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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의 역사에서는 누가 주인공일까, '성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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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의 역사에서는 누가 주인공일까, '성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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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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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어쩌면 누군가한테 역사라는 단어는, 나라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또는 그보다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 석기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에 대해 떠올리게 만드는 단어일 지도 모르겠다. 두꺼운 역사 교과서 같은 것들. 하지만 <성경의 역사>에서는 그와 결이 다른 역사에 대해서 다룬다. 한 사람의 역사.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이야기.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정해 그 사람의 역사를 돌아본다고 하더라도 주인공을 제외한 수많은 사람이 거쳐 갈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 오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상처를 주고, 또 받는다. 유명인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도 그 때문일 테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상황에서 드라마보다 더 막장스러운 일들을 겪으니 말이다. 아직 웹툰이 끝을 향해 달리지 않아 전부는 알 수 없지만, 초반부 웹툰의 진행은 제목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 아이러니함을 준다. 분명 성경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할 것 같지만 성경이 스스로가 말하는 자신은 없다. 하지만 명백히 이것은 성경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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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는 성인이 된 나이이지만 만화를 그려보겠다는 결심을 한다. 자신이 힘들 때 만화가 힘을 주어 자신 역시 타인에게 그러한 힘을 주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입시 학원에 들어간다. 멋있는 결심을 내리고열심히 해보겠다고 마음까지 먹은 성경에게 담당 입시 학원 선생님은 관심을 보인다. 물론 성경이 얼마나 만화에 열정이 있는지 때문은 아니다. 그저 성경이 예쁘고, 자신의 타입이라는 것 때문에. 게다가 성인이라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성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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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성경에게 잘 대해준다.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성경과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기도 하고, 우연히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의 만화를 성경이 좋아한다고 하니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화를 잘 그려 대학에 간다면 어떠한 캠퍼스 라이프를 보낼 수 있을지 상상력도 키워주기까지 한다. 이 모든 것을 성경에게만 해준다. 성경이 예쁘니까, 자신 마음에 드니까. 그래서 잘 대해준다. 성경은 원하지 않았다. 호의를 보여주니 그저 이에 고마움을 표한다. 성경은 선생님이니까 그렇게 감사함을 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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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이쯤이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때 고백을 하면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에 내려진 결론이다. 자신 안에서 확신이 내려지자 성경에게 고백한다. 자신이 거절당할 수 있다고는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성경은 이곳에서 고백을 받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선생님이 생각한 성경이지 진짜 성경이 아니다. 성경이 당황해하지만, 선생님은 그 진실된 시그널을 읽지 않는다. 어쩌면 읽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성경의 의사결정 문제인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선생님이 성경이 좋고, 성경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느끼니 성경의 의사 따위는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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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선생님이 너무나도 무섭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선생님을 연애 상대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학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저를 위해 친구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진로 고민을 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니까. 둘은 선생님과 제자 사이로 만났으니까.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성경의 결정을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신이 나쁜 사람으로 몰렸으니까. 

그래서 성경은 꽃뱀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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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성경에게 폭력을 가한다. 이것은 분명 성경의 이야기지만 성경은 폭력을 당하는 내내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이야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너무나 궁지에 몰려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 시간이다. 성경은 간신히 자신은 선생님을 이성적인 상대로 보지 않았다고, 그저 선생님으로 대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통하지않는다. 이것은 성경의 이야기인데도 아무도 성경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선생님은 성경의 말을 고쳐주려고 한다. 성경은 그저 성경의 의사를 표현했을 뿐인데 그것을 입시 만화 피드백을 주듯 자신의 입맛대로 고치려고 한다. 그건 선생님조차 건들 수 없는 영역이라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만 같다. 과연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이 선생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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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참 신기하다. 본인에게 무언가를 물어봐 놓고서는 그 장본인이 답하는 것보다 주변인이 답하는 것을 더 열심히 듣는다. 성경이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놓고서는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사람을 향해 쏠린다. “내가 왜 그랬냐면~”하고 주어가 나로 시작하는 말은 잘 듣지도 않으면서 타인이 “걔는~해서”하고 이야기하는 것들은 신빙성이 없이 잘 듣는다. 그 이야기를 신나게 들어 놓고서는 본인이 그 말에 동의하건 안하건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사실로 결정을 내려 버린다. 왜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없는 타인에 대해서 평가하고정의를 내리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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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역사>는 불편하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불편하다. 우리는 우리 각각의 역사에서 얼마나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조차 성경이처럼 지분이 10%가 채 되지않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어간다. 공허만이 남은 텅 빈 영혼들은 타인에게 역사를 빼앗기고, 다시 타인의 역사를 빼앗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그 누구도 타인의 의사를 짐작할 수 없고 그들의 삶을 마음대로 재단할 수 없다. 

 

절대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 네이버 웹툰, <성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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