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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정상화 법안 통과를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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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정상화 법안 통과를 지켜보며
  • 딴지 USA
  • 승인 2022.05.0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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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든 검찰이든 그들이 국가라는 실체로 내 인생에 등장한 건 대학에 들어간 직후부터였다. 시위가 있을 때마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은 개패듯 학생들을 때렸고 특히 백골단이라 불렀던 사복체포조의 폭력은 세상에 태어나 사람이 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사람들이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작은 소도시에서 안온하게 자란 나에게 일상으로 만나는 소위 짭새의 출현은 그 자체가 일제때 순사들을 짐작케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법정에서 만나는 검사들이나 검찰 조사실에서 만난 검사(아마도 검찰 수사관이었겠지만)는 법률을 다루는, 상대적으로 정의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참하게 생긴 여학생이 왜그러냐, 부모님 걱정하게 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라 어쩌구 하는, 왠지 짭새와 안기부의 폭력과 인권침해로부터 지켜줄 것만 같은 사람들이었다. 지방에서야 미디어로 접할 만큼의 큰 조직사건이 없어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짭새들이었지 검사는 아니었으니까.

길을 걸을 때마다 쇼윈도 앞에 멈춰 뒤에 오는 사람들을 살피거나 길 가는 사람들의 눈을 재빠르게 스캔하며 걷는 습관은 생각보다 오래 갔다.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이나 순찰차만 보아도 맥박이 빨라지고 불안이 엄습해오는 것도 꽤 오래 갔다. 경찰을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된 건, 더러 길가다 용무가 급하면 내 발로 파출소에 들어가게 된 것도 노무현 정부 이후였지만 그건 상당부분 도로에서 인도 위로 내 삶이 옮겨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곤봉 든 짭새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민중의 지팡이 비스무레해진 것이다.

그러다 오랜만에 진짜 검사를 보게 된 건 노무현의 '검사들과의 대화'였다. 당당하게 대통령과 맞장뜰 정도로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나 싶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가치를 지켜주고자 한 노무현을 총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의 위치를 각인시켰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노무현과 그의 주변을 밀가루 체치듯 훑으며 그의 생을 압살했다.

‘검사’들을 천착하게 된 건 확실히 그때부터였다. 그들의 세련된 수법이야 아는 사람이나 알지 보통 사람들은 영화에서 주야장천 보여주는 대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윗선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강직한 검사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울어진 환경에서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그들의 그물코에 걸려든 이상 싸움은 불가하다는 절망에 가족이라도 지키자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예사로 발생하게 되었다.

군사독재의 압제에서 벗어나고자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친 결과가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된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부족한대로 짭새들은 경찰로 환골탈태했는데 검사님들은 개검이 되어 독재자보다 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몸집을 불린 게 오늘의 현실이다. 해방 후 70여년 동안 눈앞의 실적에 목매는 경찰과 달리 법률가로서 공평무사할 것이라는 기대에 알게 모르게 칼을 하나씩 더 쥐어준 결과가 조국사냥이고 한 젊은이의 10년 인생을 합법을 가장하여 말소시키는 피에 굶주린 승냥이로 만든 것이다.

노무현에서 시작된 검찰개혁이 검경수사권 조정에 이어 수사•기소분리라는 2단계가 드디어, 마침내, 기어이 매듭지어졌다. 검찰과 국힘당은 당장 나라가 절단날 것처럼 성동격서로 표정관리하기 바쁘고 본질적으로는 껍데기뿐인 검찰개혁임에도 민주당은 헌법을 유린하는 자들이라는 집중포화를 받는 현실. 민주당의 싸움이기 전에 정치세력간의 싸움이고 민주개혁진영의 실력이 여기까지다.

여기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했고 앞으로는 더욱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비록 반쪽짜리일지언정 검찰개혁의 지난한 여정이 일단락되는 것을 지켜보며 착잡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정말이지 가슴에서 뜨끈한 것이 차오른다. 저들이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를 제거하면 국민들도 진실을 알게 되리라 기대했던 것이 다 부질없는 기대였음을 깨닫게 된 지금 다시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받는다.

후불제 민주주의, 가불선진국으로서 뒤늦게 채무변제해야 하는 무게가 참으로 무겁다. 전쟁과 산업화를 겪으며 서구에서 이식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 근대로의 이행은 선진국의 무늬는 만들었으되 선진국이라는 집합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어떤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야 할지 숙의하고 협상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서지 못했다. 그 결과가 오늘 군사독재보다 더한 검찰권력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고 그 집단에서도 가장 천박하고 역겨운 자가 국가지도자로 선출된 꼴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더 정치적이어야 하며 더 정당 중심으로 모여야 한다. 민주당이 마음에 안 들어도 지금은 민주당이 거점이 되어야 하고 민주당 의원들을 격려하며 포지티브하게 가야 한다. 반대하고 타도하고 분쇄하는 것이 운동의 지향이었던 시절과 달리 다음 세대는 격려하고 공감하며 연대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있다는 것을 최근 집회를 보며 시민사회도 한뼘 성장해왔다는 뿌듯한 생각이 들어 한결 힘이 난다.

조국 집안을 사냥하고 대통령이 된 자와 흉중에 사시미칼을 품고 있는 한동훈과 조직이라면 아니 자신의 전관예우를 위해서라면 체면이고 뭐고 없는 자들이 이제 열흘 후면 행정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민주당 의원들, 특히 부족하나마 검찰개혁이 여기까지라도 올 수 있게 만든 처럼회 의원들을 지켜내야 하고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저들이 경제공동운명체로 더러운 연대를 하듯 우리는 개혁이라는 가치공동체로서 더러 마음에 안 들어도 격려와 신뢰와 연대로 맞서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에서 말한 ‘해방적 파국’의 시점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좋은 기회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며 우리 안에 가진 다양한 무기를 연마하여 스스로 더 강해지고 더 재미있게 이 파국을 이겨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비록 반쪽짜리 검찰개혁이지만 여기까지가 민주개혁 진영의 실력이며 이만큼 오는 것도 무수한 피를 흘렸기에 가능한 것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민주당 의원들과 지치지 않고 함께 싸워온 우리 자신들에게 박수와 더나은 내일을 향한 응원을 보낸다. 거리의 광장에 나가지 않아도 함께한, 함께할 동료들이 많다는 게 무척 뿌듯하고 그 옛날 짭새들을 향해 이눔의 자식들! 하고 호통쳐주던 어르신처럼 든든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런 어르신 역할을 하게 되었다니, 얼마 못 온 것 같아도 참 많이 왔다.

"까짓거 한번 해보라지, 우리도 만만치 않다 이거야!", "이눔의 호로자식들!" 하고 민주당 의원이든 개딸 양아들이든 저들의 공격 앞에 서있는 이들에게 든든한 병풍이 되어주자. 검찰의 수사 기소분리원칙을 통과시킨 새날 아침, 일하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임을 천명한 노동절 아침이 해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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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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