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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우리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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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우리의 시간
  • 딴지 USA
  • 승인 2021.06.08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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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을 다 읽었다. 중간중간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논둑길 산책도 다녀오고 한바탕 꺼이꺼이 울기도 하느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그가 한자한자 피로 썼을 시간들을 떠올리며 나도 꾹꾹 눌러 노트필기하며 공부하듯 읽었다. 과문하여 한 집안의 가장이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내려가는 심정으로 쓴 책이 기왕에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피의사실을 흘려 논두렁 시계로 망신주는 것으로 노무현을 부엉이 바위에 오르게 만들며 비열한 웃음을 흘렸던 자들이 조국과 그 가족에게 한 짓은 단군이래 최대로 치졸하고 잔인한 사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국의 시간, 정말 기막힌 제목이다. 조국(曺國)이 감내해야 했던 참혹한 시간을 돌아봄이겠지만 이제 우리의 시간이고 조국(祖國)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다.

시민들이 건넨 따뜻한 인사,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기억해 쓴 서문을 읽으며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받던 2019년 8월 9일부터 1년 10개월 동안 그가 어떤 마음으로 버텨왔는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고통에 가슴이 저며 눈물이 흘렀다. 그때까지 설렁설렁 마실다니듯 페북을 했는데 그 즈음부터 나도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이곳에 풀어놓으며 정신을 붙들어맸고 9월 28일 첫 주말집회에 쪽수 하나라도 보태는 심정으로 서초동에 갔다가 위로받고 그후 주말마다 상경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도대체 그가 뭘 잘못했는지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데 왜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조차 그를 악마화하는지 도무지 내 대가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도 되살아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국이 그러면 안 되지, 진보를 자처하면서 그럴 줄 몰랐네, 부모찬스는 비겁한 거지,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자식에게 어떠한 찬스도 안 만들어줬냐고 따져물었다. 알만한 고등학교 교사가 보통의 아이들이면 다하는 봉사활동, 인턴십을 공격하는 걸 보며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생기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에 대해 소설쓰듯 써야 하고 봉사활동 시간이 모자라면 학교에서 풀뽑기 한시간 하고 모자라는 시간을 다 채워준다고 말했던 사람이 조민의 당시 입시조건도 외고 실정도 도외시한 채 거품물고 비난하는 걸 보며 안 만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사람을 우상화한다는 조롱을 들었다. 졸지에 난 우상숭배하는 조빠가 되어버렸다.

그게 뭐 대수겠는가. 나중에 보니 다들 비슷한 과정을 겪은 것 같았다. 세월호 아이들이 수장되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우울증에 빠졌듯 일란성 쌍둥이가 된 검찰과 언론에 한 가족이 도륙당하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너무 괴로웠다. 누군가 고통 속에서 일그러진 모습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서문을 읽으며 그때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떠올라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니 당사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가 말한 무간지옥(無間地獄)이란 말에 모든 것이 다 담겨있다.

일단 이 책은 정치에 관심있는 시민은 물론이요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이는 단순히 조국 개인과 그 가족의 수난이 아니라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의 권능이 어디까지인지, 권력을 국민을 위해 쓰도록 개혁하고자 하는 진보정권이나 개인을 어떻게 무참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그가 가족의 피를 잉크삼아 써내려갔다고 해서 주관적이고 감정적일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는 논문 피인용 횟수가 가장 많은 유능한 형법학자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조국사태’가 아니라 ‘검언유착’으로 명명방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 사건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검찰개혁을 오랫동안 주장해온 조국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검찰권 행사로 강제수사에 돌입하고 인사청문회라는 입법부의 시간에 소환조사도 없이 배우자를 전격 기소함으로써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사건명은 사건의 본질과 닿아있으므로 이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국은 2장에서 2019년 하반기 이후 언론과 정치권이 중요하게 다룬 자신을 둘러싼 의혹 8가지, 사모펀드, 웅동학원, 딸의 장학금, 고교생 인턴 체험활동 등에 대해 소회를 풀어놓는다. 윤총장은 사모펀드를 권력형 비리로 몰아 조국불가론을 말했지만 도덕적 낙인 외에 어떤 것도 연관성을 증명하지 못했다. 조국과의 연관성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 아내, 자녀, 동생, 어머니, 사망한 아버지까지 가족 전체에 대한 전방위적 저인망수사로 돌입, 멸문지화를 획책했다. 가족을 인질로 삼고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로 2019년 8월 27일 강제수사 돌입이후 126일만에 100여회에 달하는 압수수색, 100명이 넘는 수사진을 투입하여 허위작성공문서, 뇌물수수 등 모두 12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지만 조국을 구속시키지는 못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36일 동안 법무부 장관으로서 단행한 검찰개혁 조치와 미완으로 남은 과제에 대한 술회였다. 가족이 만신창이가 되어 광야에서 시달리고 있는데 가장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시기가 그에게는 가장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 같다. 5주, 36일이라는 장관 임기동안 특수부를 축소하고 심야조사와 포토라인 폐지 등 70년간 하지 못했던 주요조치들을 단행했지만 재산·소득비례 벌금제와 교정개혁을 통한 고품질의 법무행정서비스를 미완으로 남겨놓아 아쉬웠다고 회고했다.

