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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 해석되는 예수, 지금, 여기에서 살아 운동하는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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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 해석되는 예수, 지금, 여기에서 살아 운동하는 복음
  • 딴지 USA
  • 승인 2020.10.2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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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벙어리 예수 >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 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넷플릭스 시리즈 영화 <메시아>는 이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 문법은 그다지 세련되지 않았고 네러티브도 중반부에 가면 루즈해지는 측면이 있어 그다지 좋은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가 우리 시대에 주는 메시지는 예수가 전한 복음의 핵심 영역이다.

우리는 2천 년 전 팔레스틴의 예수, 역사적 예수, 초월자 예수, 구원자 예수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는 예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 우리의 상황을 예수는 어떻게 이해하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없다. 그 예수는 교리적으로 박제화된 예수다. 시대와 상황 가운데 아무말 못하는, 벙어리 예수다.

한국 개신교회가 이리도 처참하게 망가지고 주저앉게 된 이유는 지금, 여기의 예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 주술적으로 되뇌는, 초월적이고 관념적인 예수, 교리적인 예수만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 개신교회가 몰락하게 된 이유다.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이 <메시아>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세계가 분쟁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예수라면 그 책임있는 당사자에게 뭐라 했을까.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태어나 예지력과 예언자적 통찰력으로 난민 문제의 중심에 선 청년 ‘알 마시히’는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 대담하게 요구한다. 전 세계의 미군을 다 철수시키라고.

제국의 식민지인 팔레스틴 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탄압받고 착취당하는 민중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가 제국의 황제 시저를 만났다면 당연히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는 게 맥테이그 감독의 예수에 대한 영화적 주해(commentary)다.

문자를 신봉하는 근본주의적 사고로 이 영화를 보면 상처받게 된다. 메시아가 유대인이 아닌 무슬림으로 태어났다는 것, 시리아 난민들을 이끌고 이스라엘의 봉쇄를 뚫고 나가려는 것, 이스라엘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 미국의 대통령에게 군사적인 폭력을 거두라고 명령하는 것,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보이는 것 들을 2천 년 전의 박제화된 예수의 시각으로 보면 이단적일 수밖에 없다.

요한복음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전기문이 아니라 주후 1세기 말에 쓰인 예수에 대해 해석(interpretation)하는 설교문이라는 사실을 정규 신학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 수 있다.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이 넷플릭스를 통해 소환한 예수는 바로 요한복음의 예수처럼 ‘예수가 지금 여기에 온다면 어떤 것을 문제 삼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려 할까’에 대한 성서 해석이다. 그것은 예수에 대한 당대적 해석이다.

그래서 ‘그가 지금, 여기에 온다면’이라는 가정은 맥테이그 감독이 우리 시대의 기독교에 던지는 가장 뜨거운 질문이다. 교회들을 이 질문 앞으로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맥테이그 감독이 영화에 숨겨놓은 과격한 메시지다. 예수 시대의 팔레스틴 기득권자들처럼 알 마시히를 끊임없이 비방하고 조롱하는 이슬람 사제들과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을 반동세력으로 등장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여기에서 해석되지 못하는 예수, 지금, 여기에서 살아 운동하지 못하는 복음, 시대는 그 예수와 그 복음을 존중하지 않는다. 존중받을 수 없는 교회는 시대로부터 냉혹하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교회는 이 시대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중이다. 시대가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악하기 때문에 버림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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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주 목사
By 김선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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