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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시사] 임은정 검찰부장의 감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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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시사] 임은정 검찰부장의 감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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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2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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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징계, 징계의 정석 임 선생”이라는 우스갯소리로 소개할 만큼 이제는 자타가 인정하는 징계 전문가지만, 대개의 사람들처럼 저 역시 임관 후 한참 동안 관심 없던 분야였습니다. 2010년 4월, MBC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방영 후 동료들의 곡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면서 비로소 그 존재를 깨달았지요. ‘검사와 스폰서’는 2003년, 2004년 스폰서 접대를 받은 부산지검 검사들 이야기를 주로 다뤘는데, 2005년 부산지검 발령을 받은 저는 간발의 차이로 봉변을 피한 듯하여, 아찔하기까지 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때, 동료들의 징계와 함께 감찰제도가 뚜렷하게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12월, 안태근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찾아달라는 감찰담당관실 선배의 부탁을 받고 피해자를 찾아 설득하다가 최교일 검찰국장에게 불려가 꾸중을 들었습니다. “검찰국장님이 저러시는데, 어쩌겠냐”고 한숨 쉬던 선배의 푸념이 아직 생생하네요. 안태근에 대한 감찰이 결국 중단되는 것을 보며, 유권무죄의 법칙은 감찰에도 적용되는 강력한 불문율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지요.

법무연수원에서 집합교육이 있으면, 전국 검사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어느 청이 더 힘든가 자웅을 겨루며 한편 놀라고 한편 위로를 받곤 합니다. 성희롱이나 갑질 등 간부들의 문제 행동은 피해자나 목격자의 푸념을 통해 검사들에게 널리 공유되지요. 2009년부터 4년간 법무부와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며 살던 제집은 교육차 지방에서 상경한 여검사들의 숙소여서, 그런 소문들을 바로바로 접했습니다. 모 지청장이 검사장 출신 전관 변호사의 청탁을 받고 뺑소니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바꾸어 불기소했다든가, 수사검사가 항의하자 급기야 검사를 교체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익명제보서를 작성하여 대검 감찰1과에 인편으로 전달했습니다. 처리 결과를 묻는 제게 인편이 되어준 선배는 민망해하며 “대검에서 제대로 감찰할 생각이 없더라”고 답했습니다. 역시 유권무죄인가 싶어 씁쓸했지요. 안태근 정책기획단장이 여전히 법무부의 장단기 비전과 정책을 기획하고 있는 법무부, 전관예우의 노골적인 사건 봐주기를 감싸주는 검찰의 수준은 사법정의가 실종된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법무검찰이 현실에서의 법무검찰과 전혀 다른, 망상에 불과하구나’를 매일매일 깨달아 가며, 제 심장이 부서져 나가는 듯 많이 아팠습니다.

현재 검찰은 익명 또는 실명으로 검찰공무원의 범죄나 비위를 제보할 수 있는 감찰제보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종래 제가 익명제보를 했기에 대검에서 그리 가볍게 처리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저는 2017년 11월부터 감찰제보시스템을 실명으로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2년간 17회에 걸쳐 검사들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요청하고 있는데, 대검 감찰본부에는 제가 속칭 ‘진상 민원인’이겠다 싶어 제보메일을 작성하며 쓰게 웃곤 합니다.

2015년 남부지검 부장검사와 귀족검사의 성폭력 범죄를 알고도 덮은 감찰 관련자들, 2016년 부산지검 귀족검사의 공문서위조 등 범죄를 알고도 덮은 감찰 관련자들, 검사 블랙리스트 작성자들을 비롯하여, 안태근의 재판에서 위증한 검사들에 대한 감찰과 수사 요청까지 줄기차게 두드리고 있습니다만, 문이 아니라 철벽인 듯 꿈쩍도 하지 않네요. 최근 모 검사의 증언, 재판부에서 그 증언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적힌 안태근의 2심 판결문을 첨부하여 위증 검사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요청했는데, 대법원 판결까지 지켜본 후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대검 회신을 받고 실소가 터졌지요. 검찰 실무에서는 증언 후 바로 증인을 소환 수사하거나, 늦어도 증언했던 해당 심급 판결 선고 직후 수사에 착수하여 신속하게 위증 기소하고 있는데, 정작 검사의 위증은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려보겠다는 이중잣대가 어이없습니다. 적지 않은 검찰 간부들이 안태근에 대한 진상조사단의 기소와 법원 유죄판결을 비난하고 있는데, 회신메일 행간에서 무죄판결에 대한 기대 내지 갈망이 엿보여 황당하기조차 하네요. 문무일 총장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윤석열 총장의 대검을 보며 한숨을 쉽니다.

굽은 나무도 먹줄을 따라 자르면, 바르게 됩니다. 검찰은 사회를 바르게 하는 먹줄이고, 감찰은 검찰을 바르게 하는 먹줄입니다. 신속하고 엄정하게 비위를 저지른 자의 지위, 책임과 행위에 상응하는 감찰을 하지 않는다면, 검찰 기강이 바로 설 수 있겠으며, 검찰이 바르지 않으면, 사법정의가 바로 서겠습니까. 조직이 아닌 정의 수호가 검찰의 의무이고, 조직 수호가 아니라 공직기강 확립이 감찰의 의무이지요. 저는, 우리는 대한민국 검찰에, 검찰에 대한 감찰 의무 이행을 요구합니다.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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