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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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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성장했다
  • 딴지 USA
  • 승인 2021.09.2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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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어떤 이가 내게 말하길, "요즘 (페북에서의) 목사님 모습을 보면 탄핵-촛불 정국에서 가열차게 글을 쓸 때의 장면이 연상됩니다"라고 했다.

그이의 말에 나는 "어디 탄핵 정국뿐이겠어.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가 붙었던 19대 대선 때도 (문재인 후보를 위해) 살벌하게 글을 썼지"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이에게 말은 안 했지만 내 마음 속에는 '작년(2020년) 4월 총선 때도 치열하게 글을 썼지'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몇 차례 글을 쓰고 난 후 얻은 것은 페북 팔로워 숫자가 늘어난 것이고, 잃은 것은 안철수, 홍준표, 황교안 씨 등을 워낙 혹독하게 비판을 해서 그쪽 지지자들과의 인간적 관계가 끊어진 것이었다.

2. 19대 대선에서 얼마나 홍준표를 심하게 비판했던지 홍준표를 지지하는 목사, 장로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악다구니를 부려 곤혹(?)을 치른 일도 있었다. 하기사 내가 생각해도 그때 홍준표를 매섭게 몰아붙이긴 했다.

왜냐하면, 어떻게든 이명박근혜 세력이 정권을 못 잡도록 해야 했을 뿐더러, 당시는 홍준표가 워낙 똘끼 충만한 이미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홍준표가 국힘당의 최종 후보가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나는 이번에도 그를 매섭게 공격해야 할지 모른다.

허나 내가 홍준표를 공격하고 비판한다 해도 그 비판의 내용만큼은 19대 대선 때와는 상당히 결이 다를 것이다. 그때는 단지 홍준표의 똘끼를 몰아세우면 되었지만 이번에는 그가 들고 나오는 많은 정책들, 그리고 정당 조직 안에서 '덕성'이 부족해서 늘 단기필마 이미지를 주는 모습이 국정을 이끌 지도자로 결격 사유라는 것, 그가 경남도지사와 미통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이룬 행정적-정책적 성과가 뚜렷이 없다는 점 등등을 논리적으로 파고 들어야 할 것이다.

지난 4년 간 홍준표가 변한 만큼 그를 저격할 수밖에 없는 나의 기준과 콘텐츠도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그를 향한 비판이 정합성을 갖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3. 19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이 한창일 때, 문재인, 박원순, 안희정, 이재명 등이 뜨겁게 맞붙었을 때, 나는 그 네 사람 중 이재명에게 가장 낮은 점수를 주었다.

당시 내가 볼 때 이재명은 대통령으로서 가장 자질이 부족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당시 이재명은 자신을 음해하거나 중상모략하는 사람들을 통상적으로 '검찰과 법정'으로 끌고 가서 혼내주는 일이 잦은 공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재명 같은 유의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되면 일반 국민이나 언론이 대통령을 결코 비판할 수 없는, 국가 원수에 의해 형사와 민사 소송이 난무하는, 아주 저질 국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었다.

둘째, 이재명이 성남시에서 거둔 성과라는 게, 당시 내 눈에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려웠다.

내 판단에 따르면, 성남시는 분당과 판교를 품고 있는 전국에서 세수가 가장 잘 걷히는 지자체이므로, 재정 여유가 있는 소규모 자치 단체에서 거둔 복지-투자 성과라는 게 별로 대단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만약 이재명이 경기도나 서울시 같은 광역 규모의 지자체에서도 동일한 성과를 내면 그때는 그의 행정 능력을 인정할 수 있지만, 최소한 성남시는 아니다라고, 주변에 이야기하곤 했다.

이런 이유로, 지난 19대 대선을 앞둔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나는 이재명을 아주 낮게 평가했다.

4. 그럼 지금은 어떨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지금 나는 이재명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역시 위에서 적은 것과 동일한 이유에서다.

첫째, 지난 3년 6개월 간 이재명이 경기도지사를 역임하는 동안 그는 성남 시장 시절과 달리 자신을 근거 없이 음해하고 모략하는 사람들과 법적 다툼을 최대한 자제하는,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둘째, 그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볼 때 그는 광역단체 규모의 위치에서도 얼마든지 행정과 정책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다.

