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코이노니아
예수 그리스도와 담보, 모든 것을 전복시킨 대속
 회원_337295
 2021-09-28 02:07:16  |   조회: 31
첨부이미지

‘담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사채업자가 빚 받으러 갔다가 9살 딸 승이(박소이)를 담보 잡아 강제로 데려오게 됩니다. 엄마의 빚 때문에 자신이 담보로 잡혀온 줄도 모르고 “담보가 무슨 뜻이에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묻는 승이에게 '담(다음)에 보물이 된다'는 뜻이라고 답하며 한바탕 웃는 모습이 웃프기까지 합니다. 밀린 돈을 어떻게든 받아내려고 채무자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까지 납치하다시피 데려온 사채업자 두석(성동일)과 종배(김희원)는 아이의 엄마가 강제 출국 당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아이를 입양하는 후견인이 됩니다.

떼인 돈을 받으려고 담보 삼아 강제로 승이를 데려왔지만 거꾸로 두 사채 업자는 아이에게 인생을 담보 잡힌 처지가 되었습니다. 빚 때문에 아저씨들에게 맡겨진 담보 승이였지만 두석과 종배, 승이 세 사람은 어느덧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돈 받으러 갔다가 인생의 보물을 만난 격입니다. 그 아이는 어느 덧 두 사람의 전부가 되어 버린 가슴 뭉클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나의 아저씨에서도 등장합니다. 출연 비중은 높지 않지만 박동훈(이선균)이 “존경합니다 어르신!”이라고 말하며 깍듯이 인사하는 청소부 춘대(이영석) 아저씨가 있습니다. 춘대 역시 지안의 어머니에게 받을 돈이 있는 사채업자였습니다. 지안(이지은)이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여기저기서 사채를 끌어다 쓴 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자 잠적해 버렸습니다.

진짜 엄마라면 하나밖에 없는 딸 지안의 초등학교 졸업식에는 올거라며 사채업자들이 몰려가서 지안의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매정하게도 지안의 엄마는 딸 아이의 졸업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사채업자들은 혀를 내두르며 그 자리를 떴습니다. 축하 받아야 할 졸업식에 유일한 엄마마저 찾아오지 않아 쓸쓸하게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본 사채업자 춘대는 오히려 꽃다발을 사가지고 어린 지안에게 안기고 마치 아버지처럼 졸업사진을 함께 남기게 됩니다.

어쩌면 지안의 인생에서 첫 번째 구원의 다리가 되어준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능력껏 지안을 도왔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든 아닌 일이든 말입니다. 지안의 전적인 보호자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더 큰 것도 해주고 싶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동훈이가 나타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안에게 했던 그의 헌신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를 각자 쓰임이 있는 토기장이 손에 있는 그릇과 같다고 합니다. 누구는 질그릇으로 빚어지기도 하고 누구는 놋그릇으로 빚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놋그릇이 질그릇보다 더 다양하고 쓰임새가 많다는 것은 우열을 가리는 세상의 기준일 뿐 성경은 어느 것이든 상관없이 각자 모두 자신의 역할에서 귀하게 쓰임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쓰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역설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나의 아저씨에서 청소부를 맡은 춘대 아저씨는 결정적인 순간에 지안의 피난처가 되어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등장합니다. 등장 시간과는 상관없이 그의 존재는 꽤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그가 지안의 상황을 알리지 않았다면 동훈은 지안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드라마에서 스토리의 전개상 출연 시간이 절대적인 주연급의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비록 출연시간은 짧은 조연급이지만 그가 지안의 인생에 끼친 영향은 주연급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생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종종 우리는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연급만 기억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도 담임목사의 이름은 주보의 첫 면에 커다랗게 등장하지만 빛도 이름도 없이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월급을 받으면서 수고하는 교회 사찰 집사님의 이름은 어디에도 볼 수가 없습니다. 교회당에 예배를 위해 드나드는 성도들은 사찰 집사님의 수고를 간과하여 무의식적으로 아파트 관리원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작 아파트 관리원과 다름이 없다 하더라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뭔가 진한 아쉬움은 남아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가치관에 반하여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기존의 교회들은 과연 세상의 가치관과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었을까요? 세상보다 교회가 더하다는 씁쓸한 풍경을 우리는 적잖이 목격합니다. 세상에서도 보기 어려운 모습들이 교회 안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빛과 소금은커녕 쓸모없는 소금이 되어 짓밟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교회가 수난 당하는 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어야 하는데 작금의 교회는 그 운영부터 세습, 조직관리에 이르기까지 세상 회사에서도 보기 어려운 양아치 같은 짓을 많이 해왔다는 것입니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제도권 교회는 제도권 교회대로 그렇고 미국이나 타국에 있는 이민교회는 또한 이민교회대로 슬픔 자화상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이민교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마도 사역자의 초 저임금 착취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은 유학생 비자로 체류하는 신학생들이 가장 많이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영주권이 없다는 핑계로, 니가 잘하면 교회가 보증을 서서 영주권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을 던져서 대신 파트타임에도 미치지 못하는 교통비만을 내주면서 그렇게라도 하겠냐고 고용하는 겁니다.

