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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정경심 교수에게 신속한 진료권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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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정경심 교수에게 신속한 진료권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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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1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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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정경심 교수에게 신속한 진료권을 보장하라

15년 전 우여곡절 끝에 척추협착수술을 받았다. 허리통증에 시달린 엄마의 유전인지 큰 키 때문인지 10대 후반부터 요통에 시달렸고 출산 이후 여러 차례 응급상황을 겪었기에 허리근육을 강화하는 등산을 거의 강박처럼 해왔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살인적인 통증으로 잠을 못자고 두어걸음 이상 걷지 못했으며 심지어 혼자 힘으로는 변기에 앉거나 세면대에 서서 세수를 못할 정도였다. MRI를 찍고 몇 군데 척추전문병원을 더 찾았지만 가는 곳마다 당장 시술하지 않으면 하지마비를 피할 수 없다고 겁을 줬다.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는 점이 마뜩치 않았고 일단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싶었다. 극한의 통증을 견디며 물리치료를 시작으로 도수치료, 추나요법, 약침, 봉침 등등 안 해본 게 없었다.

척추질환을 다룬 대중서를 찾아 읽었지만 지극히 상직적인 내용 위주라 하나마나한 얘기뿐이었다. 그러다 척추질환의 권위자라 하는 아산병원의 이*성 교수를 소개받고 그가 쓴 책을 찾아 읽었다. 그는 척추수술이 과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며 수술을 꼭 필요로 하는 환자는 전체의 5%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러 케이스의 MRI 사진을 소개하며 자신의 사진을 스스로 보라고 했다.

알아보니 그는 전국의 척추질환 환자들이 제발 수술해달라고 찾아오는 족족 돌려보내는 까칠한 의사로 유명하다고 했다. 어차피 통증으로 잠도 못자니 밤마다 그의 책을 공부하며 내 X-Ray와 MRI 사진을 판독했다. 며칠 사진과 씨름한 결론은 나의 경우는 그가 말하는 5%에 들어가는, 지체하면 하지마비로 항문의 괄약근 기능을 잃게 되는 경우였다.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아산에 근무하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응급진료티켓을 확보했다.

바로 수술에 들어갈 것을 예측하여 이것저것 주변정리를 하고 병원에 갔다. 그는 내 인사도 받는둥 마는둥 하더니 진료실 컴퓨터에 띄워놓은 MRI 사진을 보자마자 “수술합시다” 했다. 하지마비 직전이라며 바로 다음 주인 추석 연휴 전에 시간을 만들 테니 당장 입원수속을 밟고 사전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수술해달라고 거의 떼쓰다시피 하는데도 퇴짜맞은 환자들은 나에게 특별한 빽이 있냐고 비법을 물었다. 그렇게 나는 시술이 아닌 전통적인 방식으로 척추협착수술을 받았고 착실하고 성실한 재활치료 끝에 정상을 되찾았다.

수술을 마친 후 그는 조금만 더 지체하여 신경이 00부분을 눌렀으면 마비가 왔을 거라며 통증이 상당했을 텐데 어떻게 참았냐고 했다.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때문에 정작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이 때를 놓쳐 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수술을 만병통치처럼 여기는 세태를 비판했다. 그는 내게 바닥에 앉는 양반자세를 하지 말 것과 허리근육을 보강시킬 수 있는 운동을 빼놓지 말 것을 주문했고 지금껏 잘 지키며 살고 있다. 검찰개혁 시위 때 놀러나온 것처럼 재수없게 휴대용 등받이 의자를 가지고 다닌 이유다.

나의 개인적인 얘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적정한 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걸 말하고자 함이다. 만약 그 의사가 자신의 휴가 일정을 조정하여 응급수술을 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만약 동네에서 시술로 마쳤다면 어떻게 됐을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덕분에 나는 추석 연휴 내내 안정적으로 회복과 재활을 마치고 일상과 본업에 복귀할 수 있었다.

2020년 쯤인가 조국 교수를 털다털다 사모펀드도 마땅한 혐의가 보이지 않자 그의 동생 조권씨를 털었다. 당시 조권 씨는 목디스크 상태가 매우 심각하여 의료진으로부터 속히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영화 <그대가 조국>에도 등장한 그의 지인 박준호씨는 방송에 나와 그가 찾아가는 병원마다 기자들이 쫓아오고 의료진은 부담스럽다고 환자로 받아주지 않는다며 어떻게 문명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 울분을 토했었다.

MB가 툭하면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했듯 나도 겪어본 지라 박준호씨의 단편적인 이야기만으로도 그의 목상태가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 짐작이 되었고 저들의 반인도주의적 만행에 치를 떨었었다. 저들은 조국과 그의 가족을 '사람'으로 본 것이 아니었다. 그후 마땅한 혐의가 없자 별건수사로 기소, 수감중인 조권씨의 목 디스크는 어찌 됐는지 무척 궁금하다.

그리고 2년이 흘러 지난 8월 1일 정경심 교수가 디스크 파열로 서울중앙지검에 형집행정지를 신청했고 검찰은 검증절차를 거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법정에 설 때마다 구토와 오심, 두통을 호소했고 더러 졸도하기도 했다. 지난 6~7월에 구치소 내에서 네 차례 낙상사고가 있었고 7월 22일 재판종료 후 검사에서도 “디스크 파열 및 협착, 하지마비에 대한 신속한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권고가 있었다.