나는 그가 최소 1년 정도만이라도 정상적으로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비검찰 업무들이 개선, 보완되었을까 생각하니 참으로 뼈아팠다. 그는 자택 압수수색 등 가족에 대한 포위망이 조여오고 개혁방안들의 진의가 왜곡보도 되는 걸 보면서 뒤로 되돌릴 수 없는 개혁은 첫째도 둘째도 오직 제도화뿐이며 그 초석을 놓을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되뇌었다고 고백한다. 가족을 광야에 벌거벗긴 채 세워두고 36일 동안 그가 얼마나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을지 나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2019년 하반기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월성원전 폐쇄 수사로 조국을 넘어 정부와 문재인을 향하던 검찰쿠데타의 음모는 4.13총선의 여당 압승으로 저지된다. 조국은 브라질과 이집트의 사례를 들어 검찰법조의 사법쿠데타, 연성쿠데타의 우려를 잊지 말아야 하며 수사권력은 언제든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검언정 카르텔은 2022년 정권교체를 목표로 결집하고 있다며 촛불시민의 경각을 주문했다.

그의 기록은 깨알같고 꼼꼼했다. 촛불시민들이 어떻게 결집했는지 장엄한 서초동 사거리의 촛불십자가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어려울 때마다 내일처럼 달려와 준 지인들과 이웃, 촛불시민들의 지지와 격려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스포같지만 지난 5월 5일 제조업 청년노동자인 페친 천현우씨가 보낸 페이스북 글에 친구보기로 화답한 글도 있고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다”며 고맙다는 김주대 시인의 문인화 이야기도 있다.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시민들이 들었던 피켓 구호와 깃발에 쓴 풍자적인 소속(짜장면 연구회, 영장자동발매기 연구회 등등), 촛불시민들이 외친 ‘조국수호’는 개인숭배가 아닌 검찰개혁의 대의를 위해 동의하지 않지만 함께 외쳐준 구호임을 잊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무엇보다 화가들의 통렬하고 날카로운 풍자화를 보며 심화(心火)가 풀렸다고도 했다.

나는 이 책에 쓰여진 그 어떤 것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도 하나하나 기억날 만큼 철저하게 팩트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오피니언 리더들의 현실인식과 분석을 인용하고 자신의 변호를 덤덤하게 술회하고 있을 뿐이었다. 검찰개혁 과정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현재 살아있는 권력에 어떻게 칼을 들이대는지 형법학자답게 법알못인 나조차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하였다. 그래서 이 책은 청년들이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의 초법적인 권력남용, 검찰총장의 배우자와 장모 비리라는 거대 불공정에 대해서는 눈감고 관행으로 지급되던 개인 장학금을 받고 부모가 교수여서 그 네트워크를 이용한 창의 체험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공정이슈를 거칠게 제기하는 것은 공정한 일인가 토론해주기를 기대한다.

내가 그가 쓴 책을 제대로 읽어본 것은 한때 법조인을 꿈꿨던 아들에게 권한 <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와 <진보집권 플랜>이 전부다. SNS를 활발하게 해온 탓인지 그는 시민들과 소통이 원활한 대중적인 언어를 장착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는 것은 마치 흐르는 물을 따라가듯 자연스럽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하는 것 중 단 한 가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강남좌파로서 자신의 ‘강남성’에 대한 성찰과 개선의 노력이 취약했다, 기존의 법과 제도를 따르는 것이 기득권유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진보적 학자로서 개혁주의자가 되고자 했지만 아이 문제는 안이한 아버지였다, 정치적 민주화와 진보개혁을 외쳐놓고 부의 불평등 해소에 앞장서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그는 2019년 8.25에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고 인사청문회가 무산되자 국민청문회 형식의 기자간담회에서도 사과했다. 그리고 얼마전 누군가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하고 또 사과하며 몇 번이라도 사과하겠다고 했다.

