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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인디언 예수
 회원_149182
 2021-12-27 11:32:23  |   조회: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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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를 망치기 위한 마지막 수단 >

난 믿음이 좋은 사람을 망치는 몇 가지 방법에 대해 알고 있다. 그래서 믿음이 너무 좋은 사람을 망치는 일을 한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기보다 교회 안에 있는 믿음 좋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내겐 더 큰 사명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망쳤다. 30년 동안 아내를 꾸준히 망쳐버렸다. 아내는 이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이로써 나는 목사로서의 최소한의 소임을 아내를 통해 완성했다.

믿음이 좋다는 것과 착하다는 것이 한국 개신교 전통에서는 같은 맥락에서 인식돼왔다. 하지만 그것은 신데렐라콤플렉스 같은 것이다. 착한 사람은 예쁘다는 암묵적 교시가 그 안에 작동하는 것처럼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는 순종적으로 지배받을 만한, 유순한사람이라는 뜻이 함의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 좋은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 세계와 사물을 긍정적으로만 보려 한다. 긍정의 마법에 걸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자신은 행복하지만 그가 속한 집단이나 사회는 구조적인 악에 쉽게 빠지게 된다. 그래서 믿음 좋은 사람이 많은, 보수적인 대형교회에서 목회자 비리가 많이 발생한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본질과 전체를 보는, 통전적인 눈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아내는 착한 사람이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다. 매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 비해 매우 부정적인 사람이고 비판적이고 늘 삐딱한 시선을 가진, 불온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그런 신앙의 태도를 탓하지 않았고 아내 역시 나의 이런 성향에 대해 탓하지 않았다.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는 걸 크게 어려워하지 않고 30여 년 동안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아내를 야금야금 망쳐갔다.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듣고 토론하고, 급기야 살짝 불량한 책들을 던져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감리교에서 운영하는 지방의 신학원에 보냈다. 졸업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눈이 열리기를 바란 것이다. 내가 아는 바 적어도 그 신학원의 교수진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4학년이 되는 시점에서 아내와 신학적인 대화가 가능해졌다.

이제 아내를 확실하게 망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내 믿음과 내가 속한 기독교라는 집단을 객관적으로 보게 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다. 류시화 시인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잠언과 연설, 어록들을 수집하여 편집한 책이다. 내 방에 있는 책들 가운데 믿음 좋은 사람을 망칠 수 있는 특별한 한 권의 책을 고르라면 이것을 고를 것이다. 그래서 아내를 망치는 마지막 단계로 이 책을 읽게 했다. 내 예측대로 아내는 이 책을 읽고 망가져버렸다. 자기가 지난 50여 년 동안 걸치고 었던 교리의 껍데기를 보게 된 것이다.

나와 아내는 어릴 적부터 교회가 가르치는 청교도들의 이미지를 내면화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신앙의 이름으로 각색한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교회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교회 밖에서 알게 됐다. 교회 밖으로 나갔을 때 비로소 교회가 보였고 하나님을 떠났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신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나인 것을 부정했을 때 비로소 내가 나인 것을 보게 된 것처럼, 난 교회와 하나님을 그렇게 다시 알게 되었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는 청교도들이 아메리카대륙에 가서 믿음을 지키고 복음의 왕국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야비하고 비열하게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거주지에서 내쫓은 사실을 그들의 입으로 말하고 있다. 그것을 기독교인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학살당하고 내어 쫓긴 원주민의 시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이 책은 인디언들의 언어와 자연에 대한 이해와 태도가 얼마나 하나님의 성품에 가까이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교리로 무장한 기독교인들이 자연을 통해 신을 이해하고 우주와 사람을 품었던 인디언들에 비해 얼마나 저급하고 야만적인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면 교리로 무장된 자신의 믿음 좋음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저열한 것인지를 보게 된다. 하나님은 교리 안에 머무시는 분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 가운데 내재하는 인격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믿음, 은혜, 구원, 사랑 같이 달달한 교회의 언어 넘어 초월적으로 역사하는 인디언식 하나님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 교회 하나님이 아니라 인디언식 하나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에 눈뜨려면 기성의 관념과 신앙을 깨뜨려야 한다. 나는 아내를 깨뜨리는 데 30년 걸렸다.

이제 아내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나도 아내도 인디언이 되어가고 있다. 아내가 말한다. "내가 속한 기독교가 얼마나 위선적이었는가를 알게 됐다."고.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이젠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나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모두 인디언이 되기를 소망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인디언이 된 아내를 축복하며 오늘 점심은 맛있는 걸 먹기로 했다.

*** 책의 마지막에 부록으로 각 부족별 인디언식 이름이 있다. 이를 통해 이들이 자연과 존재를 얼마나 진실하게 자신의 삶에 투영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신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과 우주를 내 안에 투영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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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7 11: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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