다는 게 문제겠지만.) 하지만 '미리'는 인간들이 업보는커녕 가문을 수호하는 용신의 화신으로 착각하는 것을 내버려 둔 채 그들의 오해를 마음껏 이용한다. 또 다른 '영노'의 경우, 치밀하게 조력자를 뒷조사한 뒤 그를 바탕으로 조력자의 친구 자리를 꿰찬다. 정체를 숨기는 것은 물론, 뒷조사한 것을 토대로 조력자와의 촘촘한 접점을 만들어 열렬한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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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세 이무기가 내린 '업보' 역시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바리'가 '유찬영'의 조상에게 내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업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무치는 원한이나 우울감이 생길 수는 있을지언정(?) 목숨에 위험을 끼치는 업보는 아니다. '유찬영' 역시 그동안 다양한 시험에 미끄러졌지만 나름대로 대안을 찾아 알뜰살뜰하게 살아가지 않는가. '미리'가 내린 업보인  "누구의 존경도 받지 못하고 평생 불명예스럽게 살다가 비참하게 죽을 것"은 어떤가. 이 역시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거기에 불명예와 재산은 다른 것이라, '미리'의 조력자 집안은 내로라하는 재벌 집안이자 유명한 기업 총수 일가이기도 하다. 업보를 받았다고 해서 누군가 비명횡사 하거나 쓰러진 것도 아니니 '미리'를 용신의 화신으로 오해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영노'의 업보는 "부모는 자식을 키우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자손은 부모의 정을 모르고 산다."로, '영노'의 조력자 집안은 대대로 부모는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나고, 자식은 혼자 남겨져 자라왔다. 업보 탓에 조력자인 '정순주'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의 손에 자라났다. 같은 이무기와 조력자라 해도 이렇게 상황이 다른 만큼, 이무기와 조력자의 관계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바리'와 '마리'가 승천과 업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미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무게는 천차만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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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진행되며 앞서 이야기한 세 쌍 이외에도 다양한 인간과 이무기가 등장한다. 업보에 대해 알고 모르고를 떠나 업보에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관계가 얽히고 섥히는 것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작품에 푹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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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란 무엇일까. 누구보다 인간을 증오하며 거짓으로 조력자의 협력을 구했던 '영노'가 어떤 이무기보다 동조자를 아끼게 되고, 파충류 공포증과 초반에 겪었던 일 때문에 '바리'를 쫓아 낼 궁리만 하던 '유찬영'은 '바리'를 위해 사채를 쓸 생각까지 하게 된다. 비슷한 상황과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같은 목적 앞에 다양한 관계를 맺어가는 이야기. <합격시켜주세용>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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