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가 너희 교회보다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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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가 너희 교회보다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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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08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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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신자

1.

부목사 시절 조기 유치원에 다니던 다섯 살 우리 집 아이가 같은 동갑내기 교회 교육부 부목사 아들과 교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나눈 대화다.

A : 우리 아버지 교회는 굉장히 큰 교회야....

B : 어, 우리 아버지 교회도 큰 교횐데....

A : 아냐, 우리 아버지 교회가 더 커...

B : 어어.. 우리 아버지 교회도 진짜 큰데....

A : 우리 아빠 교회는 내가 가 봤는데 7층이야.

B : 우리 아빠 교회는 4층인데...

A : 그것 봐... 우리 아빠 교회가 더 높잖아...

당시 기획 목사실은 7층에, 교육 목사실은 4층에 있었다.

같은 교회 부목사 아들 둘이서 나눈 대화가 오늘의 목사, 장로들에게서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교회가 너희 교회보다 더 크고, 실력이 있지.” 라는 의식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장로, 목사들은 더 크고 실력이 있는 교회로 각개 전투 하듯이 이동한다. 대형 교회에는 자기를 장로로 세워준 교회를 버리고 이동해온 장로들이 줄을 서 있다고 한다.

유치원 애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목사 장로들도 교회 사이즈에 기가 죽고 산다. 큰 것 좋아하는 사람들, 그러다보니 의기가 없다. 그리고 그들은 “큰 교회” 목사들 앞에서 아주 쉽게 머리를 조아린다. 성직 세습을 그렇게 비난하는 소리가 있지만, 요즘 이들은 세상과 상관없이 성직 세습자를 그들의 수장으로 모시고 떠받든다.

2.

요즈음 나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수의 신자를 거느린 기독교에 대하여 거의 절망감을 느낀다. 신앙을 가진 경건한 사람으로서의 고결한 삶의 향기는커녕 온갖 악취를 풍기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오늘의 일부 기독교는 예수를 빙자할 뿐, 신도들이 예수를 따르게 하지 않는다. 목사 장로로 구성된 교회의 리더십은 신도들로 하여금 자기 집단에 함몰되게 만들고 온갖 충성을 다 바치게 만든다. 이들은 자기 집단을 강화하기 위하여 불순한 의도로 “순수”를 주장하며, 상대를 “불순한” 존재로 몰며 공공연한 적으로 여기도록 신도들을 기만한다. 심지어 오늘의 일부 교회는 정의롭지 못한 정치적 편견을 온 세상에 마구 유포하고 있다.

이렇게 기독교의 타락을 이끄는 대형화된 교회의 목사의 정신세계는 심각하게 비정상이다. 이들은 마치 자기 집단이 유독 의롭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하여 불순한 세상이 온통 자기들 집단을 파괴하려 한다는 피해 의식을 은근히 조장한다. 사실 아무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해야 사회심리학적으로 자기 신도들이 부정한 자기 집단을 유독 의로운 집단인 양 여기게 만들고, 더 깊은 충성심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이런 교회의 신도를 만나 보면, 외부 집단을 자기 집단에 유해한 적으로 간주하며 사탄의 조정을 받는 집단이라고 몰아가는 유치한 논리에 흠뻑 젖어 있다. 여기서 외부 집단이란 자기 집단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정치인, 다른 종교인, 자신들과 다른 인권, 혹은 사회 변화와 개혁에 관한 이해를 가진 이들이 모두 포함된다. 자신들의 편협함을 거꾸로 외부의 공격으로 만들어 선전하는 것이다.

어쩌다가 한국 교회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국제적 수준의 인권 선진국을 만들려는 정부, 분단된 나라에서 화해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이,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협력과 화해를 도모 하려는 이들, 반민족적이며 정의를 마구 짓밟아온 권력 카르텔을 해체하려는 개혁자를 모두 적으로 인식하는 집단으로 전락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쉽게 사탄으로 몰아 증오하기를 배운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잘 모르는 낯선 이나 낯선 집단을 아주 쉽게 증오한다. 특히 자기가 배운 구원의 도리가 최고의 진리라고 잘못 배운 자들은 정의와 공동선의 도구까지 진리의 적이라 여기는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다. 이들은 거짓 예언자에게 쉽게 선동을 받아 이 땅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심지어 민주주의의 적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3.

그래도 개중에는 가난한 자의 이웃이 되고, 힘없는 자를 변호하며, 강한 자의 포악에 저항하는 기독교인이 있어 천만다행이다. 내가 보기에는 겸비한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진실한 기독교인은 대형 교회 교인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교회의 신도들이다. 물론 작은 교회 신도라 하여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진리와 정의와 겸손보다 허영과 과시와 탐욕에 사로잡힌 대형 교회 신도에 비하여 그렇다는 것이다.

