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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식의 회복, 이재명의 논산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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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식의 회복, 이재명의 논산선언
  • 딴지 USA
  • 승인 2021.11.22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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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울산, 부산지역에서 인문학 공부를 하시는 서른 여섯분의 귀한 손님이 남한강 폐사지 기행을 위해 멀리 원주 부론을 찾아주셨다. 푸른 신새벽에 출발하였을 그 발걸음이 너무나 귀하고 애틋하여 쓸쓸한 흥법사지 귀부이수의 머리 위로 땅거미가 슬금슬금 내려오는 시간까지 함께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먼길을 되짚어갈 방문객들을 배웅하고 돌아와 이재명의 논산선언을 들었다. 그는 온 몸으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열변하고 있었다.

그랬다. 어젯밤 잠 못드는 그가 페이스북으로 전한 메시지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고 중심을 지향했기에 보지 못했던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는 게 먼저여야 했다고 고백했다. 변방의식의 회복이다. 노무현이 위대한 것은 변방에서 중심으로, 그리고 중심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변방을 자처했다는 데 있다. 그는 저 높은 곳에서 근엄한 원로로 남길 거부하고 변방으로 돌아감으로써 어디에 있든 시대정신을 올올하게 곧추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중심이 되는 길임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비록 그의 꿈은 멈추는듯하였으나 자신을 소멸시켜 영원한 변방이 되었다. 그리고 이재명은 오늘 논산에서 중심을 갈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신영복 선생은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결코 멀고 궁벽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님을, 각성과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바로 그곳이 변방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변방은 단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주류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성과 개별성으로 연대하는 것,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창조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남한강 물길을 따라 늘어선 여주 고달사지, 원주 거돈사지와 법천사지, 충주의 청룡사지와 같은 폐사지들은 천년이라는 시공간을 품은 아득한 空의 세계다. 텅 빈 폐사지. 어쩌면 식구들의 살냄새, 밥냄새로 가득했으나 떠나고 없는 빈집처럼 한때 생명을 품고 영화와 번다한 삶의 소음을 품었으나 모두 다 떠나보낸 황량하지만 충만한 공간이자 철따라 그저 정해진 대로 피고지는 여여한 시공간이다.

거돈사지와 법천사지가 있는 원주 부론은 원주에서도 변방 중에 변방이다. 한강 수운로가 인적, 물적 교류의 통로였던 시절 중심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말’이 무성했던 富論은 물길시대가 끝나고 도로시대로 접어들면서 마치 폐사지처럼 궁벽하지만 충만한 강변마을이 되었다. 동트기도 전에 부산 울산에서 남한강가 작은 골짜기로 서너시간을 달려오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천년의 시간을 건너오는 내내 고작 백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의 협량함을 뚫고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아래로아래로 흘렀을 것이다.

폐허가 주는 가르침은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러므로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폐사지는 공간을 통해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아무리 옛사람의 흔적을 말한다 해도 켜켜이 쌓인 시간 속으로 들어가 과거 이곳의 영광과 쇠락, 왁자함과 한숨을 헤아리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며 우리는 그저 눈빛을 교환하며 무한하게 펼쳐진 시공을 공유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을 복기하며 부울이든 원주든 저마다의 고유성에 천착하는 변방과 변방의 조우를 통해 오늘 우리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되새겨 본다.

이재명은 중앙정치무대를 경험해보지 않은 역사상 첫 번째 대통령 후보다. 여의도에 입성하지 않고 오직 지역에서 증명해보인 자신의 정치력과 행정력 만으로 중앙을 꿈꾸는 그의 이력은 변방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이성을 갖는다. 많은 이들이 그를 불안해하는 것도 이 낯섦 때문이고 자신의 욕망을 공적 욕망에 복무시키는 것에 대한 진정성을 확신하지 못해서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중심이 아닌 변방을 추구했다는 저항성이 빚은 필연적인 결과다.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부로 가면 중심이 더 잘보인다는 것을 알았던 노무현은 자신이 있을 자리를 변방으로 규정했기에 스스로 중심이 되었고 이것이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변방이 중앙이 되고 주류가 되는 순간 기득권의 싹이 트고 보수화가 시작된다. 그래서 중심을 맹목으로 추종하는 이들에게 관대한 주류는 변방에서 중심을 견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가혹하다. 그러나 노무현은 변방에서 깨어있는 것만이 민주주의 건강성을 획득하고 각자가 중심이 되는 길임을 각성하라고 요구했다.

오늘 이재명은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닌 이재명의 민주당을 천명함으로써 굼뜨고 배부른 공룡 민주당의 등에 업혀가려는 혹은 업혀갈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렸다. 그리고 공간으로서의 변방의식을 넘어 저항성으로서의 변방의식을 회복했다. 그가 가진 야수성, 저항성이야말로 호모 데멘스(광기의 인간)를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오늘의 이재명을 있게 해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부드러운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진짜 이재명의 시간이다. 그가 시공간을 지배하는 것에 태클을 거는 자들이 적폐로 지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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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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