내가 볼 때, 그는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정치인들 중에 주요 이슈에 대한 이해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인 동시에, 참모진의 머리를 빌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 문제 해결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지능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4년 6개월 전과 달리 지금은 이재명에 대해 우호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가 민주당의 소중한 자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번 경선에 참여한 다른 후보들도 민주당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재명이 민주당의 아주 소중한 자산이라고 믿는다.

만약 그가 민주당 소속 단체장이 아니라 국힘당 소속 단체장으로서, 이번 대선에 참여했다면, 그가 이뤄낸 성과들에 비춰볼 때, 민주당은 윤석열이나 홍준표 같은 이들과 싸우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이재명을 싫어하는 민주당원들 중에는, 이재명이 민주당 소속이라는 것이 창피하다는 식으로 힐난하곤 하는데, 그것은 싸움의 프레임이나 구도를 전혀 모르는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된 '치기'라고 나는 본다.

5. 오늘 인터넷에서 어떤 기사를 읽다가-이재명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기사- 한 네티즌이 올린 댓글에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그 네티즌은 이재명을 심하게 비방하면서 이재명이 절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지 같은 집안 출신에, 그지 같은 인성을 가진 놈이 대통령이 된다는 게 말이 되냐?"

여기서 '그지 같은' 집안 출신이란 말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이재명의 가정 환경-성장 배경을 일컫는 것이다.

'그지 같은 인성'은 아마도 그가 자기 형수한테 했다는 소위 찢' 욕설을 가리킬 것이다.

이재명 하면 늘 '낙인'처럼 뒤따라 다니는 '거지 같은' 뭐뭐뭐는 사실 그 네티즌 한 사람만의 독특한 평가나 입장이 아니라, 넉넉한 배경에서 성장하고, 좋은 학교를 졸업했으며, 먹고 사는데 별 불편함이 없는 대다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의 기준에서 볼 때, 이재명은 대표적인 '그지 같은' 인간인 셈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개천에서는 용이 아니라 욕만 나와야 하므로', 개천 출신인 이재명은 오직 '욕'하고만 연결지어져야 하는 기피 인물인 것이다.

6. 하지만 나는 바로 그런 이유, 즉 이재명이 그지 같은 집안 출신, 다시 말해 '냄새 나는 개천' 출신이기 때문에, 만약 하늘이 허락한다면 그가 한 번 대통령이 되어서 지금도 개천에서 허우적거리는 수많은 미꾸라지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낙연이 민주당 본선 후보가 된다면 이낙연을 위해 선거운동을 할 마음이 있다.

추미애가 본선 후보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국힘당이 정권을 빼앗아가는 일을 저지할 수만 있다면, 정치인 개개인에 대한 호불호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게 내 입장이다. (내가 지난 19대 민주당 경선에서 내심 박원순에 마음을 두고 있었지만 문재인이 본선 후보로 결정된 후 내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그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허나, 나는 만약 이재명이 본선 후보가 되면 기꺼이 그를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민주당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젖먹던 힘까지 쏟아부을 마음이 확고하다.

나는, 그가 '그지 같은 집안' 출신이어서 더 마음이 간다.

그가 형수에게 했다는 욕설이란 것도 '그지 같은 집안'이란 맥락에서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병든 어머니의 사타구니를 찢어버리겠다는 사람에게, 그런 욕설을 철학적인 발언이라고 두둔하는 사람에게, 그 어머니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들이 똑같이 사타구니를 찢어버리겠다고 흥분해서 내뱉은 욕설을 그 맥락에서 들어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고 이해가 된다.

단언컨대 그 상황에서는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유복한 환경에서 젠틀하게 처신하는 법을 배우며 성장하고, 좋은 학교를 나와서 사회생활을 하며 나이스한 표정과 언행이 몸에 벤 사람들은, 그 '찢'자가 들어가는 욕설이 낯설고 당혹스러울지 모르지만, '그지 같은' 세계에서는 다 그렇게 산다는 것을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맨 정신으로 살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낡고 오래된 건물처럼 스스로 와르르 무너지고 연기처럼 증발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게 아니라 목숨이라도 부지하면서 견디고 버티려면 그지 같은 욕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첨언하자면 나는 이재명의 '찢'을 욕하는, 그 '세련된' 사람들의 젠틀한 언어를 믿지 않는다.

