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임은정, "돌아봐주지 않으면.. 어린 아이 목숨값 징역 5년"
상태바
임은정, "돌아봐주지 않으면.. 어린 아이 목숨값 징역 5년"
  • 딴지 USA
  • 승인 2020.06.05 1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아이를 생각합니다.
아빠에게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만을 가진 채 세상을 향해 날개짓 한번 못해보고, 아빠라고 불렀던 자에게 얻어맞아, 엄마에게 외면당한 채 방에 갇혀 죽어간 한 아이를 생각합니다.
그 어린 아이가 영문도 모른 채 아빠에게 구타를 당하며 얼마나 처절한 공포에 떨었을지, 장이 파열되어 죽어가면서, 체했을 거라며 등을 토닥이며 돌아서는 엄마의 뒷모습에 얼마나 절망하였을지 우리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햇살 한 조각 들지 않는 방에서, 누구도 귀기울여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그렇게 그 아이는 죽어갔습니다.

또다른 아이를 생각합니다.
아빠에게 맞아 신음하며 죽어간 오빠 옆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였을 한 여자 아이를 생각합니다.
그 여자 아이가 죽어가는 오빠를 지켜보며 얼마나 무서웠을지, 집에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얼마나 기다렸을지, 누구하나 와주지 않는 이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지 우리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여자 아이에게 세상은 오빠의 시신처럼 가혹하리만큼 차가웠을 것입니다.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6살 어린아이는 그 생명을 잃어버렸고, 4살 어린아이는 평생지울 수 없는 가혹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피고인들에 대하여 어떠한 처벌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늘나라로 간 아이는 살아 돌아오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에게 악몽 같은 그 시간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만,
뒤늦게라도 피고인들에게 그 행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우리의 맡은 바 소임이라 할 것입니다.
본 검사의 논고가, 재판장님의 판결이 피고인들에 대한 준엄한 질책이고, 쓸쓸히 하늘나라로 간 피해 어린이에게 바치는 제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본 검사는 .......

+++++++++++++++++++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기 훨씬 더 전인 십 몇 년 전,
제가 담당했던 상해치사 사건 논고문입니다.
징역 5년이 선고되었지요.
어린 아이의 목숨값이 겨우 징역 5년이구나... 싶어
치가 떨리다가
법원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못난 공판검사로 자책하다가...
선고날 공판검사석에 앉아있던 제 마음은 지옥을 헤맸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상해치사 사건 공판카드에 적힌 수사검사의 구형도 징역 5년이었어요.
이 말도 안 되는 구형이 어떻게 결재를 통과했는지 황당해하며
논고문을 작성하였고,
법정에서 구형을 대폭 상향하여 논고한 것인데,
결국 징역 5년이 선고되더군요.
그때는 실무가 참… 그랬었습니다.
어이없게도.
세상이 돌아봐주지 않으면, 죽음조차도 가볍게 취급되기 마련이거든요.

법정에서 의붓아빠의 선고형에 귀 기울였을 죽은 아이가 얼마나 울면서 하늘로 떠났을까… 싶어
너무 미안한 사건으로 제 가슴에 아직 박혀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많은 죽음이 차곡차곡 쌓여
사회가 제법 바뀌긴 했습니다만,
우리 사회는 학대받는 아이들이 보내는 숱한 구조신호를 여전히 놓치고, 늘 뒤늦게 미안해하네요.

황망한 죽음을 또 접하고 마음이 너무 아파
하늘나라에 이미 간 아이들과
여행가방에 갇혀 죽어간 아이를 생각하며
오늘도 여전히 살아가는 못난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곱씹으며
흰 국화를 제 담벼락에나마 올립니다.

못되고 무심한 어른들이 없는 하늘에서 행복하렴.
미안하다.

 

출처:https://www.facebook.com/eunjeong.im3/posts/2894039363997927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0 /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