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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지옥을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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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지옥을 만들었나
  • 딴지 USA
  • 승인 2021.08.24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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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났다. 사람이 죽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소방관 한 사람이 화재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그 현장에 갇혀 죽어가는 사람이 그뿐일까? 물류를 배송하는 택배원 모두 불타는 경쟁의 불꽃 가운데 갇혀 있다. 그 불은 누가 질렀는가. 우리가 질렀다.

쿠팡은 창업 이래로 계속되는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해외에서 대규모 투자 유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가 지속되고 있었다. 경영 개선책으로 2014년부터 로켓배송을 시작했다. 이 로켓배송에는 오전에 주문된 신선식품을 당일 18시까지 배송하는 신선 주간 배송과 오전에 주문한 상품을 당일 21시까지 배송하는 당일 배송, 심야 배송, 새벽 배송 들이 있다. 주변에서 이 빠른 배송을 주문하는 걸 보고 나는 쿠팡 앱을 삭제했다. 쿠팡의 빠른 배송 속도에서 비인간적인 노동의 강도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끝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우리는 빠른 것이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아니, 우리는 속도에 중독되어 있다. 그 속도가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묻지도 않고 속도만을 즐긴다. 우리가 주문하는 쇼핑몰 상품 중에 촌각을 다투어 빠르게 받아야만 하는 게 얼마나 되는가. 그런 정도의 급박한 물건이라면 동네 마트나 오프라인 쇼핑몰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급하지도 않은 물건을 주문해 놓고 빠름을 강요하고 있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우리의 그런 속도중독을 이용한 상술이다.

쿠팡의 상술이 우리를 속도에 미치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도 중독이 쿠팡의 상술을 낳은 것이다. 공급은 수요를 따라 흐르는 물줄기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쿠팡의 물류 시스템을 구축했고, 우리가 쿠팡맨들을 잠못들게 만들었으며, 우리가 택배노동자들을 노예처럼 값싼 노동으로 내몰았다.

쿠팡은 신속한 배송을 위해 다양한 상품을 다량으로 미리 구비해 둬야 했다. 그래서 거대 물류 창고가 필요했고 그것을 관리하고 배송하는 시스템에 사람의 노동력을 거칠게 사용해야 했다. 구매 상품은 후불 결제로 하고 판매상품은 즉시 결제로 받는 구조를 통해 납품하는 업체와 소비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금융 마진을 보고 있다. 쿠팡은 구조적으로 거대 자본이 소상공인과 택배 노동자의 희생 위에 있는 기업이다. 더욱이 누적 적자가 4조원이 넘게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범석 대표는 강남의 50평대 고급 아파트를 법인 명의로 임대하여 살고 있으며 작년 한 해 동안 그가 받은 보수는 158억 원에 달했다.

다수의 희생을 대가로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이 이득을 보는 것이 정당화되는 사회다. 그것을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고전경제학은 말한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본가는 자본과 생산수단을 제공하여 자기가 기여한 만큼의 대가를 가져가는 걸 공정하고 정당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20장에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 비유를 한다. 노동의 시간과 양과 무관하게 동일한 임금을 주는 포도원 주인에 대해 말하며 천국이 그와 같다고 한다. 이 비유에 따르면 쿠팡의 대표와 택배노동자 사이에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보수 차이는 지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옥은 누가 만들었는가. 바로 우리다. 효율성과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경박한 소비주의에 빠진 우리가 이 지옥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상의 지옥은 무너뜨릴 수 있다. 하나님이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지옥을 무너뜨리고 천국을 건설해야 할 사명을 가진 자들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들 아닌가. 그런데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이 쿠팡에서 상품을 주문하고 배송이 늦다고 닦달한다. 그리스도인들도 지옥을 만든 공범이다.

기독교라는 진영에 속한 종교인들이 갖는 주된 용어들이 있다. 은혜, 사랑, 구원 같은 말들 말이다. 달달한 낭만적 언어들이다. 그런데 성경에 귀가 아프게 등장하는 정의(미쉬파트)와 공의(체데크)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자기 편리한 대로 자기에게 유리한 단어만 갖다 쓴다. 기독교 2천 년 동안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세상이 오히려 기독교에 역침투해 들어와 세속화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음과 같이 불편한 삶을 살고 있다.

● 과잉노동과 저임금을 통해 돈을 벌려는 쿠팡을 이용하지 않는다.

● 언론과 기사를 왜곡 편집하여 유통하는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을 이용하지 않는다.

●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집단 혐오를 부추기는 조중동 기사는 보지 않는다.

●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고 혐오를 조장하는 임원을 둔 기업, 이마트와 신세계를 이용하지 않는다.

● 금권으로 국가기관을 배후 조종하고 탈법과 탈세를 저지르며 경영권을 세습하는 삼성 제품은 이용하지 않는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쿠팡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타락한 집단에 대한 저항을 이렇게나마 실천한다. 내가 아무리 입으로 성경을 떠들어도 일상에서 작은 것 하나 저항하지 못한다면 그 말씀은 힘도 없고 능력도 없는, 죽은 말씀이다. 이것이 내가 말씀대로 사는 하나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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