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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넌 왜 목회 안해? "하고 있다, 목회."
 회원_379774
 2023-02-06 12:37:50  |   조회: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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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다.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 진학했고, 지금도 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니 충분히 들을 법한 질문. 한 때, 이름있는 목사가 되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그런데, 대학교 2학년 때, 학교 이사장이자 모 대형교회 목사라는 사람이 학생들을 불러모아 놓고, 한도가 없는 신용카드가 자신의 월급이라며, "목회를 하려면 이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설교를 듣게 됐고,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제대로된 교육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해야만 교회에 미래가 있고 비전이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 목회보다는 공부를 더 해 보고, 훗날 기회가 닿으면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가 유학을 꿈꾸게 했고, 실현이 되기도 했다.

...

대학교 3학년, 당시 담당 교수님의 추천으로 알리스터 맥그라스라는 영국의 신학자를 알게된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라 칭하는 칼 바르트에 이어 21세기 복음주의의 선두주자가 될 인물이라는 평가가 있던 당시, 난 그의 책에 매료되어 그와 함께 공부를 해 봐야겠다 결심한다.

중간 과정을 설명하려면 너무나도 긴 얘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떻게 저떻게 연이 닿아 계획대로(?) 꿈꾸던 분의 수업도 듣고, 석사논문 지도도 받게 된다. 재밌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렇게 박사과정까지 잘 이어간다면 한국으로 돌아가 원하는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탄탄대로만 같아 보였던 앞길에 큰 산을 마주한다. 지금은 파운드 환율이 1500원 정도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2200원. 아무리 돈을 이리저리 끌어 모아봐도 당최 학비 해결이 어려운 상황. 이리저리 도움을 요청해 보려고 해 봤다. 하지만, 봉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내 공부하는건데 주변에, 교회에 지원을 요청한다는게 내키지 않았다. 취직을 해야만 했다.

...

임신중독. 아내의 혈압은 200이 넘어가고, 뱃속 아이는 800g에서 성장을 멈췄다. 아주아주 다행히, 좋은 병원, 의사, 간호조무사 분들을 만나 산모와 아이 모두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생각만 하면 앞이 캄캄했던 순간. 아내와 아이가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해야 수술대에 오를 수 있다는 안내를 들을 때.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몸에 소오름이 치솟아 살을 뚫고 올라온다.

(영국의 NHS가 형편없다 평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만, 우리 가족의 경우엔 생명을 살려준 곳이라 그렇게 말 하기가 참 어렵다. 암튼!)

인큐베이터와 응급 병동을 오가며 지냈던 1달여 시간. 1.7kg까지 성장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온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1시간마다 깨는 아이. 100일의 기적은 없었다. 돌이 되기 전까지 3-4시간 이상을 연달아 자 본 기억이 없으니, 안 키워본 사람은 절대 모른다.

플러스, 출산한 지 4개월만에 시작된 아내의 박사생활.

전액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지원을 해 준다고 하는데, 안 한다고 하기엔, ... 나중에 너무나도 후회가 클 것 같아 시작된 공부. 퇴근하면 부리나케 집으로 튀어와 밀린 집안일과 육아를 시작했고, 그제서야 한 숨 돌리며 책을 들췄던 아내. 바야흐로 주경야독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6년. 아내는 박사를 끝내 직장을 잡았고, 아이도 이제 8살이 되어 나름 지 할 일 스스로 할 줄 알게 됐다. 때론 너무나도 답답하고 막막해 어두컴컴한 방 구석에 앉아 눈물을 훔치는 일이 있었지만, 지나고보니 추억이고 축복된 시간이었다. 가정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

...

처음 영국유학을 계획했던 때 처럼, 세계적인 석학의 지도를 받고 금의환향을 꿈꿨던 때 처럼, 거청하게 세워뒀던 계획들은 이미 저 산 너머로 던져버린지 오래다. 인간사, 살면 얼마나 살고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어떤 사명이 주어질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 한 가지가 있다면 지금, 현재,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목회지는 있다. 그리고 그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안 되는 거 되게 하려 무진장 노력중이다.

누군가 묻는다. 넌 왜 아직까지 전도사냐고. 왜 목회를 하지 않느냐고. 하는 중이다. 그것도 아주 재밌게. 대상은 두 명이다. 아내와 아들.

하고 있다.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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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6 12: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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