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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이중직,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사역이며 선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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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이중직,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사역이며 선교입니다
  • 딴지 USA
  • 승인 2020.10.20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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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목 목사님들 더부룩 김집사 입니다.

47년을 한국 교회 안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오늘 있었던 해프닝을 보면서 느낀 점을 글로 남겨 보려 합니다.

남목사님과는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꾀 오래전부터 페친이었습니다. 뒤늦게 일목 그룹에 올라온 논란 글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지만, 일목 당사자는 아닌지라 그냥 올라오는 글들을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몸글이 다소 거칠어 논란의 소지나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읽혔습니다. 그렇지만 그 몸글의 중심에 담긴 메세지의 핵심은 일목이던 아니던 이중직이냐 아니냐의 경계가 중요한게 아니라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살아 내는것, 때에 따라선 목회자라는 직함에서 자유 하는 것 만약 그렇지 못하게 하는 그 안에 불완전한 역동이 있다면, 그 역동을 만들어내는 근원 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더 관심을 두자는 정도로 여겨 졌습니다. 이 몸글은 글의 당사자가 이중직 이시니 쓸 수 있는 문장들이라 이해 했지만 몇몇 문장들은 거칠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남목사님의 글과 살아온 괴적을 보아온 터에 그 글이 어떤 의미로 쓰여 졌을지는 짐작 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이중직에 대한 제 생각을 나눠 보고자 합니다.

사업상 교회와 관련 된 일들도 꾀 하기에 여러 층위와 다양한 결의 목회자 분들을 만납니다. 담임목사인 분들, 부목사인 분들, 전도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성도님, 교회 이웃 주민들 등등등 아마 이그룹에도 여러 층위의 분들이 모여 있는걸로 압니다.

담임 목사님들 중에도 여러 형편과 처지가 있고, 다른데는 말못할 사정들을 제게는 편하게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제 막 개척하신 분들, 개척 하려는 분들, 곧 해임 당하실 분들, 이제 막 청빙 받은 분들, 청빙 받고 어느정도 안정된 분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으신 분들 다들 각자의 형편과 처지에 따른 생각과 입장이 다르다는걸 많이 봐 왔습니다.

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사연과 사정이 있었습니다.

이미 사회는 이중직이냐 아니냐? 그런 경계 조차 모호 한 시대가 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 직업들은 이미 몇개의 직업이 중첩된 것이 아무렇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목회가 직업이냐? 저는 직업이라고 생각 합니다.

자기 삶을 지탱 해 주는 구심점이 되는 일이 저는 직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고, 그런 직업들이 하나이던 열이던 그것은 크게 문제 될게 없다고 여깁니다. 또한 교회안의 실상은 사회에 무수한 많은 직업들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공통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파트 타임, 전도사, 부목사 시절에 겪는 여러 곤란 한 일들과 모습들이 사회의 일반 직업들 안에 늘 있는 모습들과 다르지 않음을 많이 보아 왔고, 담임 목사님들은 목사님들 대로 말못할 사연들이 있더군요.

저는 이중직이라는 말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런 이분법적 언어가 왜 존재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동일 한 24시간이 주어졌고, 그 스물 네시간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 내는 것은 다 같은 공평하게 주어진 기회 일진데 어떤 분은 좀 더 교회라는 조직화된 공동체에서 목회에 시간을 쏟고 어떤 분들은 교회 밖 사회에서 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내고, 있는것 일 뿐이니까요.

다만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의 길이는 같지만, 모양과 결과 밀도가 다를 뿐이지요.

저는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같은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다소의 차이라면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차이 정도이겠지만, 이제 그 전공의 의미도 이미 사회에선 큰 의미가 있는건 아닌듯 하구요.

신학이던, 목회던, 교육이던 전공은 A여도 삶은 플랜B로 살아낼 수 있는것이고, 서원과 안수가 문제라면, 그역시도 사회 제도의 한 영역이지 그것을 구태어 세상과 구별 짓는 표식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종교도,! 교회도 목회도 사회의 한부분이자 영역이니 말입니다.

정말 목회가 중요 하다면, 목회 안과 밖의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런지요. 어디서나 목회하듯 살아 내 주시면, 그로서도 족하고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중직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신학적 입장으로 사도 바울의 예화가 종종 등장하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사회는 사도 바울의 때와는 또다른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회 구조에서 살기에 사도 바울이 그 시대에 적응하며 사역 하였다면, 지금 시대를 살아내시는 사역자 분들은 이시대에 적응하며 사역 하시면 그것으로 족하고 충분하다 생각 합니다.

다만 한가지 부탁 드리고 싶은것은, 늘 어떤 현상이나 이슈들 앞에서 일희일비 하시며, 예민하게 반응 하시는 모습들 까지 사회와 같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심은 필요 한것 같습니다.

교회가 성도와 목회자가 사회와 구별 되는것은 직업이 몇개냐가 아니라 예민한 문제들에 어떻게 반응 하느냐의 차이가 이중직이냐 아니냐 보다 더욱 중하고, 사회와 구별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슈 앞에 올라온 여러 반응 몸글과 댓글 들을 보면서 일터의 구분이 아니라, 정신의 구분, 다움의 구분이 없어져 버린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사역이며 선교이고, 세상 가운데 부름 받은 이들의 모습이니, 교회 밖의 현존이 예수 믿는 이들의 증거가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맺습니다.

저는 오늘 하루도 빡빡하게 살았는데 이제 또 철야 일하러 갑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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