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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부고와 성폭행 사건, 그를 극찬했던 예술적 해석은 망상회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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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부고와 성폭행 사건, 그를 극찬했던 예술적 해석은 망상회로였다
  • 딴지 USA
  • 승인 2020.12.15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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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감독의 부고를 들었다. 고인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 평가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의 성폭행 사건 증언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화들에 대한 배신감과 경멸감은 되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김기덕의 영화 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대한 허위의식을 보여주지 않나 짐작된다.

국내 영화 평론가들 뿐 아니라 세계 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거장이라 불렸던 김기덕의 필모그래피 앞에서, 내가 다 헤아리기 힘든 영역이라 존중하며 순응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곧바로 느껴지는 난해함, 잔인함, 그리고 어김없이 드러나는 성적변태성 등은 예술적 깊이의 세계로 정당화되었다. 게다가 한때 신학교를 다녔던 이력을 밝히던 그는 영화에 종교적 코드를 가미하는 것을 즐겼다. 사마리아, 피에타 등의 작품명들과 코드들이 그랬다. 여대생을 창녀로 전락시키는 변태적 상상으로 극한의 흥미거리만 제공했던 영화(나쁜남자)의 말미에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가 감미로운 엔딩곡으로 나올 때, 혹시나 저 영화에 기독교적 메시지가 은신한 것은 아닌지 궁금해서 영화 리뷰들을 다 뒤져본 적도 있다. 결국 그의 성폭행 전모가 드러나고, 그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처절한 증언이 나온 뒤에 내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를 극찬했던 숱한 영화 평론가들의 예술적 해석이 얼마나 그들만의 권위주의적인 망상회로였는가.

오래 전에 포스트모더니즘과 탈구조주의 철학자들의 언어와 논리가 얼마나 허상적인지를 폭로했던 소칼의 '지적사기론'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적이 있었다. 삶의 미묘함을 깊이있고 정교하게 해석한다며 최고의 권위를 향유하는 이들이 자신들도 감당할 수 없는 허위적 지성의 카르텔 속에 빠져 있는 실상 말이다. '예술' 전반에서도 이러한 허위의식과 우월주의가 심각하지 않은가.

영화만을 얘기하자면, 나는 다큐영화가 아닌한 재미와 감동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본다. 내 삶을 좀 더 위로하고, 유쾌하게 하는 에너지야 말로 기꺼이 돈을 지불할 값어치가 있다. 일상을 치밀하고 집요하게 다루는 영화라고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지만, 정작 나는 왜 저걸 영화로 만들어서 내가 봐야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다. 왜 내 시간과 돈을 들여서 머릿속을 온통 복잡하게, 마음에는 찝찝한 여운을 남겨야 하는지 속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더 깊은 예술 의식의 세계로 들어서는 수업료라 생각했다. 아, 그것은 사실 대중의 평균 의식세계와 다른 '구별짓기'를 하고픈 욕망이었을 뿐이다.

인생을 조금은 단순히 예술적이고, 단순히 도덕적으로 살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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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il Kim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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