난 아직도 이게 왜 사과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다. 조국 입장에서야 나름의 이유로 자성할 수 있으나 이것이 요구할 사항인가. 강남에 살고 아내가 상속받은 재산이 많아서 기득권인 것뿐인데 그럼 상속받지 않고 다 환원해야 하나. 기득권은 악마가 아니다. 아이가 능력이 되고 부모를 따라 외국생활을 하고 온 불가피함이 있어 외국어고를 가는 게 뭐가 문제이고 당시 진로지도 방식대로 인턴십도 하고 논문도 쓴 것이 왜 문제인가. 진보는 먼지떨이해서 초미세먼지도 나오면 안 되는 것인가. 그럼 대체 누가 진보를 하나. 그런 진보가 있기는 한 것인가. 진보는 가난한 사람들만 해야 하는 것인가. 진보는 아이를 학원도 보내지 않고 그 학교에서 남들 하는 로펌 인턴십도 마다하고 쪽방촌 봉사나 풀뽑기에 그쳤어야 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지방에 살기도 하지만 사회적 네트워크가 빵빵하지 않아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친구들처럼 서울의 대형로펌 인턴도 국제행사의 통역서비스 자원봉사도 연결시켜주지 못했다. 학교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온갖 인턴십 활동 권유와 소논문쓰기는 온전히 부모의 몫이었고 이것은 부모의 네트워크에 좌지우지되는 것이었다. 사과할 게 있다면 외고를 지역마다 한 곳씩 설치한 교육시스템과 수시 입시제도에 정성평가로 쓰이는 창의체험활동 시스템의 허점을 고치지 못한 것을 사과해야지 제도가 만들어놓은 틀 속에서 부모와 아이가 최선을 다한 것이 왜 사과해야 할 일인가. 그렇다면 나도 사과해야 한다. 공부하느라 바쁜 아이를 대신하여 독서기록도 몇 개 써주었고 논문에 넣을 리포트도 보완해주었다. 그렇게 따지면 대학진학을 염두에 둔 인문계고 모든 학생들의 부모는 다 사과해야 하는가.

오늘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기자회견 발언도 그렇다. “공정과 정의를 누구보다 크게 외치고 남을 단죄했던 우리들이 과연 자기 문제와 자녀문제에 그런 원칙을 지켜왔는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지위 인맥으로 서로 인턴시켜 주고 품앗이하듯 스펙쌓기 해주는 것은 딱히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시스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좌절과 실망을 주는 일이었다.”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면서 뭘 잘못했다는 것인가. 그럼 민주진영은 앞으로 자녀들을 특목고나 과학고에 보내지도 말고 수시제도에서 요구하는 스펙쌓기를 부모의 네트워크가 있어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인가.

도대체 뭘 반성한다는 뜻인가. 당신들은 제도를 바꾸는 사람들이다. 사과해야 할 것은 제도를 이용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게 아니라 부모의 네트워크에 기대야만 퀄리티 높은 스펙을 쌓을 수 있는 제도를 개혁하지 못한 것이고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인간답게 살수 있는 고용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것에 있다. 이런 식의 반성은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볼품없어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해 박탈감을 느끼는 청년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말뿐인데다 실체도 없는 사과, 함부로 하지 마라. 특목고나 과고, 국제고에 다니는 자녀들을 모두 자퇴시키고 학원이든 스펙쌓기든 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말이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옳은 방법도 아닌데 자꾸 사과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송영길 대표는 왜, 꼭, 이 타임에 기자회견을 해야 했나. 그것도 '조국사태'(!)에 대해 사과하겠다고 예고까지 하고 말이다. 엊그제부터 <조국의 시간>이 인터넷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에 깔리기 시작하고 완판매진될 만큼 서초동을 가득 메웠던 촛불시민들이 마치 서초대첩하듯 책불 놓는 심정으로 고맙고 미안했던 날이다. 조국은 조국의 이야기를 하고 시민은 시민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굳이 초치듯 오늘 사과랍시고 꼭 그리 했어야 했나. 조국과 그 가족이 전방위적으로 날아오는 표창에 살이 에이고 피가 튀길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다고 그리 당당한가 묻고 싶다. 집권여당 대표로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기자회견장에서 윤석열의 가족비리도 조국과 똑같은 잣대로 수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에게 쥐어준 174석으로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말로써 정치하고 말로써 시민의 마음을 얻으려 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아무튼 조국의 시간은 나의 아들과 그 친구들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생활의 모든 것이 정치임을 깨닫는 정도는 되었으니 검찰의 현주소, 검찰개혁의 요체가 무엇인지 체계적이고 피부에 와닿게 이해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교과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적 교유를 할수 있는 친구는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앞으로 평생을 함께 살아갈 동료들과 최소한 이정도는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말이다. 무간지옥 속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한자한자 기록을 남기고 객관적으로 소회를 밝혀준 조국 장관께 감사를 전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과 함께 따박따박 묻고 따지며 걷고 또 걷는 일 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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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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