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정치/시사
어떤 배는 물살을 타지만 어떤 배는 물살에 뒤집힙니다
 회원_952790
 2022-06-12 13:34:44  |   조회: 153
첨부파일 : -

우리는 왜 실패하였는가 : III. 팬덤의 강을 건너

- 어떤 배는 물살을 타지만 어떤 배는 물살에 뒤집힙니다 -

1.

개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우리는 모두 각자 어떤 개혁이 우리 사회를 가장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다만 저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인 개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진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어받았던 대대적 IT 산업 피봇입니다.

컴퓨터와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개혁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 라고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럼 관련성을 한번 따져 볼까요? 컴퓨터와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은 인터넷 공론장을 활성화시킵니다. 여기에서 노사모가 탄생하고, 우리는 노무현 시대, 이어 그 뒤의 문재인 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발전은 게임산업과 플랫폼 산업,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뿌리를 박고 내립니다. 카카오톡이 생겼고, 라인이 생겼습니다. 우리나라 인터넷이 미국이나 유럽 수준이었다면 블랙핑크의 제니나 BTS의 정국이 온 세계에 틱톡과 릴스로 댄스 챌린지를 퍼트리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세계가 한국을 알게 되고, 20년 후 우리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2.

어떻습니까. 이 정도로 정치, 경제, 문화 다방면에 영향력을 끼친 개혁이 있었을까요? 저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거대한 개혁에 시동을 걸고 다음 타자에게 배턴을 넘겨주는 데까지 성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떻게 이런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그에게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응집된 팬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민주당 지역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분들 중 지긋한 어른들은 이 때부터 김대중의 유세장에 깃발과 북과 꽹과리를 들고 열렬하게 팬덤을 구성했던 분들입니다. 이런 팬덤이 없었다면, 대통령 김대중도 없었을 것이고 IT 혁신도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 뒤인 지금 우리는 팬덤 정치와의 이별이라는 것이 거대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왜 이제 우리는 팬덤 정치와 이별해야 할까요? 팬덤은 예전부터도 있었고 앞으로도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연 문제일까요.

3.

다시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돌아가 봅니다. 김대중의 팬덤은 그 크기와 응집도만큼 많은 정치적 요구사항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아볼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명백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팬덤을 이끌고 그 에너지를 적재적소에 딜리버리 하는 분이었지, 팬덤에 휩쓸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분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시만 들어 보겠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에 흔쾌히 동의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그의 팬덤 중 핵심이었던 호남에서 과연 이 사면에 김대중만큼 흔쾌하게 동의하였을까요? 물론 당시는 지금보다 사회가 더 권위주의적이었으므로 "대통령 하시는 일이라면 우리가 들어야지." 라는 분위기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전/노의 사면은 분명히 팬덤의 핵심 여론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김대중은 IMF로 엉망이 된 나라를 수습해야 하는 처지에 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국민의 정부는 엄청난 충돌을 빚고 다대한 노동쟁의가 발생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가장 유명한 슬로건 중 하나는 '평민은 평민당, 대중은 김대중' 이었는데, 이는 결국 도시노동자 계층이 당시 주류 지지층 중 하나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는 수도권에서 계속 유의미한 우세를 점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IMF를 탈출하기 위해 도시노동자들의 삶에 고통을 강요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실업자가 100만 명이 넘게 발생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팬덤의 생각과 일치했었을까요? 아니었을 것입니다. 87년 대선 때 김대중은 '서민과 노동자의 대통령' 을 자임했지만, 김대중 정부 때 노동쟁의로 구속된 노동자들은 900명에 육박합니다.

4.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김대중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일베 같은 곳에서는 생각이 다소 다를지 모르지만, 많은 우리 국민들은 김대중에 대해 IMF 위기를 잘 탈출해 냈고, IT 혁신으로 나라에 새로운 기회를 연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존경하는 대통령을 손에 꼽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제치기도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렇게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그가 팬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으로써의 직위에서 김대중만의 탁월한 지성을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그 상황에서 그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즉 팬덤에 휩쓸리지 않고 특유의 정치적 지도력으로 난국을 돌파한 사람이 김대중인 것입니다.

그리고 김대중의 정치는 결국 '개혁' 이라는 것이 제도나 법률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갖고 민생을 윤택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훌륭한 개혁이라는 것을 보여 준 아주 좋은 예시입니다. 물론 지금의 우리 당은 이러한 케이스를 모두 까먹고 있는 듯 하지만 말입니다.

