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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윤석열이 김종인을 내친 것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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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윤석열이 김종인을 내친 것이 맞을까?
  • 딴지 USA
  • 승인 2022.01.0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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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쓰다가 이런 저런 일로 정신이 없어져 쓰다 말았던 글, 별로 중요하지도 않으니 그냥 덮으려다가 대충이나마 몇자 써본다.

- 정말 윤석열이 김종인을 내친 것이 맞을까 -

김종인이 '시키는 대로 연기나 잘 하라'라고 한 발언이 보도됐을 때, 즉시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김종인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거였다. 83살이나 되어 머리가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워낙 잔꾀 정략에 능한 인물이어서 국힘에서도 모셔온 것 아니었나. 갑자기 심각한 '노망'이라도 들지 않은 이상 말이다.

내 생각은, 김종인이 나름엔 고단수의 머리를 굴려 윤 후보가 자신을 쳐낼 동기를 만들었다는 것. 왜? 어떻게든 이 망할 캠프를 나가기는 해야겠는데, 김종인으로서는 윤석열을 '차버리는' 것보다는 윤석열에게 '차이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에.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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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단을 일으킨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다들 알다시피 윤석열의 짙은 패색이다. 그런데 아무리 스스로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선거 모사꾼 김종인이지만, 지금의 폭락 추세를 극적으로 반전시킬 묘수를 가지고 있을까? 누가 봐도 아니어보였지 않나. 허세조차 부리지 않았다.

그럼, 김종인에게 대반전의 수가 전혀 없는데도 패배 가능성이 지배적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김종인이 윤석열이 아닌 스스로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무엇일까. 당연히 자신이 총 책임을 맡은 윤석열 캠프를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김종인의 입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캠프를 떠나야 본인의 타격이 최소화될 수 있었을까? 누가 봐도 패색이 짙은 상태에서 김종인이 '바이바이' 선언을 하면, 대선 패배의 책임을 김종인도 함께 나눠지게 된다. 욕 안먹고 나갈 명분이 없는 것이다. 어쨌든간에 대선이 석 달 남짓 남은 판에 캠프에 들어와서 최고 지휘관 역할을 한 달 넘게 하지 않았나.

그럼 언론 보도는 물론이고 보수층 일반 국민들의 시선에서도, 김종인이 선거운동 지휘를 잘못해서 밀리게 됐고 질 거 같으니까 도망갔다, 김종인 때문에 패했다, 이런 인식이 적지 않게 퍼져나갈 수 있다. 특히 윤 후보를 강하게 지지한 층에서는 더욱.

반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윤 후보가 자신을 쳐내게 만들면, 김종인 본인의 책임은 회피할 수 있게 된다. 그나마 선거 좀 할 줄 아는 자신을 쳐낸 것이 윤석열 본인이므로, 패배의 책임은 윤석열과 그 측근들이 온전히 다 지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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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언부언이 되지만 다시 정리하자면, 김종인이 지지율 폭락 이후 뻔히 보이는 패배를 감당할 묘수가 없어 캠프를 떠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전제를 해보면, 그가 윤캠을 떠날 최선의 방법은 스스로 나가는 게 아니라 쫓겨나는 것이었을 수밖에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근거 없는 뇌피셜'이다. 근거가 있으려면 김종인이 스스로 숨긴 속내를 털어놔야만 하고, 또 설령 사실이라도 시인할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김종인이 백약을 다 써도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윤석열 지지율이 폭락한 직후에 김종인이 '정리해고'를 당한 이 결과가, 김종인에게 과연 나쁜 결말일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윤석열에게 정리해고를 유도해서는 결정적 공동책임을 져야 할 총괄선대위원장 자리를 더없이 자유롭게 벗어던진 '성공사례' 아닌가.

한 가지 더, 김종인이 윤캠을 스스로 나가서는 대선일까지 윤 후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쓴소리를 하기 어려워지게 되는데, 반대로 쫓겨나는 경우엔 얼마든지 쓴소리, 잔소리, 심지어 '저주'까지 하더라도 외견상 전혀 어색하지 않다. 왜? 그는 '정리해고 피해자'니까. '피해자 코스프레'로 '몸의 자유' 뿐만 아니라, 잔소리 하기 좋아하는 그로서는 꽤 소중할 '입의 자유'까지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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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긴가민가 한다면, 김종인에 대한 일각의 평가를 생각해보면 어떤가. 후보에게 선거를 이기게 해주는 재주가 있는 게 아니라, 이길만한 후보에게 붙는 재주가 있다고들 하지 않던가.

이번 대선에서 이길만한 후보로 윤석열을 낙점해 그 캠프에서 호령하는 자리에 올랐는데, 아뿔싸 완전한 오판이었네? 망하게 생겼네? 그럼 '플랜B'는 뭐여야 할까? 패할 줄 알면서도 끝까지 책임을 지고 선대위를 끌고 나가는 것일까, 아니면 최대한 면피하는 방법을 찾아 탈출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엔 윤석열과 윤핵관들이 노회한 김종인에게 완전히 당한 것이다. '윤석열은 시키는 대로 연기만 잘하라' 정도의 발언을 내놓으면 윤핵관들이 명분을 얻어 일제히 쫓아내라 난리를 칠 것이 뻔하고 윤석열도 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결과적으로 윤석열은 패배 책임의 큰 부분을 떠넘길 '면피 대상'을 잃었고, 현재의 추세 그대로 대선에서 패배하게 되면 모든 책임은 오로지 혼자 다 지게 되었다.

김종인에겐 이런 모사를 꾸밀 '잔머리'가 있고, 윤석열과 윤핵관들에겐 '주변머리'조차 없다. 김종인은 최악의 패배로부터 탈출하여 값진 '자유'를 얻은 반면, 윤석열은 최악의 상황에서 또한번 자멸 수를 두었다. 근거 없는 뇌피셜 치고는 꽤 그럴 듯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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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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