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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학과 진학한 학생들만 피해자
 회원_740857
 2022-06-12 13:34:04  |   조회: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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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등 전형적인 도체의 전기전도현상을 설명하는 기초적인 이론을 페르미 레벨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전자는 스핀 1/2 입자여서 이른바 페르미-디랙 통계를 따르는데, 이 경우 같은 양자상태에 하나 이상의 전자(전차의 스핀까지 고려해서 하는 말입니다)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물체 내 전자는 에너지 바닥 상태부터 차곡차곡 쌓여 올려집니다. 전자들이 최저 에너지 상태에 놓였다고 가정하면, 전자들의 파티션 함수(의 합)는 정확한 스텝 합수 형태를 갖습니다.

그렇지만 스텝의 꼭대기 부근에 있는 전자들은 이런 저런 이유(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온도입니다)로 들뜨게 됩니다. 이렇게 들뜬 전자들의 에너지 준위는 통계역학에 따른 분포함수를 따르게 되는데, 들뜬 에너지의 전자들 중 그 물체의 문턱에너지를 넘어서는 것들은 물체 내에서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유 전자들이 많은 물체를 도체, 자유 전자들이 거의 없는 물체를 부도체, 그 중간쯤 되는 물체를 반도체라고 부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상위 페르미 준위와 문턱에너지 사이의 에너지 갭을 어떻게 조정하는가가 반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우리가 아는 실리콘 등 종래의 반도체들은 결정 구조, 불순물의 비율 등에 의해 에너지갭이 결정됩니다. 이 중 잘 알려진 방법이 불순물을 도핑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연구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 갭을 조절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이쪽 전공은 아닙니다만, 요즘 주목받는 방법이 고체의 위상 구조를 조절해 에너지 갭을 바꾸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탄소 나노튜브들을 꼬아서 에너지 갭을 조절한다는 말이나, 결정구조의 가장자리의 형태와 전기전도도의 관련성 이야기 등이 그래서 나온 겁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뭔가 심오하고 오묘한데 어렵다는 생각이 들으실 겁니다. 매우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문과 출신이 아니라 이과 출신들도 대부분 잘 모르는 내용입니다. 지금 제가 말한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물리학과 학부 졸업생 정도의 통계물리학 이론과 그에 필요한 수학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반도체 이야기를 하니 하루만에 과학기술대학들에서 “반도체” 학과들 정원을 확 늘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학과 정원을 늘린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검색엔진에서 페르미 준위, 반도체 분포 함수 등으로 검색을 해보시면, 이른바 반도체 관련 학과에 진학한 학생들이 지금 제가 말한 내용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는 게시물들이 쏟아집니다. 반도체 관련 학과에서 이런 가장 기본적인 내용들도 배우지 못한다는 말인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건 당연합니다. 척어도 학부 수준의 양자역학을 완전히 이해하고, 통계학, 다변수실해석학, 다변수편미분방정식 등을 학부 전공 수준은 알아야 겨우 따라갈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런 기초 없이 이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죠. 결국 “그렇다니까 외워라” 이상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육성된 반도체 관련 전공자들이 반도체 기술의 “초격차”를 여끌 수 있을까요?

얼마 전 들은 이야기인데, 요즘은 공대생들이 공대수학마저 체대로 배우는 경우가 드물다고 합니다. 어느 지거국 전자공학 대학원에서, 그 학교 전자공학과 출신 학생이 복소수를 제대로 모르는 경우를 봤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빛의 phase를 따져야 하는 연구였는데, 아무리해도 교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학생에게 물어봤더니 복소수도 정확히 모르더라는 겁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아니, 공업수학 원래 3학기 듣는 게 표준 커리큘럼 아닌가요?”라고 물었는데, 요즘은 공업수학을 제대로 듣는 경우가 드물고, 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드물다더군요. 많은 학교에서 말입니다.

공학을 하려면 수학과 기초 과학이 필수적입니다. 구체적인 공학적 응용은 기초가 잡힌 후에 해도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수학과 물리학이 안 되면 제대로 된 공학도 불가능합니다.

이미 대학교 교육이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반도체 학과” 정원를 늘린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전문가를 무슨 벽돌 찍듯이 그냥 많이 찍어내면 된다고 생각하나본데, 그게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늘린 반도체 학과 진학한 학생들만 피해자가 될 것 같습니다.

 

 

https://www.facebook.com/pilsung.kim.01/posts/pfbid035fukkqeLpvcLh4Yj5eSKhExHqdTu4hHHm1nHX8iaY6vtUvdyfGwGbXo8i8NvgEUkl

2022-06-12 13: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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