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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1] 이토록 오지에서, 한 마리 담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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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1] 이토록 오지에서, 한 마리 담비처럼
  • 딴지 USA
  • 승인 2021.10.2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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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이다. 첩첩산중 산꼭대기 기막힌 오지, 화전민들의 터전. 지금도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50,60대 남성들의 로망을 그려내는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 배경으로 맞춤한 곳.

삼계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왕복 12킬로미터 산길을 걸어야 했다. 초딩의 그 짧은 다리로 걸어 다니자니 결석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형, 오늘 날씨 참 좋으네?”

내가 말하면 앞서가던 형이 슬쩍 뒤돌아보았다. 그리곤 하늘 한 번 쳐다봤다.

“그래, 날씨가 지나치게 좋은 감이 있다, 그자?”

나는 형의 입만 바라보았다. 허가가 떨어지길 기다리며...

“뭘 가냐? 그냥 놀자.”

못 가는 날도 많았지만 그렇게 자체결석 처리하는 날들이 꽤 있었다. 폭우로 다리 잠기면 못 가고, 눈보라 치면 못 가고...

겨울이면 먼저 간 장난꾸러기들이 징검다리에 물을 뿌려놓기도 했다. 얼음 언 징검다리는 고무신 신고는 건널 수 없었으니 그 역시 '중간 하교'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무수한 핑계들이 그 멀고 험한 등굣길을 피하는 이유가 되곤 했다.

등하굣길은 멀기도 했지만 바쁘기도 했다. 오가는 길에 징거미 잡아먹고 더덕 캐먹고 개복숭아도 삶아 먹어야 했으니까. 가재는 수준이 좀 떨어진다. 진정 귀하고 고급진 음식은 징거미다.

개복숭아에는 또 나름 구슬픈(?) 사연이 있다. 보통 개복숭아가 어디 열리는지는 모두가 위치를 알았다. 말하자면 오픈된 먹잇감이었던 셈이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 선수를 놓치므로 씨도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따먹어야 했다. 여물지 않은 복숭아는 쓰고 독해 삶아 먹는 방식을 개발했다. 그러면 좀 먹을 만했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자연과 별 구분도 되지 않는 몰골로, 한 마리 야생동물인 양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아침이면 이슬에 젖어 축축 늘어진 나뭇가지 아래로 기어 다니곤 했는데, 가을이면 천지가 노란색, 빨간색 단풍이었다. 새파란 단풍잎과 함께. 놀라운 건 색에 흠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 쥐어짜면 빨강 파랑 노랑 물감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순수’였다.

그 풍경들은 아직도 내 마음속 작은 다락방에 남아있고 나는 그곳에서 가끔 위로를 받는다.

고향을 떠난 건 초등학교 졸업식 직후 1976년 2월 26일인가였다. 3년 앞서 성남으로 떠난 아버지를 따라온 식구가 상경을 했다. 고향을 떠난 데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지통마을 그 오지에도 한때 도리짓고땡이 대대적으로 유행했다. 맞다, 20장의 동양화로 하는 그 놀이. 아버지도 마을주민과 어울리며 잠시 심취했고, 덕분에 그나마 있던 조그만 밭떼기마저 날려버렸다. 아버지의 상경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성남과 나의 인연의 시작이다.

#이재명 #웹자서전 모아보기 : https://blog.naver.com/jaemyung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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