디스크 협착 및 추간판 탈출증, 고관절 고도 골다공증, 뇌수막종을 동반하는 뇌종양과 다발성 뇌경색증이 확인되고, 좌측 눈에는 안와골절의 새로운 병변이 나타나 정밀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소견이다. 내 정형외과 주치의는 척추질환은 사진도 중요하지만 증세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없이도 정상이 아님을 쉬 알 수 있을 정도다. 수차례 낙상사고는 뇌수막종, 한쪽 눈의 실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의사의 소견인 뇌수막종을 동반하는 뇌종양과 다발성 뇌경색증의 증세가 바로 위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형사소송법 제 471조에서는 건강이 현저히 악화할 우려가 있을 경우 형벌의 집행이 정지되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3년 여대생 청부살인사건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 중견기업 회장 부인 윤길자씨가 건강악화를 이유로 여러 차례 형집행정지처분을 받고 4년가량 병원 특실에서 호화생활을 한 것이 드러난 후 엄격하게 적용된다지만 이재용이 21년 8월 가석방된 것처럼 유전석방, 무전감금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들은 손톱 밑 가시로도 병원치료를 받는데 정작 신속하게 형 집행정지제도를 활용해야 할 일반 수형자가 외부 의료혜택을 보지 못하고 건강이 악화되는 불공정성은 문명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가깝게 이명박은 징역 17년이 확정되어 수감되었으나 건강을 이유로 수감, 석방, 재수감을 반복했다. 최근에는 2021년 2월 50여일 병원치료 후 재수감되었고 지난 6월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받다 형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져 3개월 일시정지로 귀가했으며 오는 8.15 특사에 사면대상으로 거론된다. 하도 들락거려 그의 수감기간은 형기의 10%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또 박근혜는 지병악화를 이유로 삼성 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받다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특별 사면되었다.

이명박근혜와 이재용은 법이 허용하는 관용을 흠뻑 받은 반면 2013년 위 사건 이후부터 2018년까지 형집행정지로 나온 재소자 절반 이상이 사망했고 나머지는 외부 치료기관에서 치료를 마치고 재수감되었다. 형 집행정지 결정이 늦어져 사망한 경우는 92명(75명 질병 사망, 17명 자살)이었다. 이는 보통의 재소자들은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사망이 임박한 중증환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가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형 집행정지제도의 집행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형집행정지가 아니더라도 치료목적의 귀휴 제도는 형집행법 제 77조 1항에 6개월 이상 복역한 수형자로서 그 형기의 3분의 1 이상 경과한 수용자의 경우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일반귀휴, 1년 중 20일 이내의 특별귀휴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형법 제 72조 1항에서는 교정성적이 우수하고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무기는 20년, 유기에 있어서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하면 가석방 행정처분이 가능하다. 이는 법원의 판단도 필요하지 않다. 가족의 건강이 위중할 때도 허용되는 제도를 본인의 건강악화에 적용할 수 없음은 형평성의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정경심 교수는 대법원에서 징역 4년 실형이 확정되어 2024년 6월 2일에 형기가 만료되니 지금까지 형기의 절반 이상이 지났다. 그리고 재범이나 도주의 위험이 없다. 더욱이 그는 평소 뇌종양과 한쪽 눈 실명으로 지병을 갖고 있는 기저질환 환자이며 구치소 내 여성 병사가 없어 독방에서 혼자 감당하고 있다.

디스크 협착 및 추간판탈출증(디스크 파열), 뇌종양, 좌측 눈의 안와골절 등은 구치소 내 의료체계로는 감당 불가한 정도다. 또한 적정한 때를 놓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교정시설 내 의료처우 현실을 고려했을 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생명권, 진료권을 보장해주는 것은 문명사회에서 두말할 필요가 없는 기본권에 해당한다.

정경심 교수의 형집행정지신청을 두고 한 언론은 이를 심사하고 결정해야 할 서울지검장이 조국교수 수사로 좌천당한 인물이라며 정쟁으로 끌고 가는 기사를 실었다. 조국 교수와 그의 집안, 그리고 자녀의 표창장 사건은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었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표창장 위조 혐의로 4년형을 확정받고 수형생활을 하는 한 어머니가 위중한 건강상의 이유로 형 집행정지신청한 것을 정치적 고려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은 언론의 자기부정이며 잔인하고 반문명적인 태도다.

정경심 교수에게 신속하게 외부 의료시설의 이용을 허용하고 형집행 정지의 신속한 결정으로 의료권을 보장하라. 이는 그가 무슨 죄를 저질렀든 인권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심사에 통상 1주일에서 최장 20여일이 소요된다고 하지만 이미 전문가인 의료진의 소견이 나와있는 상태다. 이번에도 형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거나 특별한 사유없이 지체하는 것은 사법체계를 방패삼은 사적 보복이라는 혐의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디스크 파열 및 척추협착의 살인적인 통증은 몸이 기억한다. 지금도 며칠 운동을 게을리하면 여지없이 그때의 통증을 상기시키는데 미세한 느낌이 찌르르 전해질 때마다 공포에 휩싸인다. 정경심 교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약성 진통제마저 5분을 넘기지 못하던 극한의 통증, 혼자 힘으로 화장실 볼일조차 못 보던 그 통증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우리는 감옥에서 장질부사로 죽어나가던 이광수의 <무명>으로부터 얼마나 진보한 것인가. 우리는 진정 문명사회를 사는 근대인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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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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