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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마친 사람 많으나 제자도를 갖춘 사람 드물어..
 회원_630668
 2021-10-14 07:22:24  |   조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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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유감

한국교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면 '제자훈련'이 아닐까 싶다. 어찌보면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끌었던, 더 정확히 말해서 한국교회의 대형화를 실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대부분의 교회가 아무런 고뇌도 없이 정설로 받아들이는 프로그램이 됐다. 사실 성경공부라고 하면 되는데 '제자훈련'이라고 하면 왠지 더 전문적으로 배운다는 언어의 뉘앙스도 무시할 수 없다. 단순 공부가 아닌 훈련 과정을 통과한다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제자훈련을 교회의 핵심 교육과정으로 진행하는 교회들에선 마치 해병대 기수를 따지는 것처럼 서로 제자훈련 몇기였냐고 묻는 웃지 못할 풍경도 등장했다.

제자훈련을 교회 교육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생각하는 교회에게 묻고 싶다. 제자훈련을 통하여 정말로 제자도를 갖춘 예수님의 제자로 거듭난 성도로 훈련되고 양육되어졌냐고. 잘 짜여진 교회 프로그램에 순응하고 직분자가 되어 각종 교회 예배와 행사에는 충성심을 보이므로 스스로 믿음의 분량이 큰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회에 빠짐없이 내는 헌금 말고 누군가 아플 때 돌봐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고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억울한 약자의 편에 서서 싸우고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자와 기꺼이 나누는 삶을 살았는가? 그것이 담임목사이든 뭐든 누구를 막론하고 아닌 것에는 단호히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었는가? 제자훈련을 통하여 정말로 그렇게 변화되어 살았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당연히 제자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을 찬양할만하다.

훈련이란 말은 영어로 Training이다. 한자로는 가르칠 훈(訓), 단련할 련(練)이다. 가르쳐서 단련한다는 뜻으로 쉽게 말해서 단련이 되도록 가르친다는 말이다. 단순히 전문적인 지식을 알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앎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배여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훈련하는 목적이다. 작금의 교회에서 진행하는 제자훈련이 과연 언어 그대로 훈련되어진 제자로 배출되느냐 하는 것이다.

군인이 힘든 이유는 제한된 공간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 특전사를 운용하는 특수부대일수록 반복 훈련의 강도는 더 셀 것이다. 자기가 소유한 총기에 대한 이론 지식은 어쩌면 한두 시간이면 충분히 배운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총기를 잘 다루어 사격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사격 연습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사역이라고 하는 제자훈련 과정은 사실 몸을 단련시킬 만큼의 훈련도 없고 그 성경지식을 현실에서 실천하면서 살아내게끔 하는 헌신의 삶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3개월 혹은 6개월의 자리를 지키면 대부분 수료할 수 있는 과정이다.

나도 과거에는 제자훈련이 교회 사역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여겼다. 그리하여 각종 과정을 이수했고 직접 현장에서 적용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사역을 하면서 제자훈련의 한계를 직접 경험했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만나서 제자양육 교재로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그들의 삶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저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들과 성경의 지식만 익힐 뿐 그들의 삶이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삶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극약처방을 내리기에 이른다. 일종의 약속을 해서 1년 동안 그들과 한 집에서 살았던 것이다. 새벽 묵상부터 퇴근후 저녁 성경공부까지 매일 함께 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같이 고민하고 배우면서 실천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운동장 밖에서 지휘하는 감독이 아니라 함께 뛰면서 몸으로 가르치는 코치 역할을 한셈이다. 그렇게 하니 확실히 그들의 변화가 놀라웠다. 뼈빠지게 땀흘려 번 돈으로 기꺼이 누군가를 돕고 살리는데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이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타국까지 와서 힘들게 돈을 버는 이유가 분명했던 그들은 솔직히 만원도 누군가를 위해 사용하는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살면서 양육하기로 결정한 것은 나의 신대원 동기이자 친구요 멘토였던 한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배웠다. 그는 과거에 네비게이토선교회 간사였는데 아주대 캠퍼스를 중심 거점으로 하여 학원복음화에 힘을 쏟았던 친구였다. 그는 캠퍼스 사역자로 아예 대학교 앞에 빌라를 임대하여 훈련을 받기로 한 대학생들과 한 집에서 살면서 양육했다.

당연히 한 가족이 되어 그들의 속속들이 다 알면서 하나씩 하나씩 가르친 것이다. 말 그대로 훈련이었다. 식사, 청소, 세탁, 예배 준비물 등에 대한 당번도 정해야 했고 무엇보다 인간 관계를 어떻게 맺고 신앙인으로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가르쳤던 것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기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은 군에 입대해서도 전혀 낯설거나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여하튼 그렇게 훈련이 된 친구들이 나중에 취직하고 가정을 이루고 난 후 교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목사님의 지시나 부탁이 없어도 자기들 집을 오픈하고 기꺼이 교회에 새로 나온 분들이 부담없이 잘 정착할 수 있게 귀한 역할들을 담당하고 있었다.

교회에 나가라고 하는 것보다 자기 가정 집에 초대하여 우선 친구가 되어주고 서서히 거부감 없이 교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지금도 자처하고 있다. 자신들의 소유를 기꺼이 나누고 청년들에게 생활비까지 주면서 취업될 때까지 지원해주는 역할까지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훈련이 무엇인지 보게된 사례였다.

오래 전 중국에서 대학교 시절 신앙생활을 했던 모교회 목사님이 생각난다. 해외 동포교회 지원으로 강권하에 사랑의교회 제자훈련 과정에 참석하게 되었다. 왕복 국제비행선 티켓과 무료 숙식을 제공하면서까지 참석을 요구해온 것이다. 그 교회 입장에서는 제자훈련 해외 확장에 그 목사님의 역할이 클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을거다.

몇 주 간의 합숙 교육을 다 마친 후에 그 교회 담임목사와 제자훈련 과정의 총괄 담당자들과 한 자리에서 함께하는 만찬 자리에 초대되었다고 한다. 제자훈련 과정을 이수한 소감이 무엇이냐고 물은 것이다. 통상적이라면 예의상 너무 감사하다, 왕복 여비에 숙박까지 제공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정말 유익했다 등등의 대답이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냐고 물었다. 당연히 그러라고 하자 자신은 중국에 돌아가서 이번에 배우게 된 제자훈련을 적용하지 않을거라고 했다. 의외의 대답에 다들 놀라서 그 이유가 뭐냐고 묻자 자기 생각으로는 사람을 모으고 정착시켜서 교회 사이즈를 키우는 것에는 더없이 훌륭한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되고 훈련되어지냐고 하는 것에는 부정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담임목사 주변의 제자훈련 과정 담당자들은 얼굴이 창백해졌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교회에서는 그냥 성경공부라고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제자훈련이란 언어가 주는 의미를 담기에는 뭔가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자훈련 과정을 마치면 심지어 가운을 입히고 학사모까지 쓰게하여 수료식을 성대하게 치러주는 교회도 봤다. 제자훈련에 대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제자훈련을 외치는 사람은 많이 보았고 제자훈련을 마쳤다고 하는 사람은 더 많이 보았지만 그들이 제자도를 겸비한 그리스도인인지는 솔직히 물음표가 달린다. 제자도의 삶에 무슨 마침이 있겠는가. 제자훈련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삶, 제자가 되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냈는가. 아님 그저 교회의 규모를 키우는 좋은 프로그램에 불과한가. 언어가 담고 있는 의미를 진지하게 다시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제자훈련인지 성경공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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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4 07: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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