5.

이제 노무현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노무현도 노사모라는, 아주 강력한 팬덤을 갖고 대통령직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기억하겠지만, 그 만큼 팬덤에게 버림받은 대통령도 없습니다.

다들 기억할 것입니다.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세종시 건설, 전자정부의 구축, 비례대표제의 안착. 모두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영향을 아주 크게 끼치고 있으며 노무현 정권 이래 큰 틀에서 거의 바뀌지 않은 기조들입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이러한 정책들로 인해 지지율을 잃고 정권을 상실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노무현을 결국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게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위에 나열한 노무현의 개혁은 단 한 가지도 빠지지 않고 모두 2020년대에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라크 파병이 미 제국주의에 복종한다고 하였지만, 현재 대한민국 해군은 아덴만에서 다른 나라들과 연합함대를 구성하여 상선들의 항로를 보호합니다. 한미 FTA로 무역 주권을 빼앗긴다고 했지만, 한국은 미국에게 이제 무역 흑자만 거두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제 대다수 정부부처가 세종시에 있고, 비례대표제도 나름 작동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렇게 기억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가 팬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으로써의 직위에서 노무현만의 용기를 갖고 국가의 미래를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즉 팬덤이 자신을 버리더라도 국민을 지키기 위한 정치를 했던 사람이 노무현이었던 것입니다.

6.

자, 우리 민주당의 가장 큰 기둥이자 모범인 두 전직 대통령의 이야기를 굳이 해보았습니다. 이제 다시 같은 질문을 해 봅시다. 팬덤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정치인이 문제일까요?

만약 시작을 하실 때 "암, 팬덤정치 따윈 이제 사라져야지!" 라고 생각하셨던 분들이 계신다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례를 읽으시면서 생각이 조금이나마 바뀌셨기를 기억합니다. 팬덤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팬덤이 없는 정치인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팬덤정치와 결별하자던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마저, 자리에서 내려올 때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였습니다. 이것은 팬덤이 아닐까요?

확실한 것은 하나입니다. 팬덤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러나 팬덤이 문제를 일으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조정하고 건전한 아젠다에 에너지를 쏟도록 만드는 사람은 정치인입니다. 정치인이 팬덤을 방치하고 팬덤을 두려워하는 순간, 작은 물살에도 뒤집히는 배가 됩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배가 되어 물살을 타고 나라를 바꾼 것입니다.

7.

민주당의 의원님들, 그리고 스피커를 자임하시는 분들, 한번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지금과 같은 우리 당의 토양에서 김대중, 노무현 같은 정치인이 나올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치적 의제를 제시하고 팬덤과 견해가 다르다면 설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인의 본업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5년, 우리는 어떻게 해왔습니까. 정권 전반기에는 우리는 그래도 제법 잘 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 이후부터 우리는 다같이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절대악을 상정하고 이들과 싸우는 것에만 모든 힘을 쏟지 않았습니까. 그 과정에서 그것이 '개혁' 이 되는 동안, 정말로 개혁이 필요한 지대에 있던 사람들의 눈물, 닦아 준 적 없지 않습니까.

정치인이 팬덤과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설득하는 것을 아예 손에서 놓아 버리면, 결국 신음하는 것은 애꿎은 유권자들 뿐입니다. 정치인이 팬덤에 휩쓸려 그대로 따라가면 일부 고관여층의 기분은 좋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뒤에서 조금씩 당의 기반은 상실되어 가는 것입니다.

8.

그럼 이제 다른 생각을 해 봅니다. 팬덤, 강성 지지층을 잘 이끌고 조화와 타협을 구하는 정치인이 좋은 정치인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정치인을 어떻게 육성하고 키워낼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당연히 정당 안에 있습니다. 주말을 쉰 뒤, 이 이야기를 월요일부터 ‘정당' 을 주제로 다시 한 번 풀어 보고자 합니다.

 

 

https://www.facebook.com/hyunsung.j.kim.5/posts/pfbid08PwScYYZ3QWLGU1eaoDVnJBwqpJZYS2cJthHSsN7van28JAAYj1zb2WCnMGqE8bHl

2022-06-12 13:34:44
47.34.184.39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10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 정치/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