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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된 여자들 이야기 <카산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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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31 13:50:54  |   조회: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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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된 여자들 이야기 <카산드라>

 

그리스 로마신화를 관심 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일법한 <트로이 전쟁>의 등장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이는 누구일까. 아킬레스건으로 유명한 아킬레우스가 있고, 빼어난 지략으로 유명한 오디세우스가 있고,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자 그리스 신화에서 경국지색으로 알려진 미인의 상징, 헬레네 왕비와 호구의 상징으로 알려진 파리스 왕자가 있겠다. 이외에 트로이의 명장인 헥토르나 로마의 건국자라 불리는 아이네아스도 있을 것이고……그리고 불우한 예언가의 상징인 카산드라가 있다.

 

태양신 아폴론의 구애로 예언 능력을 받았으나 감히 신을 거절한 대가로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못하는 저주를 받아버린 카산드라. 힘없는 예언자의 상징이 된 그녀가 바로 이하진 작가의 <카산드라>의 주인공이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다룬, 혹은 설정을 차용하거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은 무수히 많다. 단순히 웹툰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서구 문화의 대부분은 성경과 그리스 로마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하진 작가의 <카산드라>는 트로이 전쟁을 그녀만의 시각으로 새로이 써내려가는데, 여기서 이하진 작가가 그려낸 트로이 전쟁의 골자는 이렇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신화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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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지배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를 신은 실재하지 않고 지배와 정치를 위한 프로파간다로 쓰이는 시대로 그리며 그 속에서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여성들을 그려낸 작품이 바로 <카산드라>이다. 특히 여성의 인권이 현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았던 고대 시대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제목이 <카산드라>인 만큼, 일리아드에서 등장하는 카산드라의 예언들을 주축으로 작품이 진행되며 원전에서 '신화'를 걷어내고 작가의 창의력으로 채워낸 스토리가 일품이다. 만화적 허용과 각색이 가미된 색다른 시선으로 읽어낸 트로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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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고대 그리스에선 각종 신화와 비극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물론 카산드라는 실제 역사와 신화에서 여러 각색이 들어간 작품이며, 이러한 점에서 고증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완벽한 고증이 작품의 완벽한 즐거움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작품의 목적이 '그리스 신화의 복기'가 아닌 이상 이는 단점이 아닌 이하진 작가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작품의 전개는 흥미롭다. (카산드라를 즐겁게 읽은 독자라면 최혜영의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라는 도서를 추천한다. 그리스 비극을 당시 그리스의 정치,외교적 맥락에서 짚어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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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의 시작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그리스, 스파르타의 왕비인 헬레네를 데려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카산드라는 그리스와의 전쟁을 우려하여 당장 헬레네를 되돌려보낼 것을 촉구하나 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트로이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황금 사과 이야기>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파리스 왕자가 양치기일 시적, 세 여신이 왕자에게 나타나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택하라 했다. 이 때 헤라는 세상의 권력을, 아테네는 모든 전쟁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게 해주겠노라 속삭였고 이에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건넨다. 그 결과 스파르타의 왕비가 '여신의 선물'로서 트로이에 온 것이라고. 카산드라는 이 소문을 듣고 "신들 운운하며 여론 조작을 하는 건 그리스인들이 주로 쓰는 수법"이라며 파리스를 추궁하나 파리스는 이를 무시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주된 골자가 되는 대사가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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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즐기고 있잖아요? 누가 그걸 일일히 아니라고 말하겠나요? 그래서…모든 이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 되는 법이랍니다."
 
<소문>과 <진실>은 작품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는데, 주인공인 카산드라와 헬레네가 나라와 전장을 다스리고 이용하는 방법이 바로 <소문>과 <진실>, 즉 정치이기 때문이다. 
 
카산드라와 헬레네. 그리스 신화의 비극에 휘말린 불우한 공주와 왕비의 모습은 <카산드라>에서 찾아볼 수 없다. 신이 없는 세계에서 그녀들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을 억압하는 세계와 맞서 싸운다. 작품의 큰 스토리는 원전인 일리아드, 트로이 전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으나 그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의 치밀한 행동과 감정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알면서도 손을 놓지 못하게'만든다. 작가는 카산드라가 신화에서 했던 대표적인 세 예언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하였는데, 첫번째 예언은 파리스에 대한 예언, 두번째 예언은 트로이 전쟁에 대한 예언, 세번째 예언은 트로이 전쟁 패배 후 미케네 왕 아가멤논의 첩으로 끌려가 아가멤논의 미래에 대해 예언하는 부분이다. 현재 작품에선 세번째 예언까지는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았으나 무척 기대되는 부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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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스토리가 뛰어나고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작품이라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는데, 사실 리뷰에서 스토리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보단 직접 작품을 읽는 쪽이 좋겠다.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니까.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곁들여보자면 카산드라는 다음 웹툰 리그에서 연재되다 승격되어 웹툰으로 간 작품으로, 12년 5월부터 연재를 시작해 2014년 2부를 마치고 이후의 이야기는 작가의 블로그에서 연재되고 있다. 후기에 따르면 작가는 본래 출판만화 스토리 작가 출신이라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역시 후기를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한다.) 출판 만화에서 웹툰까지, 재능있는 작가들이 떠나거나 그럼에도 다시 살아남아 작품을 연재하는 모습을 보면 한 명의 독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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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하진 작가는 3부를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블로그에서 연재하는 중인데, 정식 상업 플랫폼에서 요구하는 연재 주기와 컷수에 따른 작업량을 생각하면 그럼에도 작품을 연재해주는 작가에 대한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크다. 언젠가 작가가 작품 외적인 문제로 펜을 꺾지 않는,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해당 작품은 코미코에서 박성우 작가(나우,마루한-구현동화전 등으로 유명한)에 의해 리메이크 연재되었으나 지금은 중단되었다. 관심이 있다면 이 역시 찾아 읽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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