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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4.19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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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4.19 타령"
  • 딴지 USA
  • 승인 2021.04.20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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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4.19 타령"

늙은 독재자의 질긴 수명처럼 압제와 부패는 언제까지나 이어질 듯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청년 학생들의 성난 함성은 이승만 정권을 역사의 저편으로 쓸어버렸다. 서구에서 아직 68혁명이 일어나기도 전이었으니, 그들의 영향으로 된 학생혁명이 아니었다. 4.19는 세계사적으로 비교해도 참으로 때 이른 쾌거였다. 그 시절에는 제3세계 이곳저곳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신악이 구악을 대신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4·19 학생혁명은 세계를 놀라게 한 기적이었고, 뒤이어 일어난 5.16 군사 쿠데타는 우리가 제3세계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불쾌한 사건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잊고 지내서 그렇지, 청년 지식인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는 것은 이 나라의 오랜 전통이었다. 조선 500년 동안 그들이 연좌농성을 벌이고, 연명 상소를 올려서 조정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다 죄를 입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성균관에서 내침을 당하고,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매를 맞고 귀양 간 선비의 사적은 조선의 역사를 붉게 수놓았다.

4·19는 한 시절의 젊은이들이 절개 있는 옛 선비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그 빛은 쉬 꺼지지 않았다. 1980년대가 다 지나갈 때까지도 형형한 그 기상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대학에서 쫓겨나고 모진 고문 끝에 설사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이 땅의 대학생들은 민주화의 깃발을 내리지 않았다. 공장으로까지 스며든 그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세상이 달라졌다. 우리 역사가 길이 기억하게 될 민주화 운동의 저변에는 동학농민운동 같은 민중적 전통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끈질긴 투쟁 끝에 군사독재를 끝장낸 우리 젊은 지식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팔뚝을 걷어붙이고 분연히 일어나던 유생들의 푸른 옷깃을 본다.

이제는 그것도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다. 한때의 ‘386’은 퇴물로 전락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그들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20세기 말, 미국발 신자유주의 물결이 지구를 삼켜버린 다음부터는 대학가도 실망스러운 장소가 되어버렸다.

글로벌 인재를 기른다는 미명 아래 시퍼렇던 대학은 취업준비학원으로 전락했다. 교수란 존재는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군상으로 변하였고, 그들에게 돈을 주고 지식을 매입하는 청년 지식인도 더는 옛날의 선비가 아니다. 21세기 한국에서 선비란 조롱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세상 풍조가 바뀌자 정말로 진풍경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웃 나라에서 핵발전소에서 재앙이 일어나도 미래의 주인인 청년들은 사실상 무관심하다. 정든 친구가 극심한 경쟁주의에 밀려 목숨을 끊어도 피가 끓어 마땅한 젊은이가 미동도 안 한다. 이제는 심지어 청년 남성이 청년 여성을 우대하는 세상 분위기를 탓하며 “남성 역차별”을 호소하는 지경이 되었다. 각자도생의 비참한 현실이 이미 그들을 압도하였기 때문이다. 이상을 상실한 취업준비생만 양산하는 우리 대학, 우리 사회.

우리 역사의 한 시절을 곱게 물들이던 젊은 그 꽃잎이 모진 세월 속에 자꾸 시들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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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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