대형화된 큰 교회에서는 가진 자와 힘 있는 자에게 아부를 떠는, 심각하게 비정상적인 목사들이 강단을 점유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약자 보호법의 정신을 가진 성서를 들고, 성 소수자를 억압 하자는 목사, 국민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택한 정권을 좌파 빨갱이 정권이라 몰아가며 은근히 불만을 드러내고, 조석으로 암암리에 정권 타도를 외치는 목사, 심지어 이웃 종교를 파괴하고 말살하라고 교사하는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이다. 대형 교회에 들어 앉아서 예수가, 예수의 어머니가 편애하던 힘없고 가난한 자들 편에 서는 신앙의 길이 아니라, 온갖 사악함을 드러내는 힘 있는 자들 편에 서서 신도들의 정의감을 마비시키는 교활한 목사가 얼마나 많은가.

종교의 세속화는 세속 사회가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교회의 공신력을 갉아 먹으며, 온갖 그릇된 판단과 정치적 루머를 유통함으로써 신자들을 우민화하여 특정 집단의 정치적 선전원으로 전락시키는 타락한 목사들이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교회가 타락하는 이유는 일찍이 아모스가 통찰하였던바 그대로 오직 한 가지다. 정의로움의 결핍, 그것이다. 정의의 결핍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그것은 불의의 혜택을 받아들이는 영성의 타락에서 온다.

4.

나는 내년 대선까지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종교 집단의 발호를 염려한다. 목사 집단 보다 더 천박하고, 노골적인 장로 집단, 이들은 하나님 나라 선교를 위하여 형성된 교회 조직과 구조를 천박한 정치적 도구로 삼는 전문 "꾼"들로 전락했다. 이들은 일찍이 종교 집단 안에서 자기 유익을 구하며 이전투구 하던 자들이었으나 해방 후 부패한 정치권과 손을 잡고 그간 터득한 노하우를 이용하며 교회의 신학적 전통과 사회윤리적 전통을 파괴하고 있다.

이들이 벌이는 해괴한 짓은 이들의 노골적인 반민주, 반평화, 반개혁, 반인권적 성향에서 드러나고 있다. 우민으로 길들여진 신자들이 우글거리는 교회 안에서 거칠기 짝이 없는 이런 세력과 마주하여 싸울 전사도, 조직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가 이젠 이런 거친 자들의 수중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들은 교회를 장악한 실질적 권력자가 되어 성직을 좌우하고, 교회를 팔고 사며, 부패를 교회의 규범으로 만들고 말았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 시작은 잘못 이끌려진 대다수의 신자들이 집단적으로 개성이 말살되고, 사회 정의를 이해할 능력도, 그것을 실천할 능력도 없도록 양육 받았기 때문이다. 정의를 잃은 복음, 그것은 아모스가 없는 예언서, 하나님 나라 사상을 쏙 빼먹은 허수아비 예수를 목사들이 가르쳤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살려면 아모스를 살려내고, 예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을 되찾는 길밖에 없다. 더 요약하자면 정의 없는 복음이란, 맛 잃은 소금, 거짓 복음이다.

5.

오늘의 교회는 불의한 세상에서 온갖 상처를 입은 이들이 찾아와 쉴 곳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이 내몰리고 쫓겨나는 자리가 되고 있는가. 세상은 사람을 속여도,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을 속이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삶에 지치고 힘들어 하는 이들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 그곳이 예수의 품을 대신할 교회가 아닌가? 그래야 불의한 세력에 의해 고통 받는 이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쉼을 얻고, 불의한 세상을 하나님의 정의로 치유할 수 있는 영성이 품어지는 것이 아닐까?

교회가 진실함과 정의의 기준을 버리고, 천박한 가치를 대변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나대는 정치 도구로 전락하면, 그것이 과연 예수의 교회인가? 거짓 예언자들이 활개치는 곳에서 과연 정의와 진실함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난날에도 거짓 예언자들은 거짓으로 허상을 만들어 대중을 두려움 속에 몰아넣고 조정하곤 했다. 거짓 예언자들이 활개치는 이유는 그들이 사람들이 꼬박 속아 넘어갈 만한 레토릭을 사용하며 거짓을 마치 진실인양 주장하며 선동하는데 능하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그들의 거짓을 판별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72년 전, 그러니까 1949년에 출간된 책 “기만적 예언자들”(Prophets of Deceit)에 이런 허위 증언이 나온다.

“도대체 언제쯤 소박하고. 평범하고, 진지하고, 양떼 같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외국인, 공산주의자, 미치광이, 피난민, 배교자, 사회주의자, 파괴분자, 반역자가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이 그런 자들을 위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건가요?”

무수한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가 허상으로 지어낸 무리, 공산주의자, 배교자, 사회주의자, 반역자, 교회 파괴 분자와 동급인 존재로 인식한다. 낯선 외국인, 피난민, 다른 종교인, 개혁자를 마치 사탄의 하수인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들은 입으로는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며 종교개혁자의 후예임을 자랑하면서 가장 반개혁적인 존재로 살아간다. 이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노래하면서 마음으로는 증오와 혐오를 마구 내뿜는, 전형적으로 표리가 부동한 기독교인, 거짓 예언자의 하수가 된 사이비 기독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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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K Par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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