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시대의식
시대의 비극을 구체적으로, 정직하게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 레토릭이 아무리 뛰어나고 성서주석과 신학적 통찰이 아무리 훌륭해도 설교가 설교다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스친다.
어제 이 공간에 범람하는 세월호 추모글들 대강 넘기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세월호 대담 프로 얼른 꺼버리고, 전주국제영화제 예매표 사러 독립영화관에 갔다가 로비 화면에서 나오던 세월호 추모 영화 <당신의 사월> 영상에서 고개를 돌리는 나를 의식하면서 내게도 이 7년 전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가 깊이 박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울렁이는 감정을 가다듬고 가족 카톡방에 먼저 추모의 제언을 했고(당시 다수 사망한 고등학생들은 우리 큰애와 동년배다), 설교 원고를 쓰면서 이 시대의 비극을 눈물로 흐려진 뿌연 시야 밖으로 자판 위 내 손가락이 다루고야 말았다.
어제 jtbc 노래 프로에 나온 가수 양희은은 부모의 잘못된 빚보증으로 길거리에 온 가족이 나앉아 19살에 가족부양을 떠맡게 됐을 때 "아침이슬"이란 노랫말 속에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는 당시 심정을 담았다고 했다. 또 31세에 난소암으로 3개월 시한부생 판정을 받고도 4개월째 죽지 않고 생존하게 되자 화장을 찐하게 한 얼굴로 아무런 슬픈 내색을 하지 않고 무대 위에 섰다고 회상했다.
나는 내일 가장 서럽고 고통스런 시대의 비극을 다루면서 내 심장에 찐한 화장을 하고 눈물의 흔적마저 지운 얼굴로 담담히 설교하는 프로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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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k Cha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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