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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그리스도인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전파가 막히는 참람한 상황
 회원_531722
 2021-02-01 10:05:51  |   조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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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정으로 당분간 페이스북에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 요새 분위기에 기독교 이야기하는 부담도 없지 않지만 주일밤 이런저런 생각이 오가며 넋두리로 몇 마디 남긴다.

솔직히 털어놓으면 이 땅을 살면서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출세나 명예나 부 또는 사람들의 상찬같은 것은 아니었다. 자아 실현이나 정의 구현 또는 박애주의의 전파 같은 도덕적인 것도 아니었다. 고백하기 좀 어색하지만 내 삶의 목표는 예수와 연관되어있다. 아마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러할 것이다.

살면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은 40년 전 이맘 때 예수를 만났을 때였다. 오래 기다렸던 학위 취득이나 귀한 상을 받았을 때와 비교할 수 없다. 까까머리 중학생 때 삼각산 임마누엘 기도원에서 열린 일주일간의 SFC 전국 동기수양회에서 구주를 만났다. 공군 군종감이셨던 장영출 목사님이 주강사로 에스더의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라는 말씀을 전했다. 집회 첫날에는 하나도 못알아들었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마음이 열렸고 마지막 날 말씀과 함께 회심했다. 모태신앙으로 관성적인 주일학교 생활 했던 내가 신앙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조우했던 밤이었다. 그날 밤, 그룹별 기도회 때 당시 집회를 이끌었던 대회장 안민 (지금 고신대학교 총장) 선배님이 그룹을 돌면서 중보해주셨다. 새까만 후배인 나를 끌어안고 기도해주었던 기억은 낭만으로 남아있다.

구주와의 만남이 영광스러운 이유는 특별한 체험이나 빛나는 만족감 때문이 아니었다. 나와 조물주와의 관계를 알게 되며 나를 발견한 감격이었다. 내 존재가 누구로부터 말미암고, 무엇을 위해 살며, 어디로 가는가를 명확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인생 최고 영광의 순간이 구주와의 만남이라면, 두 번째 영광스러운 순간은 성도들과의 만남과 교제였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신앙의 중심이다. 이로 말미암은 또 다른 영광은 그 분을 경험한 거룩한 무리들과 어울리며 넓으신 하나님을 조금씩 더 알아나가는 경험에 있다. 예수와의 만남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이들과의 만남은 이 땅을 살아가는 의미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다. 쉽지 않았던 영국 유학시절 북잉글랜드의 추운 집에서 따뜻한 차한잔과 함께 유학생 성도들과 나누었던 그리스도의 이야기 이상의 감격을 찾을 수 있을까?

감히 고백할 수 있다. 내게 신앙의 부침은 적지 않았지만 구주는 단 한순간도 내게서 시선을 거두신 적이 없었고 두 팔로 안아주셨다. 이 고백은 생생한 경험에 근거한다. 무엇보다 두 아들을 받는 시간, 유학 시절, 아내와 함께 하는 신앙의 길 등을 통해 당신이 드러내신 섭리와 섬세한 터치는 선명하게 내 삶을 구성했다. 이후 내 삶을 이끄는 목적이 선명해졌다. 이 땅에서 나를 부르신 소명에 응답하며 최선을 다해 살되, 그 삶을 통해 다른 이들이 구주를 알게 되기를, 그리고 그들과의 신앙 공동체를 함께 경험하는 것이었다. 내겐 한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의미가 된 것이다.

대학시절 캠퍼스에서 4영리를 들고 학생들과 만나기도 했고, 거리에서 기타 하나 들고 구주를 찬양하기도 했다. 캠퍼스에서 후배들과 매주 모여 성경을 읽고 나누며 공유했던 교제, 유학시절 작은 한인교회에서 중고등학생, 청년들과 말씀을 나누었던 시간은 정말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 지금도 우리 가족을 이끄신 교회에서 같은 은혜를 누리고 있다.

회심과 교회 공동체의 영광을 경험한 후 새롭게 설정된 삶의 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는 계속된 과제였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성서를 이야기하고 구주를 전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시대착오적이고 맹목적으로 보이는 일이기도 했다.

예수가 얼마나 인간에게 절실한지, 그 분 성육신의 감동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그리고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을 경험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이야기로 전한다는 것은 마냥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객관적인 사실로 논증,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내 경험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 그 분을 전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 분을 입증하는 삶을 사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연구실이든 강의실에서든 이 길을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간혹 듣는 말 중 가장 기쁜 이야기는 나 때문에 궁금해졌다며 예수를 알고 싶다고 묻는 것이었다. 물론 여전히 헛발질을 하고, 내 스스로의 숱한 허물로 인해 좌절할 때가 많다. 단순히 내 연약을 발견하는 암담함 때문이 아니다. 그토록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예수를 내 허물로 인해 가로막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황하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요즘 세간에 벌어지는 일로 인해 삶의 목표와 의미에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 예수를 좇는 이들의 허물이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그 분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상황이 자꾸 일어나고 있다. 다들 교회를 비난하는데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단순히 방역의 문제가 아니다. 겉으로는 경건하고 순수한 신앙을 말했지만 속으로는 속물적 세상과 몰래 짝하여 온 탓이다. 그게 바이러스와 함께 순식간에 드러난 것 아닐까?

바알과 싸우고 아세라와 싸우는 건 결기 있게 힘을 낼 수 있지만, 정작 싸워야할 공동체의 전사들이 바알과 아세라에게 무릎 꿇고 맘몬의 전사가 되어버린 모습이 좌절스럽다. 십자가 흉패를 장착한 채 십자가와 싸워오지 않았던가? 남 탓이 아니다. 바로 내 이야기다. 그리스도인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전파가 막히는 참람한 상황에서 성도의 교제에 담긴 영광 역시 흔들리고 있다.

내 인생을 구성하는 두 개의 영광스러운 순간이 이제는 위태롭다. 삶의 의미와 목적이 방향을 잃은 느낌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깨어진 거울조각으로 그 분의 모습을 세상에 이지러지게 비추어 온 그리스도인의 허물을 어떻게 다시 회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다 쏟아내고 한조각씩 다시 맞출 수밖에. 비록 금간 흔적은 있더라도 구주의 영광과 존영을 다시 온전히 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간구할 수밖에. 어두울수록 이제는 말을 줄이고, 침묵으로 기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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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1 10: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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