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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대신 울어주는 여자
 회원_997154
 2021-12-18 09:57:38  |   조회: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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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 >

# 대신 울어주는 여자

조선시대에 곡비(哭婢)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신 울어주는 여자(계집종)를 그렇게 불렀다. 사대부 집안에 상을 당하면 유교적 관례와 풍습에 따라 상주는 연이어 곡(哭)을 해야 했는데, 상주의 곡소리가 시원찮으면 불효자라는 오명을 얻을 수도 있었다. 부모의 상에 울지 않는 자식은 천치나 불효자 취급하는 게 유교사회 상례의 정서였다. 슬픔의 가면을 쓰고 억지로라도 울음을 쥐어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상갓집에서 대신 울어주고 먹고사는 일을 업으로 하는 여자, 그들의 울음은 얼마나 슬프고 애절했을까. 곡소리가 애절할수록 상갓집에 더 많이 불려다니고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 그들의 울음은 죽은 자를 위한 통곡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야 하는, 산 자의 간절함이 뼛속에 사무친 울음이었으리라. 남의 상사에 거짓 울음을 울어 주지만 내 삶의 무게가 울음으로 터져 나올 때, 그 울음은 주변부를 울음으로 함께 끌어들인다.

내가 초등학교 때 외조부께서 돌아가셨다. 객지의 아들집에 거하시다 작고하셔서 영구차를 타고 고향 마을로 돌아오던, 그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외가의 먼 친척뻘 되는 아주머니가 상여 앞으로 비척비척 걸어 나오며 “나 곡 못하는디, 워떡한댜.”라고 한다. 그러던 그녀가 상여 앞에 막상 엎드러져 곡을 할 때, 그 말은 겸양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곡을 할 때, 모여 섰던 사람들은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저니가 그래도 이 근방에서 곡은 젤로 잘 혀.”, “암만, 곡 하나는 천하일색 양귀비지~”

그녀의 곡은 단순한 울음이 아니었다. 내려가는 자리와 올라가는 자리, 당겨야 할 곳과 밀어야 할 곳, 숨을 끊었다가 내 쉬는 타이밍, 그 모든 과정이 정교하게 편곡된 가락이었다. 정가와 판소리와 경기민요가 그녀의 소리 가운데 한 호흡으로 베를 짜고 있었다. 그녀가 곡을 할 때 나도 울고 동네 사람도 다 울었다. 산천이 다 흐느끼는 것 같았다.

고종황제가 승하하여 국상(國喪)을 치를 때 전국의 내로라하는 곡비(哭婢)들이 장안에 몰려들었다 한다. 그녀들의 곡소리는 한양 도성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곡소리를 직접 듣지 못한 지방의 촌부들에게도 곡비들의 뼈를 저미는 울음소리가 풍문으로 흘러갔다.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이 곡소리에 실려 흘러갔던 것이다. 그 곡비들의 애절한 통곡은 40여 일 뒤에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폭발했다. 3.1운동은 대신 울어주는 여자들의 레퀴엠이 만든 저항 운동이었다. 울음은 막힌 것을 뚫는 힘을 가지고 있다.

# 울고 싶은 곳

박지원은 청나라 사신의 행렬을 따라 중국에 갔다가 광활하게 열린 요동벌판을 만났을 때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好哭場)이로구나!” 하고 탄성을 질렀다. 동행한 이가 깜짝 놀라 물었다. 드넓은 벌판을 보고 통곡할 것을 생각하는 연유가 무엇이냐고.

“칠정(七情)은 모두가 울 수 있는 거라네. 기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슬픔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미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 왠 줄 아는가? 근심으로 답답한 걸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보다 더 좋은 게 없다네. 울음이란 천지간에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절로 이치에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열하일기)

돈 벌러 나간 아버지가 열흘을 넘겨 집에 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납작하게 눌린 봉지 보리쌀을 사먹던 엄마는 그것마저 떨어지면 젖먹이 막내를 재워놓고 둘째와 셋째를 내게 맡기고는 밤에 집을 나갔다. 어느 날은 자정이 넘도록 엄마가 돌아오지 않았다. 막내가 깨어 울음을 그치지 않아 엄마를 찾아 이구석저구석을 쏘다녔다. 그 때 어디선가 여인네 울음소리가 길고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동네 교회였다. 어두컴컴한 교회 안에 한 여인이 배고픈 승냥이처럼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어둠속에서도 교회 현관에 놓인 하나의 신발이 엄마의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가난한 어머니에게 교회만큼 울 만한 곳이 없었던 게다. 그곳에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생각, 그곳에서 친정아버지를 만난 듯이 하소연하고 넋두리하고 마음을 다 쏟아놓으면 그 분이 들어주시리라는 믿음은 교회를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광야’가 되게 했던 것이다. 교회는 어머니의 울음 터였다.

딱히 마음 쏟아놓을 곳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교회는 울음 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는 심리학이 점령해 버렸고 목회는 경역학으로 대체됐다. 아테네의 아고라(Agora)와 같이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광장이 돼버렸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자기 신념을 내세우는 정치무대가 돼버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에서 엎드리지 않고, 울지도 않는다. 교회가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내려놓고 엎드려 우는 곳이 아니라 아고라(Agora)가 돼버린 것이다.

새해 교회를 설계하면서 나는 아고라와 같은 교회에서 구약의 성전 같은 교회로 바꾸기로 했다. 교회에 대한 그동안의 내 신념을 바꾸기로 했다. 현대인들에겐 아고라와 같은 예배당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는 성전으로써의 거룩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젠 성전을 만들어야겠다. 거룩한 공간이 사라진 자리에 저급한 논리와 세속적 가치가 비집고 들어와 왕 노릇할 때, 똑똑이들이 스스로 구원자를 자처하는 해프닝이 일어난다. 이게 요즘 교회들의 모습이다. 엎드리지 않고 울지 않는 자들의 교회, 그런 교회라면 난 목회하지 않을 생각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성 앞에 엎드릴 때 참된 존재가 될 수 있다. 오랜 경험에 비추어, 난 인간의 지성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엎드리지 않는 인간은 그냥 똑똑이일 뿐이다. 교회는 똑똑이들의 모임이 아니라 죄인들의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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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8 09: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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