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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사태를 보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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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사태를 보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 딴지 USA
  • 승인 2020.08.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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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광훈 탓할 것 없습니다. 나를 비롯한 우리 한국 교인들의 잘못입니다.

그간 코로나19와 관련해서 거의 대부분의 교인들은 사회에서 책잡히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조심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일부 이상한 사람들이 교회와 교인이라는 이름을 걸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기독교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따라서 그간 많은 애를 써온 교인들은 분통하고 억울한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억울해 할 자격이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 그의 지난 행적을 보면 전광훈은 목사라고도 할 수 없고, 그를 추종하는 이들도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기존 교회에 있던 사람들이지요. 결국 누가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냈습니까? 그들이 어느 물을 마시고 어디 밥을 먹고 자랐습니까? 그들이 애초부터 이단이었습니까? 그런 괴물을 낳았고, 그 괴물이 저렇게 커가도록 내버려둔 한국 교회가 잘못한 겁니다. 누가 누굴 탓하나요? 다 자업자득입니다.

3. 전광훈은 둘째 치고, 코로나 확진자 안 나온 교회나 교인이면 훌륭한 교회이고 교인입니까?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공, 경쟁, 짓밟기, 내 몫 챙기기 등 온갖 맘몬을 섬기느라 이미 교회의 모습과 교인의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처럼 똑같이 부동산 투기하고, 똑같이 갑질하고, 똑같이 향락에 취해있고, 똑같이 부정부패에 물들어 있고, 똑같이 돈에 정신이 팔려있고, 교단의 높은 자리 차지하기 위해 금품 선거하고, 권력에 맛을 들였고, '좋은 게 좋은 거지...' 라고 하면서 그런 행동에 부끄러움이나 신앙적 거리낌도 없습니다. 성경은 이를 가리켜 양심에 화인 맞았다고 합니다. 솔직해집시다. 아닙니까? 교단장부터 시작해서 목사, 장로, 직분자까지 이런 고발에 대해 "나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부끄럼 없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 보십시오. 의로운 자 열 명만 있었더라도 소돔과 고모라가 불벼락 맞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4.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방법

한국교회가 살아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1) 변명하지도 말고, 일부 몰상식한 이들이 그런 것이지 나는 아니라고 말하지도 맙시다.

광화문 집회에 안 나가고, 온라인 예배 드렸다고 올바른 그리스도인입니까? 기독교가 개독교가 된 것이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이 전광훈의 이름으로 터진 것일 뿐, 전광훈이나 우리나 다 오십 보 백 보입니다.

(2) 말로만 회개하지 맙시다.

교회 밖 사람들은 더 이상 속지 않습니다. 회개한다고 무슨 기도회 하고, 미스바니 뭐니 그럴 듯한 이름 붙여가면서 회개 기도대회 한다고 법석 떨 것 없습니다. 비웃음만 살 뿐입니다. 회개하려면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아무도 없는 골방으로 들어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면 됩니다. 세상을 향해 하는 회개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3) 맘몬 우상 숭배를 멈춥시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상식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면 됩니다. 돈, 성공, 탐욕, 이기주의, 성장, 술수, 편법, 권력 등과 같은 맘몬 우상숭배를 멈추고 하나님만 섬기면 됩니다. 더 이상 교인들은 부동산 투기하면 안 됩니다. 너도 나도 다 하는 갭‘투자’라고 하면서 손바닥만한 말로 하늘을 가리지 맙시다. 하나님은 그리 만만한 분이 아니십니다. 사회 질서 좀 제발 지킵시다. 주일 예배 드린다고 불법 주차, 불법 유턴 밥 먹듯이 하고 한 차선 다 차지하고 교통체증 유발하고, 예배 시간 늦었다고 신호위반은 기본이고... 목사들은 교인들 사업 성공해서 돈 잘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맙시다. 목사가 무당입니까? 도리어 그들이 정직하게 벌어서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결단의 용기를 주시라고 기도합시다. 교인들은 쓰레기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 없이 말하거나 행동하지 맙시다. 더 이상 “무례한 기독교인”이라는 말을 듣지 맙시다.

(4) 교회의 본질을 되돌아봅시다.

교회 부흥, 성장주의 귀신에서 이제 좀 치유 받아 해방 됩시다. 교회 건물 크게 짓는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교회 건물 멋들어지게 지어서 뭣에 쓰렵니까? 그 돈이면 차라리 구제와 선교, 어린아이로부터 청년에 이르는 다음 세대 신앙교육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벌어진 이후로 교회는 “예배를 못 드리면 어떡하지?”, “교인들이 빠져나가면 어떡하지?” “헌금이 줄면 어떡하지?” 등에 온통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테크놀로지 업그레이드로 승부를 걸려고 했습니다. 좋은 방송 시스템에 투자하고, 감동적인 콘텐츠 개발하고, 교인들이 안 떠나가게 붙들어두는 방법 고안에만 몰두해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원래 그런 것 하는 곳입니까? “이 어려운 시대에 교회는 세상에게 어떤 희망을 줄까?”, “이 세상의 지치고 힘들어하는 이들(자기 교인이 아니라!)을 위해 무엇을 할까?”,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까?” “코로나19와 같은 일들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교회는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질문하고 고민하고 실천했습니까? 그저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 안 망할까?” 이런 고민만 하지 않았습니까?

(5) 배타적인 태도는 이제 그만 버립시다.

기독교인의 장기 중 하나는 정죄하기입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와 다른 생각과 취향과 스타일을 가졌다고 저주하고 정죄하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이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런데 부정과 불의를 지적하는 것은 못하면서 나와 스타일이 다른 것에는 무척 예민합니다. 하기야, 자기 자신부터 부정과 불의를 저지르고 있고, 그것이 불의한 것인지 조차 느끼지 못하는 데 어떻게 부정과 불의를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워낙 자기 의로움과 교만에 한껏 부풀어 올라 있으니, 나와 다른 스타일은 금방 눈에 보이겠지요. 그리고 그게 눈엣가시처럼 보이니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5. 맺는 말

이렇게 된 것, 어쩌면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그동안 배부르고 자기 착각에 빠져 살던 교회가 한번쯤 자신을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맘몬의 기차에 올라타서 브레이크 없이 무작정 정신없이 질주하던 교회가 이제 한번 얻어맞고 바닥을 쳐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하여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게 개독교를 넘어서 신천지급 이상의 대우를 받게 하는 이런 망신을 당하게 하고 계신지 모릅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많이 사랑하시나 봅니다. 어차피 열매 없이 나뭇잎만 무성한 썩은 가지 가득한 교회라면 하나님께서 찍어 불태워버리시는 게 나을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건강한 그루터기에서 싱싱한 새싹이 올라와 건강한 줄기, 열매 맺는 나무가 될테니 말입니다. 이참에 한국교회 교통정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출처:https://www.facebook.com/jayhoon.yang/posts/10222697193688779

By Jay Yang 교수
By Jay Yang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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