내가 아는 그들은, 운전하다가 옆차가 갑자기 끼어들면, 식당에서 음식을 시켰는데 한참 늦게 나오면,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다가 점원이 싸가지 없다고 느껴지면, 그 '찢'자 보다 더 심한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씨부리는 것을, 수없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이렇듯,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욕'을 하는 세상에서, 왜 이재명만 유독 오래 전에 내뱉은 '찢'자 때문에 그토록 심한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인가?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다.

다들 도덕과 윤리를 앞세워 이재명의 '인성'을 흉보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그가 '그지 같은' 집안 출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재명이 바로 그 '그지 같은' 개천 출신이어서 더욱 그에게 정이 가고, 그가 '그지 같은' 배경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한민국의 유력한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헬 조선을 이야기하며 절망에 빠진 수많은 그지 같은 젊은이들에게 뭔가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주길 바란다.

7. 사람들은 레미제라블을 읽거나 (영화를) 시청하면서, 장발장이 오래 전에 지었던 죄를 끝끝내 용서하지 못하는 자베드의 잔인함과 무정함에 치를 떤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든 자베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거나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재명의 과거를 끄집어내며 그의 '그지 같은' 인성을 논하는 사람들에게서, 자베드의 이미지가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곤 한다.

그분들께 묻고 싶다.

"장발장은 변할 수 있고, 이재명은 변할 수 없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지난 몇 년 간 이재명은 많이 달라졌고, 많이 성장했다.

지금의 그는 민주당의 소중한 자산이며, 민주당을 대표해서 대선 본선에 나갈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다.

8. 그럼에도 이재명을 싫어한다면, 이재명만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이재명이 내세우는 정책의 불합리성, 부족함, 위험성 등을 합리적으로-논리적으로 차분하게 말씀하면 된다.

내가 볼 때도 이재명의 몇몇 정책은 아직 한 번도 현실 세계에서 실천된 적이 없는,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동반한 것들이 있다.

나는 이런 부분을 자세히 비판하는, 반 이재명 진영에 있는 분들의 글을 읽을 때면, 때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때로 나 혼자 더 깊이 숙고해보는 기회를 갖곤 한다.

그분들은 내게 좋은 '선생님'이고, 그런 비판이 한국사회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드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런 글을 발견할 때면 고마운 마음이 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재명만큼은 대통령이 못 되게 해야 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렇게 행동하시면 된다.

괜히 '그지 같은 집안' 어쩌구저쩌구 하지 마시고.

내 페친들 중에는 이낙연 열혈 지지자도 계시고, 이재명 지지자도 계시고, 아마 포스팅 비율만 놓고 보면 추미애 지지자들이 가장 많은 것 같다.

하루에도 무수히 올라오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홍보하는 데 열정을 쏟아붓고, 반대하는 정치인을 공격하는 날선 글들을 접하면서, 나는 아 이 사람은 아무개를 지지하는구나, 저 사람은 또 다른 아무개를 지지하는구나 하고 끝낸다.

고백하건대, 단 한 번도 내가 다른 분들의 글에 '왜 그 정치인을 지지하느냐'고 따져묻거나 비아냥댄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어떤 정치적인 글을 쓰면 꼭 득달같이 찾아와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홍보하고 반대편 후보를 욕하는 분들이 계신다.

모르긴 해도 그런 분들은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그렇게 행동하실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행동이 정말로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득'이 될까?

글쎄, 나는 별로 효과가 없을 것 같다. 아니, 역효과가 더 클 것 같다.

9. 이런 글을 쓰고 나면 꼭 마지막에 후회가 된다. 그냥 가만히 있을 걸, 뭘 저런 시궁창 싸움판에 자청해서 끼어들어 욕을 먹는가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그래서 장황하게 쓴 글을 확 지워버릴까 고민하다가, 에이 그냥 올리지 뭐, 언제는 욕을 안 먹었나 하며 입술을 질끈 깨문다.

이 글도 그렇게 세상에 던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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