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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게 삼켜지는 순간까지도 너를 동정하고야 만다, <고래별>
 회원_756734
 2022-07-05 13:23:36  |   조회: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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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바다에 빠진 남자를 구해주고, 이어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 인어공주는 자신의 소중한 목소리까지 마녀에게 바치고 남자와 가까워지려고 하지만 결국 바다와 뭍의 벽을 허물지 못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슬픈 이야기. 여기 인어공주만큼이나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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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별>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조선입니다. 우리의 한반도가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던 그 시기입니다. 조국을 사랑하는 것이 망하는 길이며, 조국을 배반하는 사람들만이 배부르게 살 수 있는 아이러니함. 수아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친일파 집안의 아가씨 시중을 드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아주 적은 돈을 주고 팔았다는 사연뿐, 그 외에는 어떠한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수아가 기댈 곳은 자신이 모시는 아가씨가 전부입니다. 수아는 물고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바다를 좋아합니다. 그만큼 수영을 잘 하기도 하죠. 여느 때와 같이 수영을 나온 어느날. 수아는 죽은 고래를 보게 됩니다. 아가씨가 종일 시내에 나가 시간이 많았던 수아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아가씨에게 이러한 일을 고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것까지도 말하던 수아였지만 어쩐지 입이 떨어지지 않은 탓이었죠. 수아는 그 일을 ‘서러운 일’로 묘사해 기억 속에 담았습니다. 거대한 고래가 죽어있는 일이 어떠한 연유로 수아를 서럽게 만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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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는 인어공주 서사처럼 바다에서 사람을 구하게 됩니다. 수아가 구한 사람은 친일파 집안에서 홀로 뛰쳐나와 독립운동을 하는 의현입니다. 아가씨만 모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는 탓일까요. 누구보다 용감하게, 그 어떤 것도 재지 않고 의현을 구해줍니다. 다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덕분에 독립운동을 시작도 못 하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질뻔한 의현은 목숨을 구하고 다른 단원들과 만나기로 한 ‘고래별’이라는 이름의 찻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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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 보면 의현에게 너무나도 잘된 일일 터이지만 수아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무슨 마음인지 의현이 바다를 떠나 자신의 길을 다시 걷게 되니 가슴 한쪽이 시립니다. 결국 기억을 더듬어 의현이 남긴 단서를 따라갑니다. 바로 자신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단원들에게 전달해달라던 쪽지를 들고, 알려준 장소에 가는 것. 하지만 독립운동으로 날이 서 있는 단원들이 수아의 순수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새로운 사람들 적이 아닐 수가 없으니까요. 조선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지만, 그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 같은 조선인을 의심하고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수아를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마냥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기도, 나쁜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어렵습니다. 정말 이도 저도 할 수 없던 그때의 상황이 가슴팍 깊숙이 박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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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만큼 아가씨도 혼란스럽습니다. 친일을 선택한 집안 덕분에 풍족하게 자라왔지만, 그중 진정 자신의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수아의 아가씨. 그녀는 여성이기에, 조선인이기에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 자신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허락을 받지 않고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결정권이기 때문이죠. 결국 수아는 또다시 혼자가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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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가 남긴 패물을 가지고 우여곡절 끝에 의현과 다시 만나지만 쉽지 않습니다. 의현이 속한 독립단원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정보를 엿들은 새로운 얼굴이란 없애버려야 할 존재니까요. 다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의현의 생각은 다릅니다. 의현에게 있어 수아는 죽음을 몰아치워 준 은인이자, 자신이 위험한 길을 선택했다는 것을 조금은 후회하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겪지 않아도 되는 비참한 현실 앞에서 조국과 개인의 행복 사이에서 계속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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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을 하는 의현 역시 수아의 아가씨처럼 친일 집 안에서 자란 자제였습니다. 그는 일본어보다 조선말을 먼저 배우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포기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하러 가게 됩니다. ‘의현아… 작년에 아버지 따라 동경에 갔을 때 기억나니? 그때 동경에서 올려다본 달이 조선에서 본 것과 꼭 같았다. 세상이 어떻게 되건, 나라가 어떻게 되건, 어미는 그런 어려운 것은 모른다. 어디서 올려다보건 달이 마냥 아름답다면 그걸로 그만이야. 그게 조선의 달이면 어떻고 일본의 달이면 어떻단 말이냐.’ 모든 것은 울며 애원하는 어머니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어디에서 보든 똑같다는 그 달 때문에 의현은 독립운동을 결정 짓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같은 달을 봅니다. 일본인이건, 조선인이건 다르게 주어지는 것은 하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성립되지 않는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조선인들을 차별하고 불구덩이로 몰아넣었습니다. 의현은 그 앞에서 어머니까지 뿌리치고 독립운동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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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감정은 사치다. 조국을 빼앗긴 이들에게는 서로에게 느끼는 호감마저 무섭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누구를 믿어야 할 지도 몰라 같은 조선인끼리도 의심하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좋아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아와 의현 사이에 피어오르는 감정은, 이 사랑이라 부르는 꽃은 척박한 땅에서도 무럭무럭 아름답게 피어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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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름답게 만개한 꽃들을 무시하고 떠나려는, 자신의 바다를 택하려는 수아를 막아세운 의현. 둘이 감정을 확실하게 받아들이면 들일수록 주변은 더욱 시끄러워집니다. 과연 이들은 조국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조국을 되찾아 스스로의, 각자의 소중한 삶까지 지킬 수 있을까요. 이들에게 있어 파도 소리란 낭만이 아니라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삼켰던 흐느낌의 산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슴 한 켠이 아리게 하는 이야기, <고래별>을 주저 말고 네이버 웹툰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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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5 13: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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