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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리뷰
노숙자 블루스 - 뭣 같은 세상을 향해 날리는 한발
 회원_464950
 2020-09-16 01:31:01  |   조회: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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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 딱히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단어다. 17세기 미국에서 노동하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아프리카 전통 음악에 유럽 음악을 접목시켜서 탄생하였다고도 알려져 있고, 또 블루라는 단어 자체가 우울함, 슬픔을 담고 있는 단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 특유의 끈적하고 한이 서려있는 듯한 깊이는 우리의 정서와도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이 블루스라는 단어와, 사회의 최하 계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노숙자가 만났을 때 묘하게 어우러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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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에서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보이지 않는 화면 우측 어딘가에 총을 쏜다. 그 남자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화면 너머에서 한줄기 피가 흘러온다. 강렬한 시작이다. 휘갈겨 쓴듯한 웹툰 제목의 로고도 인상적이다. 작가는 화면의 구도와 연출로 느낌을 표현한다. 범람하는 대사로 인해 머리가 아플 때도 있는 필자로서는 이렇게 조용조용 꽉 짜인 컷들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편이 대사 몇 마디보다도 훨씬 더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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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으로 보이는 한 무리. 일본인들에게서 친목의 의미로 받았다는 권총 한 자루를 조직의 한 사람이 잃어버렸다는 것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직의 우두머리는 이미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제는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시체에 계속 칼을 쑤셔 넣는다.

 

할 말이 있다는 부하에게 빨리 말해 나 배고파라고 하는 장면은 그가 인간의 죽음에 무뎌질 정도로 이런 일을 많이 해보았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면이다. 사람을 죽여놓고도 식욕이 당기는 그… 지속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봐서일까 이 웹툰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총을 잃어버렸다는 부하는 시체에 꽂혀있는 칼자루를 쥐고 그쪽으로 걸어오는 두목을 보며 식은땀을 뻘뻘 흘린다. 그는 무슨 일 나면 알아서 책임지라는 말과 함께 칼을 그에게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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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진 이 총은 사실 노숙자의 손에 들어갔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소주를 마시던 중. 여자를 성욕의 도구로만 취급하는 대화를 하는 사내 세명에게 넌지시 한마디 한다. 화가 난 세 명의 사내들은 노숙자에게 인신공격 발언을 하고, 앉아서 술 마시던 이 노숙자는 그들 중 하나에게 총을 쏜다. 총에 맞은 친구 하나를 보며 벌벌 떨고 있는 그들 뒤로 노숙자가 씩 웃으며 사라진다. 이 노숙자는 부잣집 도련님의 차에 치일뻔하고, 수표 몇 장 던져주며 약 값이나 하라는 잘 사는 새끼들이 건방져 크고 무거운 주먹 한방을 날리며 기절까지 시킨다. 노숙자의 이런 계속되는 처형은 사회의 최하 계층이었던 그가 사회를 향한 불만을 표출하고 싶었던 노숙자의 욕구를 잘 보여주면서도, 어쩐지 잘 사는 것들이 꼴 보기 싫어 살인을 저질렀다던 지존파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노숙자는 포르쉐 타고 다니는 한경그룹의 외동아들인 이 남자를 납치하기로 결심한다. ‘이 총 하나가 널 구원해 줄 거라고 생각하냐? 마지막엔 웃을 수 있을 것 같냐?’라고 하는 대목은 마치 이 잘나신 외동아들이 독자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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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당한 남자는 이 말과 함께 네가 날 이렇게 끌고 다니는 것도 결국에는 니 잘난 열등감 때문에 그렇다는 말을 한다. 너도 결국에는 나와 같은 삶을 동경하는 거라고. 남자의 이 말 때문에 노숙자는 자신이 이 남자를 죽여야 되는지 돈을 받아내야 되는지 갈등에 빠진 것 같다. 비닐하우스로 남자를 끌고 가 ‘내가 널 왜 죽일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말해봐'라고 말하는 대목 역시 그의 결심을 굳히기 위해 필요했던 과정이었던 것 같다. 총이라는 것도 노숙자에게 쥐어질 일이 없는 것이었다. 만약 돈이 처음부터 노숙자에게 주어졌었어도 노숙자는 같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이 손에 쥐어졌을 때 겪게 되는 고민.

하지만 잃을게 없기에 두려울 것도 없다고 말하는 그. 100부터 시작한 네가 10, 20부터 시작한 우리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냐며 분노를 표출한다. 후에 이 외동아들이 자신이 만나는 여자에게 넌 0부터 시작한 적 있느냐고 물어보며 ‘아주 세뇌를 시켰구먼..’ 하고 혼잣말을 하는 대목은 인간은 잘났든 못났든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신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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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그 안에서 제일 괄시 받는 존재에게 총 자루를 쥐여주게 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을 어느 정도는 해소시켜 준 작품이다. 극의 흐름이 긴장감 있는 것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 아닌, 해프닝으로 벌어졌던 일들 그리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게 된 사람들과 가진 자와 그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그런지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또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고, 일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과 그 일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들.

 

그 일로 돈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을 한 틀 안에 다 담아 둔 것이 어째 순댓국같이 보이기도 한다. 어차피 다 같은 사람이지만 서로 다른 부위를 한데 모아놓은 순댓국. 또 이 웹툰은 그만큼 착착 감긴다. 스토리와 짜임새 있는 구성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운 작품이다. 이끼 같은 웹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웹툰에 매력을 느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2020-09-16 01: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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