유학생들이 영주권의 절박함을 얼마나 원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이민교회가 종종 행하는 패악질입니다. 그러한 갑질이 잘못됐다고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상대의 절박함과 약점을 잡아서 초 저임금으로 그를 부려먹고 또한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하는 그런 모습들을 이민교회에서는 너무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잘 하면..." 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고용하는데 이것은 어디까지 주관적인 조건입니다. 사실상 끝까지 책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고용주인 자신들에게 피할 길을 열어주고 고용한다는 것입니다.

비자를 담보로 착취하는 이런 사례는 사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목사나 전도사의 직분은 이민교회에서 별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주권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있는 전도사는 풀타임 사역자에 준하는 급여를 받되 목사라고 해도 유학생이고 영주권이 없다는 이유로 일부러 급여를 반 이상 깎거나 때론 무료 봉사를 하라고 합니다. 그래도 잘 하면 영주권은 받을 수 있도록 책임져 준다는 말에 때론 교통비도 받지 않고 무료로 가서 사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짧게는 1-2년, 길게는 3-4년씩 부려먹고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영주권이 나올 수 있게 도와줄 수 없다는 이유를 대고 내보낸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내가 이주노동자 사역을 하면서 가장 많이 봐왔던 악 입니다. 기술 숙련도 필요 없는 단순 노동자를 필요한 업주들이 일부러 비자가 없는 외국인들을 고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내가 직접 현장에서 겪은 사례들입니다. 첫 두 달은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월급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다음 달에 몰아서 주겠다고 하고, 다음 달에 가면 또 다시 어렵다고 합니다. 그렇게 최소 3-4개월 이상 임금을 체불하고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밀린 월급을 주지 않으면 일을 못하겠다고 하면 배째라는 식입니다.

1인당 250만원의 임금을 최소 3개월을 체불했을 경우 세 사람 임금만 해도 2천 300만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그걸 돈이 없어서 못주겠다며 마음대로 하라는 겁니다.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해봐야 자신은 500만원도 안되는 벌금을 받으니 오히려 이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너희가 가서 신고를 하는 즉시 자신도 법무부에 너희를 불법체류자로 신고하여 추방되도록 하겠다고 역으로 으름장을 놓는 업주들도 많이 봤습니다. 약자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약점 삼아 갈취하는 악행입니다. 무임금 노동착취죠. 그런데 이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도 버젓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것도 사역이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담보 잡힌 아이에게 역으로 담보 잡힌 인생을 살았던 두석과 종배입니다. 아저씨에서 사채업자였던 춘대 아저씨 역시 지안의 후견인 역할을 자처하여 비록 청소부이고 쓰레기 집하장에서 일을 하지만 과거를 청산하고 바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저당 잡았던 채권자에서 역으로 그의 인생에 자신을 담보 잡혀서 사는 삶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러했습니다. 우리에게 죄값을 물으셔야 할 분이 오히려 자신을 대속의 제물 삼아 바치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을 대신 지불하심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과 논리와 상식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앞에 전복되는 것입니다.

 

 

출처가기

2021-09-28 02:07:16
97.93.55.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10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풍성한 믿음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