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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말로만 근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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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말로만 근대화되었다
  • 딴지 USA
  • 승인 2022.07.0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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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웃사이더 --

어렸을 때 우리 집은 8학군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사실은 판자촌들도 주변에 아주 많았다. 나의 부모님들이 상당히 완고하고 보수적인 분들이어서인지, 이사 가기를 아주 싫어하셔서 동네에 그냥 그대로 계셨던 것같다. 지금도 그 아파트에 살고 계시니, 거의 40년째인 것같다.

80년대 초에는 그게 좋은 아파트였다고들 했지만 그닥 잘 지은 아파트일 리 없다. 70~80년대 당시에 아파트를 지었던 기술, 자본과 지금을 비교하면 뜨악이다. 말만 똑같이 아파트일 뿐이다.

우리 학교에는 공부를 하는 애들이 별로 없었다. 선생님들은 아예 포기하고 한숨만 쉬는 분도 있었고 대체적으로 수업시간이 김 빠진 상황들이 많았다. 반 아이들이 60~70명이고 전체 학급은 고2때 18반까지 있었다. 이 많은 아이들 중 전후기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 수가 한 60~70% 됐을까. 나머지는 2년제 전문대를 가거나 그냥 취직을 알아보고 .. 그랬다.

지금은 아이들이 학원에서 다 먼저 배워서 학교 수업시간에 잔다고 하지만, 당시 우리 학교는 학업과 대학을 거의 포기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잤다. 그런 상황 속에서 공업 선생님 한 분이 이렇게 얘길 했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대학 갈 수 있는 몇몇 사람들만을 위한 수업을 해야 되나?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수업을 하고 싶은데." 이 말씀이 참 기억에 남았지만 그보다 더 남는 것은 강남 고등학교에서 옮겨오신 선생님 한 분이 하신 말씀이다. 애들이 수업시간에 태도가 글렀다면서 "사는 것도 그지같은 것들이 공부하는 것도 그지같네."라고 하셨었다.

당시 나는 성적이 조금 떨어지면 교감 선생님이 찾아와서 불러놓고 말을 걸고 그랬다. "너 요즘 뭐 고민 있니? 힘든거 있으면 얘기해라" 이런 식이었다. 애들이 하도 공부들을 안 하니 기대를 거는 친구가 몇 명 안 됐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 원서 쓸 때 2,3지망도 교감선생님이 사정하다시피 해서 커트라인 제일 낮은 과 두어개를 골라서 썼었다. 어찌됐든 서울대 입학자들 수가 몇명인가가 학교로선 중요했기 때문이다.

의대 예과때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클래스메이트들과 소개할 때 내가 놀랐던 것은 반 이상이 강남 학군 출신들이었다는 점이다. 한 60% 이상이었던 것같다. 우리 학번은 재수생들 비율이 무지하게 높았는데 그게 거의 강남 8학군들이었다.

이 친구들은 서로 서로 이미 잘 아는 애들이 많아서 이미 뭉쳐서 다녔다. (이런 상황이 우리 학번에서 의예과가 특히 심했었다.) 또, 지방에서 올라온 아이들은 부산 대구 전북 등등 향우회들이 따로 있어서 그쪽으로 다들 잘 모였다. 나같은 서울 소외지역 출신 신입생들은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학부터 계급화, 지역화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게 그때였다.

집이 판자촌이라 자기 공부할 방도 없는 아이들과 섞여서 학교를 다니며 어울려 놀았던 나는 자기 차를 몰고 다니고 메이커 옷 아니면 입지도 않는 애들을 보며 무슨 말을 나눠야 할 지 몰랐던 것같다. (이후 차차 나아지긴 했지만...) 내가 주류 사회에 대해 항상 비판적인 성향을 갖게 된 이유는 이런 대학 신입생 시절의 어떤 충격이랄까, 그것과 맞닿아 있다.

한명숙 전총리의 남편인 민중신학자 박성준 선생의 강의를 들은것도 이때였다. 박선생은 당시 서울대 1학년 학생들을 향해 "여러분은 누구보다도 소심하고 누구보다도 이기적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나보다 한살인가 어린 한동훈은 법대 입학후 신입생 환영식때 "나는 8학군 출신이야, 그렇다고 너무 거리감 느끼지 말았으면 해" 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거리감 느끼길 원하지 않고 어울리고 싶었다면, 자기가 8학군 출신이라는 그 정체감 자체를 털어버리려 노력했을 것이다. 친구들을 위해 본인이 변화할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한동훈의 이 말 속을 뒤집어 꺼낸다면 이런 게 될 듯하다. "나는 너희들보다 높은 데서 출발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도록 해. 그렇지만 겉으로라도 너희들과 친한 척은 해줄께."

내가 가장 심하게 반발심을 느끼는 것은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들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엘리트 중심주의였다.

사회를 이끌고 나갈 리더라면 책임질 줄 알고 그 누구와도 대화하여 문제를 풀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소위 '공부 잘하는 걸로 뽑힌' 엘리트들은 책임을 지는 걸 너무 싫어한다.

"그게 왜 내 책임이야?" 이렇게 따질 줄만 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 온 것같다.

그리고 더 안 좋은 경향은, 엘리트들끼리만 어울리려 하기 때문에 이질적인 집단과는 대화를 할 줄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병원으로 얘기하면, 이사회나 교수회 내에서만 열심히 얘기를 할 줄 알지, 병원 노조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지, 환자들 집단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병원의 이사회를 구성하고 병원장이 되곤 한다. 정호영 같은 사람이 병원 노조나 환자 단체와 얼마나 대화를 했을까 생각해 보자.

권력은 자세를 낮추고 사람들을 섬기는 자세를 가진 자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화란 "내가 맞다. 너는 들어라" 라는 자세로 떠드는 건 대화가 아니다. 나와 완전히 이질적인, 동떨어진 곳에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 누군가 말한다고 했을 때, 그걸 듣고 나의 생각을 말하고 상대의 말에 의해 내 태도를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또 상대방에게 이런 면도 있다고 설득하고 이런 쌍방향의 노력이 대화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쌍방향의 소통을 할 줄 모른다. 나보다 못 배운 사람은 틀렸고, 배운 사람이 맞다고 생각하고 고집을 피우기 때문이다. 근대화 이전, 우리 나라는 양반은 하늘이 주신 것이니 상것들이 양반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교육을 잘 받은 엘리트들이 그보다 못한 자들을 끌고 가는 걸 당연하다고 믿는 것같다. 우리나라는 말로만 근대화되었다. 그 속의 정신은 아직도 조선시대, 봉건 시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식으로 사회가 서열화되어 권력이 결정되는 것은 국민들이 단호히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한동훈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권력을 장악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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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혁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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